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전문가는 진짜 전문가가 아니다. 사람들이 추종하는 ‘다수’도 실제 조직의 다수가 아니다.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전문가는 진짜 전문가가 아니다. 사람들이 추종하는 ‘다수’도 실제 조직의 다수가 아니다.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에 가뭄의 계절이 닥쳤다. 코끼리들은 타는 목마름을 해결해 줄 오아시스를 찾아 나서야 했다. 나침반도 없는 코끼리들이 해갈을 위한 대장정에 나설 때 누가 그들의 내비게이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정답은 가장 나이 많은 암컷의 결정을 따른다는 것이다. 코끼리 무리는 원래 모계 사회다. 최연장자인 암컷 코끼리가 오랜 초원 생활에서 축적한 경험은 무리를 이끄는 강력한 영도력의 근거이기도 하다.

하나 더! 망토개코원숭이는 사바나 초원에 사는 영장류 중 하나다. 그들은 먹이 사냥을 떠날 때 누구의 결정을 따를까? 정답은 코끼리하고는 좀 다르다. 망토개코원숭이들은 어디로 사냥을 떠날지 매일 아침 미팅을 한다. 무리 중 한 마리가 앞으로 나와서 제가 가고 싶은 쪽을 향해 자리를 잡는다. 그러면 다른 원숭이가 그를 따른다. 그 수가 많아지면 그날의 사냥 방향은 정해진다. 만일 맨 처음 원숭이를 따르는 자가 아무도 없거나 적다면 그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코끼리나 망토개코원숭이의 모습은 약육강식의 사바나에서 매일 생사의 갈림길에 선 동물들이 보여주는 전형적인 행동 양태를 대변한다. 그럼 우리 호모 사피엔스의 경우는 어떨까? 사람들은 설혹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힐지라도 권위를 가진 인물을 거의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권위자의 인정을 받으려는 본능이 있다. 또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못 잡을 때 사람들은 다수의 결정을 따르는 본능이 있다. 놀랍게도 다수 의견이 틀렸다는 것을 아는 경우에도, 집단의 결속과 화합을 해치지 않으려고 다수 속에 안주하려고 한다.

사람은 수만 년 전 사바나에 살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코끼리나 망토개코원숭이처럼 권위자를 추종하고, 다수를 추종하는 본능을 타고난다. 그러한 본능은 이미 우리 대뇌에 프로그래밍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한 조직이 어떤 리더를 만나는지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우치게 해준다. 다수가 어떤 의견을 추종하는지 알아보는 통계나 여론조사를 왜곡하거나 조작하는 것이 얼마나 큰 범죄인지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추종하는 권위자는 누구일까? 컴퓨터가 등장하고, 인공지능(AI)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권위자는 원시 부족사회의 추장처럼 오랜 경험을 통해 지혜와 통찰을 가진 이들이었다. 어떤 조직에서나 칼 융이 말한 ‘노현자(Old Wise Man) 원형’을 상징하는 것 같은 원로들이 있었고, 그들의 의견이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사람들은 시시각각 쏟아져 나오는 방대한 양의 정보와 자료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사람들은 더는 원로를 찾지 않는다. 특히 젊은이들은 문제가 생겼을 때 ‘어르신’을 찾지 않는다. 그들에게 어르신은 더는 배움을 구하는 대상이 아니다. 지혜와 통찰의 상징이 아니다. 스마트폰 작동법을 가르쳐 주고, 컴퓨터 사용법을 가르쳐 줘야 하는 피교육자일 뿐이다. 그들은 어르신을 믿지 않고, 컴퓨터를 통해 얻은 ‘검색 정보’를 믿는다.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젊은이 중에 사회 원로들을 ‘꼰대’ 혹은 ‘틀딱(틀니를 한 노인을 비하하는 표현)’이라고 비하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풍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요즘 들어선 대중을 즐겁게 하는 엔터테이너가 전문가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요즘 들어선 대중을 즐겁게 하는 엔터테이너가 전문가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진짜 전문가 사라진 세상에선 대중 스타가 전문가

공동체나 조직 어른의 말을 듣지 않고, 검색 정보를 더 신봉하는 이들에게 권위자는 소위 말하는 ‘전문가’다. 그런데 문제는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전문가가 진짜 전문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추종하는 ‘다수’도 실제 조직의 다수가 아니다. 그들에게 다수는 사회적으로 유명한 사람이나 소셜 미디어(SNS)의 ‘인플루언서(SNS에서 유명한 사람)’를 가리킨다. 즉, 그들은 신문에 더 많이 나온 사람이나 방송을 더 많이 탄 사람, 책을 더 많이 판 사람, 소셜 미디어에서 추종자가 더 많은 사람, 인터넷 검색 순위 상위에 더 많이 자리매김한 사람들의 말을 더 추종하고, 그럴 때 더 편안함을 느낀다. 요컨대 그들이 추종하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권위자 다수는 대중적인 스타들이다.

현대의 전문가는 사람들을 웃길 줄 아는 엔터테이너라야 한다. 대중적인 스타가 되기 위해서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충분조건이다. 그래서 신문·방송이나 소셜 미디어에는 모델처럼 생긴 외국 명문대 출신의 젊은 중이 법력 높은 고승(高僧)을 대신한다. 방대한 지식과 지혜를 겸비하고 통찰력을 소유한 석학이 나와야 할 자리에, 연극영화과를 나온 학원 유명강사가 그 자리를 메운다. 전문적인 임상 경험과 훈련을 거친 심리학 전문가가 있어야 할 자리에 음악을 전공한 강사가 서 있다. 인문 사회 과학 전반의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지성이 서야 할 공영방송의 진행자 자리에는 삼류 저널리스트가 앉아 편파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음식에 대한 식견도 별로 없어 보이는 자가 방송에 나와 음식 전문가 행세를 하고 주제넘게 편향적인 정치 평론까지 하려고 든다.


‘웃픈’ 현실 답답해

개그맨이 나와서 사람을 웃기는 것이 아니고, 이런 비전문가들이 전문가 행세를 하며 사람들을 웃기는, 그러나 웃지 못할 ‘웃픈’ 현실이 일상화된 지 오래다. 연극 영화나 음악 전공자를 무시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나는 자신의 분야에서 성실하게 일하며 성과를 내는 수많은 연기자와 음악인을 알고 있고 그들을 한없이 존경하는 사람이다. 남의 자리에 서서 제 자리인 줄 착각하는 이들이 문제라는 말이다. 전문가가 있어야 할 자리를 비전문가가 대신하고 그들이 전문가 행세를 하는 현실이 안타까운 것이다. 하기야 우리는 그 분야에서 전문적인 경험과 식견을 가졌다고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비루하고 남루한 자들이 국회의원 노릇을 하고, 일국의 장관 자리를 꿰차는 것을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

비전문가의 말에 현혹되는 대중의 인식 수준도 문제지만, 엉터리 전문가를 전면에 내세우는 미디어 종사자들이나 강연 기획자들이 더욱 문제다. 이런 그릇된 풍조에 휩쓸리지 않게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데, 사바나의 코끼리나 망토개코원숭이보다 못한 호모 사피엔스들의 행태까지도 ‘본능이니까 봐주자!’며 넘어가야 하는 건지 답답해서 하는 소리다.


▒ 김진국
문화평론가, 고려대 인문예술과정 주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