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사진작가 로라 비달(바바라 레니)의 끔찍한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과연 피의자의 거짓말은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가. 흥미진진한 전개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사진 IMDB
영화는 사진작가 로라 비달(바바라 레니)의 끔찍한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과연 피의자의 거짓말은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가. 흥미진진한 전개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사진 IMDB

사람은 하루 평균 약 200번의 거짓말을 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재미있어서, 근사하게 보이고 싶어서, 자신이나 다른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해서 또는 무례하지 않으려고 그리고 잘못을 감추거나 어떤 이익을 바랄 때, 누구나 시시때때로 거짓말을 한다. 그 목적과 이유는 저마다 다르지만, 거짓말의 공통점은 하나다. 진실을 감춘다는 것.

외딴 도시의 호텔 방, 사진작가 로라가 둔기에 맞아 죽었다. 그녀의 주변에는 10만달러 상당의 지폐가 흩어져 있고 경찰이 들이닥쳤을 때 문은 안으로 잠겨 있었다. 창밖으로 도피하는 것도 불가능한 구조, 누구도 나가거나 들어갈 수 없는 밀실 살인이다. 혐의는 약간의 상처만 입은 채 함께 방에 있던 아드리안에게 향한다. 경찰은 내연관계가 귀찮아진 그가 로라를 죽인 것으로 의심하지만, 성공한 젊은 사업가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던 그는 함정에 빠진 것뿐이라며 결백을 주장한다. 거액의 보석금을 내고 집에서 재판을 기다리고 있던 아드리안, 그 앞에 승률 100%를 자랑하는 30년 경력의 변호사, 버지니아 굿맨이 찾아온다.

살인 사건이 세상에 던지는 질문은 간단하다. 누가, 왜 죽였는가? 그러나 결과에서부터 시작점을 향해 시간을 거슬러 가야 한다는 데 수사의 어려움이 있다. 범인은 그림자처럼 숨어서 상황을 왜곡하고 증거를 조작하고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사건의 본질을 흐린다. 진상을 밝히려는 사람은 죄를 감추려는 범인과 두뇌 싸움을 벌이지 않으면 안 된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해야 하는 것은 경찰과 검사만이 아니다. 의뢰인을 보호하려면, 어디까지 거짓이고 어디까지 진실인지 변호인은 더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오늘 처음 만난 변호사를 믿고 모든 걸 다 말해도 되는 것일까, 아드리안은 망설인다. 하지만 검사가 주요 증인을 확보했고 판사의 소환 명령이 곧 있을 것이란 정보를 입수하자마자 대비책을 마련하기 위해 약속 시각보다 일찍 찾아왔다는 굿맨에게 그는 경찰에게 말하지 않았던 사건의 경위를 풀어놓기 시작한다.

살인사건이 있기 3개월 전, 로라와 비밀여행을 즐기고 돌아오던 그는 더 이상 만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한다. 두 사람에겐 지켜야 할 일과 가정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로라는 절대 그럴 수 없다며 이별에 반대한다. 감정이 격해지며 말다툼이 이어지던 중, 충돌사고가 나고 만다. 마주오던 차의 운전자가 사망한 것이다.

경찰에 신고하려는 아드리안을 로라가 제지한다. 경찰에 알리면 불륜관계가 폭로되고 결혼생활은 파탄 나고 회사도 타격받는다. 그렇게 미래를 망쳐야 할까, 주저하던 아드리안은 로라가 시키는 대로 트렁크에 운전자를 옮겨 싣고 사고 차를 호수 깊이 수장시킨다.

집으로 돌아온 아드리안은 자신의 차를 폐차하고 프랑스 출장을 다녀온 것으로 알리바이까지 손봐놓는다. 그날의 사고는 그렇게 없었던 일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목격자가 있었다. 그자가 모든 걸 폭로하겠다고 협박했고 호텔로 돈을 가져오라고 지시했으며, 로라를 죽였다고 아드리안은 말한다.

치정살인이 아닌 목격자의 협박 사건이라는 진술을 어느 정도는 납득하면서도 굿맨의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로라를 죽이고 어떻게 밀실을 빠져나갔는가? 돈이 목적이었다면 왜 돈을 가져가지 않았는가? 아드리안은 어째서 죽이지 않았을까? 만약 검사가 이 모든 답을 알고 있다면 당장 구속영장이 청구될 거라며 굿맨은 경고한다. “감옥 가기 싫으면 다신 나에게 거짓말하지 말아요.”

아드리안은 그제야 굿맨에게 목숨을 맡겨도 좋을 것 같은 신뢰가 생겼다며 거짓의 베일을 또 한 겹 벗는다. 사실 그는 로라의 살인범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그가 사고 증거를 인멸하러 간 사이, 고장 난 아드리안의 차에 남아 있던 로라는 근처 마을에 사는 자동차 정비공, 토마스라는 노인의 도움을 받는다. 그런데 자동차를 고치는 동안 그의 집에서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던 로라는 조금 전 자신이 사고로 죽게 한 운전자가 그들의 아들, 다니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친절을 베풀었으나 그 사람이 내 자식을 죽게 한 범인이라는 걸 알았을 때, 아들을 해친 자가 아무렇지 않게 내 집에서 차를 마시며 웃던 사람이라는 걸 알았을 때, 그 충격은 어떨까. 로라가 허둥거리며 떠나는 걸 수상하게 여겼던 토마스는 그날 이후 다니엘이 실종된 것과 그녀가 연결되어 있음을 직감한다.

“자식이 갑자기 사라지는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되면 부모는 더 무서울 게 없는 법이오.” 그렇게 토마스는 로라와 아드리안을 찾아내 협박해왔다는 것이다.


치밀한 시나리오 돋보이는 스페인 영화

굿맨은 사건을 정리한다. 다니엘을 죽인 것은 로라다. 로라를 죽인 건 토마스다. 로라의 손에 아들을 잃은 토마스에겐 배심원들이 납득할 만한 살인 동기가 있다. 하지만 아드리안이 살인 혐의를 벗으려면 세상이 모르고 있는 비밀, 그날의 교통사고를 드러내야 한다. 현장에 로라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살인자가 되지는 않더라도 사망사고 은폐 사실을 인정하는 건 아드리안에겐 또 다른 부담이다. ‘실수는 했지만, 그깟 죽은 여자와 알지도 못했던 죽은 놈 때문에 힘들게 이룬 성공을 절대로 무너뜨릴 수 없다’고 그는 생각한다.

조급해진 아드리안은 있는 대로 털어놓았으니 변호사가 할 일을 하라고 굿맨을 다그친다. 그러나 백전백승의 변호사 경력에 한 치의 오점도 남기고 싶지 않은 굿맨은 오히려 그가 여전히 거짓말하며 자신을 이용하려고만 한다며 몰아세운다. 아드리안은 정말 모든 사실을 말한 것일까. 그런데 굿맨은 왜 그가 계속 거짓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2017년에 발표된 스페인 영화다. ‘폭풍의 시간’ 등 영화 팬이라면 기억하고 싶은 이름, 오리올 파울로 감독의 작품이다. 재판을 준비하는 변호인과 의뢰인이 대립하게 한 설정도 흥미롭지만, 그 속에서 거짓과 진실이 교차하며 두껍게 쌓인 퇴적층을 한 켜 한 켜 벗겨나가는 시나리오의 구성은 놀랍기만 하다. 사소한 것들을 치밀하게 계산하고 배치함으로써 전체를 장악하는 연출력은 관객의 몰입을 한순간도 흐트러뜨리지 않는다. 카멜레온이 주변 환경에 맞춰 몸 색깔을 바꾸며 자신을 보호하듯 인간에게 주어진 보호색은 거짓말하는 능력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사실을 밝혀내고야 말겠다는 누군가의 끈질긴 노력과 충돌할 때, 누군가의 거짓과 위선은 진실과 분리되어 실체를 드러낸다. 거짓이 바다를 이룬다 해도 거짓이 진실이 되지는 않는다. 색을 바꾸는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카멜레온은 작은 카멜레온일 뿐, 용이 되지 않는 것처럼.


▒ 김규나
조선일보·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 ‘트러스트미’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