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든이 오랜 시간 궁정음악감독으로 일한 에스테르하지 궁전. 사진 위키피디아
하이든이 오랜 시간 궁정음악감독으로 일한 에스테르하지 궁전. 사진 위키피디아

온종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소식이 끝없이 쏟아진다. 연주 준비를 위해 피아노 스튜디오에서 연습하는 중에도 휴대전화 알림창에는 연일 예정된 콘서트가 취소됐다는 메시지가 오고 있다. 처진 마음을 뒤로하고 피아노 스튜디오를 나와 집에 오는 길에도 되도록 사람이 모이지 않는 길을 택해 총총걸음으로 돌아온다. 그러다 문득 곁눈질로 불이 꺼져 있는 상점 유리에 비친 필자의 모습을 보았다. 마스크에 가려진 얼굴 그리고 웃음기 없는 눈빛까지. 마스크를 벗고 밖에서 유쾌하게 웃어본 게 도대체 언제 적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걸음을 다시 재촉하며 귀에 이어폰을 꽂고 무심코 하이든의 교향곡을 들어본다.

필자는 최근 하이든 작품을 자주 들으며 연습하고 있다. 어렸을 때는 단순하고 지루하다고만 여겨 절대 좋아할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꽤 사랑에 빠진 듯하다. 올 한 해 지속된 코로나19로 심신이 많이 위축돼서 그런지 하이든 음악에 더 많은 애정이 가는 것 같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 삶의 유머를 잃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듣는 순간만큼은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순수한 마음을 가득 품을 수 있어서.

요제프 하이든은 1732년 오스트리아의 동쪽 로라우에서 태어나 77세인 1809년까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에서 살다간 작곡가다. 바흐, 헨델보다는 늦게, 모차르트보다는 먼저 태어나 옛 음악과 새 음악을 잇는 교량 역할을 했다. 100여 곡이 넘는 교향곡을 작곡해 ‘교향곡의 아버지’라는 수식어도 따라붙는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그가 많은 교향곡을 남겼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작품을 통해 ‘고전 시대’ 작풍의 큰 한 획을 그었기 때문이다. 하이든이 이룩한 고전 시대 작풍은 모차르트와 베토벤에게 전달됐고 이는 서양 음악이 한층 더 성숙하고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더 나아가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도 빈이 유럽 음악의 수도로 발돋움하는 중요한 이유가 되기도 했다.

필자가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지 그가 고전 음악 형식을 완성한 빛나는 음악사적 업적뿐만이 아니다. 하이든의 음악 에는 유머, 경쾌함, 순수함, 재치 등이 가득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의 음악이 가볍고 경박하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이성적으로 잘 정돈된 형식 안에 자칫 진지하고 근엄해질 수 있는 음악의 분위기를 그의 타고난 유머로 재치 있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의 교향곡 중 일부는 재미있고 다양한 부제로 유명하다. ‘곰, 사냥, 암탉, 시계, 놀람, 이별, 정신 나간 사람, 불, 여왕, 기적’ 등이다. 물론 그가 모든 곡에 직접 제목을 붙인 것은 아니지만 작품을 들어보면 유머러스한 부제의 의미가 절로 끄덕여질 정도로 음악의 묘사가 훌륭하다.


요제프 하이든 초상화. 사진 위키피디아
요제프 하이든 초상화. 사진 위키피디아

유머와 긍정의 기운 가득했던 하이든

하이든의 재치는 재미난 일화로도 전해진다. 일례로 영국 런던 연주회장에서 꾸벅꾸벅 졸던 관객을 놀라게 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소문난 교향곡 제94번 ‘놀람’이 유명하다. 오케스트라 모든 단원이 느리게 곡을 연주하다 갑자기 포르티시모(ff·악보에서 매우 세게 연주하라는 말)로 일제히 연주해 모든 관객의 정신을 바짝 차리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또 에스테르하지 후작 궁정음악감독으로 재직할 당시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위해 펼친 퍼포먼스도 회자된다. 당시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휴가를 가지 못해 불만이 쌓이자, 하이든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단원들의 마음을 유머러스하게 전달하기 위해 교향곡 제45번 ‘이별’ 마지막 부분에서 파트가 끝난 단원 한두 명씩 무대 뒤로 빠져나가게 했다. 후작은 모든 단원이 퇴장하자 숨은 의미를 읽고 “내일부터 모두 휴가”라고 방긋 웃으며 휴가를 승인했다고 전해진다.

하이든은 실제로도 유머와 긍정적 기운이 가득한 사람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심지어 본인이 병상에 있을 때 사망했다는 헛소문이 온 유럽에 퍼지고 ‘하이든을 추모하며’라는 곡이 발표되자, “내가 그 곡을 초연하지 못해 안타깝다”라고 유머 있게 받아쳤다고 한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자신의 작품 마지막 마디 아래 서명과 함께 ‘신을 찬양하며’ 같은 문구도 적어 넣으며 신실한 삶을 살려고 애썼다고도 한다.

또다시 피아노 스튜디오로 향한다. 한 손에는 하이든의 피아노 소나타 곡집이 들려 있다. 도착하자마자 피아노 뚜껑을 열고 악보를 펼친다. 비록 올 한 해 코로나19로 인해 다소 몸과 마음이 지쳐 있다지만, 하이든의 음표를 건반으로 눌러보며 ‘아니,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지?’라고 탄복한다. 힘든 시기에도 입가에 미소를 가져다주는 하이든에게 감사를 보낸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다음의 음악을 추천해본다. 코로나19로 인한 걱정은 잠시 옆에 내려두고 마음과 입가에 하이든의 경쾌한 재치가 가져다주는 미소를 담아 보시라.


▒ 안종도

독일 함부르크 국립음대 연주학 박사, 함부르크 국립음대 기악과 강사


Plus Point

요제프 하이든 교향곡 제94번 ‘놀람’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 레너드 번스타인
함께 감상하면 좋은 음반

하이든이 남긴 교향곡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 음악회에서 조는 관객을 놀래주기 위해 작곡했다고 전해진다. 하이든이 런던의 청중을 위해 작곡한 12곡의 ‘런던교향곡’ 시리즈 중 한 곡이기도 하다.

제자 이그나츠 플레이엘이 같은 시기 런던에서 연주회를 열고 있어서 그의 연주회에 지지 않기 위해 특별한 것이 없을까 고민하다 재치 있는 표현을 넣은 곡이라는 말도 있다. 실제로 2악장에서 갑자기 등장하는 포르티시모는 당시 관객을 크게 놀라게 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이든의 평전을 집필했던 알베르트 크리스토프 디에스는 “일부 여성 관객은 충격을 진정시키지 못해 부축받으며 밖으로 나갔다”는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그의 바람대로 런던에서의 초연은 대성공을 거두고 관객 및 평론단의 극찬을 받았다. 2악장은 여러 버전으로 개작되었다고도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