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른 해변을 자랑하는 다대포. 사진 이우석
너른 해변을 자랑하는 다대포. 사진 이우석

자전과 공전 주기가 같은 지구에서 우리는 항상 달의 앞면만 볼 수 있다. 우리가 아는 익숙한 달이 바로 그 모습이다. 많은 이들에게 부산은 해운대를 위시한 광안리, 서면, 남포동 등이 익숙하다. 하늘을 찌르는 유리 마천루로 빼곡한 국제 도시 부산이다. 그림 같은 해변에 구름처럼 모여든 인파, 그들을 위해 많은 상업시설이 불야성을 이룬 덕에 부산의 야경 또한 ‘백만불 야경’으로 유명한 홍콩에 견줘도 모자라지 않는다. 모두가 연상하는 이런 부산 풍경은 ‘달의 앞면’과도 같다. 그 뒤편엔 무엇이 숨어있을까.

보통 ‘서부산’이란 부산 강서구와 사상구를 이른다. 동해와 남해를 동시에 품은 부산의 최서단 지역이다. 바다와 강이 함께 흐른다. 그 강이 바로 낙동강이다. 태백 고원에서 발원, 한반도 1300리를 유유히 가로지르는 강은 비옥한 토지를 하구에 남겼고 그곳에서 유명한 명지 대파와 대저 토마토가 나온다. 지금은 대파밭이 많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꼿꼿한 신식 아파트들이 자라났지만, 여전히 명품 대파로 전국적 명성을 떨치고 있다.

을숙도 생태공원낙동강하구에코센터는 서부산이 ‘해운대의 부산’과는 어떻게 다른지를 직관적으로 말해주는 곳이다. 하중도(곡류천이 유로가 바뀌면서 하천 가운데 생긴 퇴적 지형)인 을숙도는 그 자체가 천연기념물일 정도로 소중한 자연 유산이다. 현재 람사르 습지 보호 조약에 가입돼 있으며 세계적 철새 도래지(철새가 다른 곳에서 들어와 머무는 곳)로도 유명하다. 갈대가 한가득 피어난 여름에는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에코 투어를 하기에 제격이다. 에코센터에서 운영하는 일일 한정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전기자동차를 타고 전망대와 탐조대 등 다양한 곳을 둘러보며 ‘광역시 속 대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서부산엔 또 하나의 섬이 있다. 가덕도다. 부산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이다. 오륙도쯤은 비교할 수 없다. 을숙도와는 달리 남해와 면해 있다. 자연적으로도 가치가 있지만 섬이 품은 역사·문화적 내용에 눈길이 간다. 바로 을사늑약의 단초가 된 러일전쟁(1904~05년) 당시 일본군 요새사령부가 주둔하던 곳이다.

연이은 초반 패전에 매우 분노한 황제의 명령 아래 1904년 10월 위풍당당 출항한 러시아의 대유럽 주력 함대인 발트 함대는 규격 문제로 지중해와 홍해·인도항을 잇는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남아프리카공화국 서남쪽 끝의 희망봉을 돌아야 했고, 영국과 독일마저 석탄 보급을 거부해 ‘가엾게도’ 이듬해 5월에서야 극동까지 왔다.

지구 반 바퀴인 2만8800㎞를 돌아왔지만,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이 이끈 발트 함대는 최종 목적지인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지 못하고 일본 나가사키현에 딸린 섬인 쓰시마 인근 대한해협 해상에서 일본연합함대에 의해 궤멸했다.

일본 육군 포병이 그들이 지나가길 기다린 곳이 바로 가덕도 외양포다. 요새사령부를 설치하고 280㎜ 유탄포 6문의 포대와 화약고, 사단 막사 등을 세웠다. 이 어두운 유물은 지금도 그대로 외양포 일대에 남아 있다. 일본군은 대항새바지항에 인공동굴을 만들어 러시아군의 상륙에 대비하는 요새로 삼았다.

들어서자마자 시원한 동굴은 바다로 향해 이리저리 구멍이 나 있다. 총을 쏘는 구멍이다. 사람 서넛이 지날 수 있는 가장 큰 굴은 바로 해변으로 뻗었다. 산악 보루와 관측소는 전망대 구실을 한다. 역설적이게도 전화(戰火)의 시설이 지금은 아름다운 산과 바다를 즐길 수 있는 관광 시설이 됐다.

가덕도에는 길거리 예술가들이 그려낸 벽화가 자그마한 어촌마을을 빼곡히 채운 정거마을 등 오밀조밀 둘러볼 곳이 많다.


아미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낙동강 하구. 사진 이우석
아미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낙동강 하구. 사진 이우석
갈미조개의 샤부샤부. 사진 이우석
갈미조개의 샤부샤부. 사진 이우석

서정적인 바다 풍경 품은 서부산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자면, 서부산은 우리 역사상 ‘최초의 국제결혼’이 이뤄진 금관가야 김수로왕과 허황옥의 설화가 남아 있는 곳이다. 김수로왕과 결혼해 인도계 한국인이 된 허황옥은 서부산 대저 쪽으로 돌배를 타고 왔다. 이 지역에도 가락국의 신화가 여기저기 전해진다. 송정동 망산도가 그곳이다. 인도에서나 볼 수 있는 특유의 돌무더기와 배가 가라앉았다는 유주암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흥국사는 김수로왕과 허황옥이 신혼 첫날밤을 보낸 곳이다. 경내에 허황옥전이 따로 보존돼 있다. 부산시와 김해시는 이 지역을 묶어 ‘허황옥 신행길’로 지정, 투어 코스를 만들었다.

서부산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다대포다. 동부산에 해운대가 있다면 서부산엔 다대포 해변이 있다. 중장년층에겐 무장 공비 침투 사건으로 이름이 익숙한 곳이지만 남해 특유의 서정적 풍광이 오롯이 남은 곳이다. 수심이 얕고 모래가 단단한 해변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동쪽 해변엔 다대포 해변을 나누는 몰운대(沒雲臺)가 있어 바다에서 해변을 다시 바라보는 풍경도 근사하다.

낙동정맥이 마지막으로 솟았다 바닷물에 잠겼다는 몰운대는 원래 섬이었지만 현재는 곶(串)처럼 불룩 튀어나온 바위산이다. 탐방로 주변으로 꼿꼿하고 늠름한 해송이 일렬로 도열한 가운데 관측초소까지 한 바퀴 돌아 나오는 트레킹 코스가 특히 좋다. 전망대 구실을 하는 관측초소에서 바라보는 남해의 풍경이 빼어나다. 다대포 앞에는 세계 최대급 규모의 ‘꿈의 낙조 분수’가 있는데 1000여 개가 넘는 노즐에 최고 55m까지 물이 올라간다.

서부산 투어의 핵심은 김해국제공항을 이용하는 것이다. 서부산은 공항이 가까워 한 바퀴 둘러보는 1박 2일 내지 2박 3일 투어로 짜기에 좋다.

그동안 알고 있던 화려한 부산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 새로운 매력을 느낀다. 호젓하고 서정적 분위기로 만난 ‘광역시’ 부산의 맨 얼굴. 서부산의 풋풋하고 수줍은 듯한 그 미소는 썩 아름다웠다.


▒ 이우석
놀고먹기 연구소 대표, 성균관대 미술교육학과, 전 여행기자협회 회장


여행수첩

맛집 부산 강서구 가덕해안로에 있는 소희네집은 해물 정식이 맛있다. 한정식처럼 갖은 반찬을 미역국과 함께 차려내는데 대부분 신선한 해물이다. 새우나 전복 등 추가 메뉴가 따로 있는데 안 시켜도 밥 한 그릇 먹기엔 과할 정도로 푸짐하다. 단 네 명이 가야 좋다. 둘이 가나 넷이 가나 3만2000원을 받는다.

부산 강서구 명지동에 있는 명지선창회타운은 지역 명물 갈미조개를 취급하는 집들이 몰려 있는 곳이다. 갈미조개는 새조개처럼 탱글탱글하고 달콤한 맛이 나는 조개다. 맛이 가득 찬 갈미조개는 샤부샤부로 데쳐 먹거나 아예 수육으로 맛보면 된다. 삼겹살을 함께 곁들여 갈삼구이로 먹어도 좋다. 금소리 갈미조개집이 밑반찬도 좋고 육수도 잘 내 많은 이가 찾는다. 4만원(소)

여행 상품 스프링여행국제그룹의 한국 법인, 재미난투어는 상대적으로 인파가 몰리지 않아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가능한 ‘서부산투어’ 상품을 출시했다.

환경·생태와 자연·역사·문화 관광에 방점을 찍었다. 코스는 을숙도 하구 에코센터, 낙조가 아름다운 아미산 전망대, 다대포 해수욕장과 몰운대, 가덕도 외양포마을 및 포진지터, 금관가야 허황옥 신행길 등을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