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남기고 간 냉기는 기분 좋게 엔진을 감싼다. 그렇게 서울 도심 속 야간비행을 시작한다. 사진 양현용
겨울이 남기고 간 냉기는 기분 좋게 엔진을 감싼다. 그렇게 서울 도심 속 야간비행을 시작한다. 사진 양현용

늦은 밤 아내 몰래 도로로 나섰다. 혹여나 누군가의 단잠을 깨울까 봐 집에서 떨어진 곳까지 끌고 나와 시동을 걸었다. 겨울이 남기고 간 냉기는 기분 좋게 엔진을 감싼다. 그렇게 서울 도심 속 야간비행을 시작한다.

‘이대로 날아오르지 않을까?’ 출발을 알리는 초록 불과 함께 클러치를 튕기듯 놓으며 스로틀을 크게 열어 달려갈 때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다. 바이크는 곧 이륙할 것처럼 맹렬하게 속도를 붙인다. 순식간에 주변의 시야는 흐려지며 자연스럽게 계기반 너머로 모이는 소실점에 온 신경이 집중된다. 어느새 백미러에는 가로등 불빛만이 멀어진다.

모터바이크 라이딩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몸을 기울여서 방향을 바꾼다는 점에서 비행과 유사하다. 그렇게 보면 로 라이더 S를 타고 달리는 것은 한없이 낮은 곳을 나는 저공비행이라고 할 수 있다. 기울여 돌아갈 때 손을 뻗으면 노면에 손이 닿을 것 같이 가까워진다.

모두가 잠든 이 새벽에 목적지도 없이 달리는 것이 비행(飛行)일까, 아니면 비행(非行)이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뭐든 좋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며 일상의 스트레스를 다 털어버리고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한없이 조용한 순정의 로 라이더 S는 존재감을 감춘 스텔스 전투기처럼 아무도 모르게 비행, 아니 짧은 일탈을 마쳤다.

2016년 다이나 패밀리로 처음 선보인 로 라이더 S는 로 라이더를 기본으로 110큐빅인치(1801cc) 엔진을 얹고 다크커스텀(블랙을 중심으로 젊은 감각으로 꾸며진 스타일의 할리데이비슨 모델을 의미한다)으로 꾸며진 스페셜 모델이다. 기본적인 스타일은 1977년 XLCR 카페레이서를 오마주한 것이다. 2018년부터 다이나 패밀리가 소프테일 패밀리로 통합되며 잠시 라인업에서 사라졌다가 2020년에 다시 소프테일을 기반으로 재탄생했다.

로 라이더 S의 스타일은 그야말로 다크커스텀의 절정이다. 검은색임에도 화려한 느낌을 주는 비비드 블랙과 거친 파우더 코팅 그리고 무광 블랙까지 다양한 질감의 블랙이 섞여 있고 여기에 마그네슘 골드로 포인트를 준다. 다이나 패밀리 시절 드래그 레이서 스타일의 오픈형 에어필터는 얌전한 스타일의 타원형 디자인으로 바뀌었고 특징적이던 탱크의 배지는 브론즈 컬러의 레터링으로 대체되는 등 전반적인 디자인의 과격함은 줄었고 세련미가 강조됐다.

하지만 성능 면에서는 큰 발전이 있다. 차체는 더 가벼워지고 엔진은 강력해진 덕분이다. 밀워키-에잇 114엔진이 퍼포먼스의 중심에 있다. 엔진은 1864㏄ 배기량으로 실린더 하나에 932㏄의 엄청난 크기로 한 발, 한 발 터트리는 토크가 엄청나다. 덕분에 단거리 가속은 어지간한 스포츠바이크에도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길고 낮은 데다가 프런트가 묵직해서 빠른 가속에도 안정적이기 때문에 더 빠르게 치고 나갈 수 있다.

빠른 가속 성능만큼이나 제동 성능도 인상적이다. 프런트 브레이크의 사양은 300㎜의 대구경 더블디스크와 4피스톤 캘리퍼 조합이다. 할리데이비슨 특유의 두툼한 레버가 섬세한 조작감을 조금 깎아 먹지만 레버를 누르는 대로 솟아나는 강력한 제동력이 믿음직하다. 특히 프런트 포크가 제동 시 하중을 받아주면서도 노면 추종성을 놓치지 않는 점이 안심감을 준다.

로 라이더 S의 주행 성능이 돋보이는 것은 날렵한 타이어 폭의 영향도 크다. 프런트 110㎜, 180㎜로 과장되지 않은 사이즈의 타이어는 당연히 좋은 핸들링을 만들어낸다. 팻보이나 팻밥, 브레이크아웃 등과 비교하면 코너를 진입하며 기울일 때와 돌아갈 때의 저항이 확실히 적다. 여기에 로 라이더 기본형과 비교해도 핸들링이 민첩하게 세팅돼 있다. 이 모든 것이 주행의 즐거움을 위한 것이다.

시트에 앉으면 포지션은 의외로 크지 않다. 무릎이 직각으로 꺾여 내려오는 자세에 모토크로스 스타일의 핸들 바가 조합돼 적당히 터프하지만 느긋하지는 않은 형태가 취해진다. 기본적으로 바이크를 적극적으로 다루기 좋은 자세다.

다만 대부분의 할리데이비슨이 그렇듯 하체를 조이고 타는 바이크가 아니지만 엉덩이 뒤쪽을 든든히 받쳐주는 시트 덕분에 급가속에도 뒤로 밀릴 것 같은 불안감이 없다. 오히려 이러한 자세가 주는 조금 헐렁한 감각이 아주 마음에 든다.


2020년에 다시 소프테일을 기반으로 선보인 로 라이더 S. 사진 양현용
2020년에 다시 소프테일을 기반으로 선보인 로 라이더 S. 사진 양현용
차체는 더 가벼워지고 엔진은 더 강력해졌다. 사진 양현용
차체는 더 가벼워지고 엔진은 더 강력해졌다. 사진 양현용
빠른 가속 성능만큼이나 제동 성능도 인상적이다. 사진 양현용
빠른 가속 성능만큼이나 제동 성능도 인상적이다. 사진 양현용

선입견을 깨부수다

할리데이비슨에 대해 대중이 가진 선입견은 뭐가 있을까? 시끄럽다? 배기량만 크고 느리다? 브레이크가 잘 안 듣는다? 감성 빼면 성능이 떨어진다? 등의 이야기가 마치 사실처럼 회자된다. 사실 거의 모든 할리데이비슨에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지만 특히 로 라이더 S를 타보면 그런 생각은 잘못됐음을 알게 될 것이다. 순정 상태로는 그리 시끄럽지도 않고 빠르고, 잘 서고, 여기에 머슬 크루저의 남성미는 물론 할리데이비슨만의 유니크한 감성까지 충족시켜 준다.

여러모로 상당히 잘 만들어진 모델이며 이 바이크의 경쟁자를 꼽아보라면 할리데이비슨 브랜드밖에서는 떠오르지 않을 만큼 할리데이비슨의 독보적인 매력을 잘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신형 소프테일 시리즈가 다이나 패밀리의 빈자리를 충분히 메워주고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새로운 로 라이더 S를 타면서 다이나 패밀리 시절이 전혀 그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