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 소설 속 광대는 세상의 무관심 속에 단식을 계속하다가 끝내 숨진다. 단식 모티브는 카프카의 대표작인 ‘변신’에서도 찾을 수 있다.
카프카 소설 속 광대는 세상의 무관심 속에 단식을 계속하다가 끝내 숨진다. 단식 모티브는 카프카의 대표작인 ‘변신’에서도 찾을 수 있다.

변신·단식 광대
프란츠 카프카│편영수‧임홍배 옮김
창비│348쪽│1만3000원

프란츠 카프카(1883~1924)가 남긴 소설에 따르면, 근대 이후 인간이 맞닥뜨린 현실은 기괴하고 흉흉한 악몽에 다름이 아니다. 영어 사전에 등재된 단어 ‘kafkaesque’는 흔히 ‘카프카 작품 같은’이라고 풀이되지만, 더 분명히 해석하면, ‘부조리하고 암울하다’는 뜻이 된다. 카프카는 소설에서 무의미하고 혼란스럽고 기상천외한 왜곡으로 인해 으스스하게 복합적인 상황을 즐겨 그렸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전대미문의 시대를 맞아서 그런지, 최근 카프카 소설의 새 번역본이 잇달아 나왔다. 그중 카프카 단편의 대표작을 모은 ‘변신·단식 광대’를 통해 오래간만에 카프카 문학의 바다에 빠져봤다.

이 책이 다른 번역본과 구별되는 특징은 임홍배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가 200자 원고지 600장 분량으로 쓴 작품 해설 ‘카프카로 가는 길’이다. 임홍배 교수는 “카프카 작품은 여전히 그 어떤 해석으로도 온전히 해명되지 않는 미지의 낯선 느낌을 준다”라면서 “그것은 카프카가 그리는 우리가 사는 세계가 관념과 이론으로는 좀처럼 파악되지 않는 괴물이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풀이했다.

카프카 문학의 간판과도 같은 단편 ‘변신’은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흉측한 벌레로 변해 침대에 누워있는 것을 발견했다”면서 시작한다. 그레고르 잠자는 성실하게 근무해 온 영업 사원이다. 평범한 일상과 마찬가지로 출근을 앞두고 그가 벌레로 변한 탓에 그는 괴물 취급을 당하고, 그의 삶은 막다른 궁지에 몰린다. 그 상황 자체가 괴물의 형상을 취하고 있다. 

임 교수는 “카프카 소설은 꿈과 현실, 내면세계와 경험세계, 인간과 사물의 경계를 넘나들며 부단히 변신하는 ‘괴물’을 추적하는 과정의 기록”이라고 카프카 문학의 핵심을 요약했다.

또 다른 단편 ‘단식 광대’는 서커스 공연단을 따라다니면서 ‘단식’을 공연하는 광대를 그렸다. 실제로 19세기 유럽에선 단식을 공연하는 광대가 한때 유행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도시 전체가 단식 광대에게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단식하는 날이 거듭될수록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중략) 공연 막바지 며칠 동안에는 하루 종일 조그만 격자 창살 우리 앞에 죽치고 앉아 있는 예약자들도 있었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런 단식 공연이 새로운 공연물의 등장에 밀려 인기를 잃어가던 시기를 다뤘다. 광대는 단식을 공연했지만, 주변의 주목을 끌지 못했고, 세상의 무관심 속에 단식을 계속하다가 아무도 그를 제지하지 않은 탓에 결국 숨지고 말았다. 어찌하여 무모하게 단식을 했느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광대의 답변은 이랬다.

“저는 달리 어쩔 수 없어서 단식을 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제 입에 맞는 음식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가 그런 음식을 찾아냈다면 괜히 소동을 벌이지 않았을 것이고, 당신이나 다른 모든 사람처럼 배불리 먹었을 겁니다.”

임 교수는 이 소설의 ‘단식’ 모티브를 다른 소설 ‘변신’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풀이한다.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사람들에게 괴물로 치부돼 소외되다가 음식을 거부하고 굶어 죽는다. 임 교수는 “생존을 위한 삶에 매몰되지 않고 문학적 글쓰기에서 삶의 희망과 의미를 찾던 카프카의 작가적 운명과 직결돼 있다”라고 단식 모티브를 파악하면서 소설 ‘단식 광대’를 통해 소수자의 문학을 고집한 채 죽음에 이른 카프카의 예술혼과 연결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