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골프의 고향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는 퍼블릭코스로 일요일에는 일반에게 개방돼 누구나 코스를 자유롭게 산책할 수 있다. 언뜻 보면 밋밋하고 평범한 코스 같아 보이지만 보비 존스, 잭 니클라우스, 타이거 우즈 같은 전설들은 똑 같은 곳에서도 바람과 상황에 따라 매번 창의적인 샷을 해야 하는, ‘골프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이라고 극찬했다.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 기자
6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골프의 고향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는 퍼블릭코스로 일요일에는 일반에게 개방돼 누구나 코스를 자유롭게 산책할 수 있다. 언뜻 보면 밋밋하고 평범한 코스 같아 보이지만 보비 존스, 잭 니클라우스, 타이거 우즈 같은 전설들은 똑 같은 곳에서도 바람과 상황에 따라 매번 창의적인 샷을 해야 하는, ‘골프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이라고 극찬했다.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 기자

박인비가 2013년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그랜드슬램에 도전할 때 취재차 찾은 올드 코스를 오전 오후 두 차례씩 10번 이상 돌아본 적이 있다. ‘골프의 고향’에 왔다는 벅찬 심정과 6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코스가 어떻게 지금도 남녀 메이저 대회를 열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컸다. 솔직히 어떤 코스 밸류가 있는지 알기 어려웠다. 112개나 되는 작고 깊은 항아리 벙커 중 상당수는 왜 파놓은 것인지 궁금했고, 페어웨이도 끊긴 곳이 여러 곳이어서 혼란스러웠다. 우연이 지배하는 혼돈의 공간 같았다. 그리고 6년이 지난 지난해 올드 코스를 다시 찾았다.

‘골프의 고향’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에 영원한 젊음을 선물한 이들은 다름 아닌 보비 존스(1902~71), 잭 니클라우스(80), 타이거 우즈(45) 같은 골프의 전설들이다. 이들은 플레이와 헌사를 통해 올드 코스에 새로운 신화(神話)를 아로새긴 인물들이다. 존스는 1930년 한 해에 4대 메이저 대회를 모두 석권하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했을 정도로 출중한 실력을 갖췄지만 영원히 아마추어 골퍼로 남았던 인물이다. 존스도 처음에는 올드 코스에서 시련을 겪었다. 1921년 디오픈에 처음 출전했을 때 3라운드 11번 홀까지 경기를 한 뒤 기권했다. 심지어 자신의 스코어 카드를 찢어버렸다. 그는 전반에 46타를 친 데 이어, 11번 홀 벙커에서 4타 만에 탈출하고는 항복했다. 하지만 존스는 1927년 올드 코스에서 열린 디오픈에서 우승했고, 1930년 브리티시 아마추어챔피언십에서는 4번 홀(현재는 파4지만 당시에는 파5 홀)에서 앨버트로스를 기록하며 정상에 오르기도 했다. 보비 존스는 “내 인생에서 세인트앤드루스에서의 경험만 남아있어도, 충분히 행복한 인생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니클라우스는 2005년 올드 코스에서 열린 디오픈을 자신의 현역 은퇴 무대로 삼았다. 메이저 최다승인 18승 기록을 갖고 있는 그는 디오픈에선 3차례 우승(1966·1970·1978)을 차지했다. 1978년 대회가 바로 올드 코스에서 열렸다. 팬들의 기립박수가 쏟아지는 가운데 그가 선수로서는 마지막으로 18번 홀 스윌컨 다리에서 포즈를 취하는 장면은 골프사의 명장면으로 남아 있다. 그의 은퇴를 기념해 스코틀랜드왕립은행(RBS)은 2005년 디오픈에 맞춰 니클라우스의 모습을 담은 스코틀랜드 5파운드 지폐 2만 장을 한정권으로 제작했다. 잭 니클라우스는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골퍼가 되려면 세인트앤드루스에서 열리는 디오픈을 우승해야 한다”고 했다.


1 좁고 깊은 올드 코스의 항아리 벙커는 악명 높다. 공이 놓인 자리에 따라 반대쪽으로 쳐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 기자 / 2 2005년 디오픈에서 은퇴한 잭 니클라우스가 18번 홀 스윌컨 다리에서 포즈를 취했다. 사진 디오픈닷컴 / 3 올드 코스는 1870년 올드 톰 모리스가 1번 홀 그린을 만들면서 시계 방향으로 돌던 코스를 거꾸로 돌게 됐다. 사진 디오픈닷컴
1 좁고 깊은 올드 코스의 항아리 벙커는 악명 높다. 공이 놓인 자리에 따라 반대쪽으로 쳐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 기자
2 2005년 디오픈에서 은퇴한 잭 니클라우스가 18번 홀 스윌컨 다리에서 포즈를 취했다. 사진 디오픈닷컴
3 올드 코스는 1870년 올드 톰 모리스가 1번 홀 그린을 만들면서 시계 방향으로 돌던 코스를 거꾸로 돌게 됐다. 사진 디오픈닷컴

우즈는 2000년(올드 코스)과 2005년(올드 코스), 2006년(로열 리버풀) 세 차례 디오픈에서 우승했다. 우즈는 “골프의 고향에서 디오픈을 우승하는 것이야말로 이 스포츠에서 궁극적인 성취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우즈는 2000년 우승 당시 단 한 차례도 벙커에 빠지지 않았다. 올드 코스를 돌아보며 우즈가 했던 말들을 떠올렸다.

우즈는 “1995년 처음 올드 코스에서 라운드를 한 이후로 전 세계에서 가장 멋진 곳이라고 생각했다”며 사랑 고백을 했다. “창의성 때문이다. 여기선 모든 종류의 샷을 해야 한다. 이곳에는 다양한 바람이 불고 바람에 따라 완전히 골프장이 달라진다”고 했다. 바람이 다른 코스를 만들고 그래서 경험이 중요하다고 했다.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야디지북에 있지 않은(경기와는 관계없어 보이던) 벙커에 공이 들어갈 수 있다. 때로는 옆 홀로 공을 쳐야 한다. 한 번은 맞바람 속에서 9번 홀을 갔더니 바람 방향이 바뀌어서 돌아오는 9번 홀도 또 맞바람이었다. 내 생애 가장 긴 골프장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우즈는 달 표면처럼 황량해 보이는 올드 코스를 이해하는 결정적인 설명을 했다. 우즈는 “죽기 전에 올드 코스를 거꾸로(backwards) 라운드 해보고 싶다. 1번 홀 티잉그라운드에서 17번 홀 그린으로 2번 홀에서 16번 홀로 그렇게 하고 싶다. 그러면 왜 어떤 벙커들이 그곳에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올드 코스는 과거에는 시계 방향으로 돌던 코스가 지금은 반대 방향으로 바뀌었다. 1870년 올드 톰 모리스가 1번 홀 그린을 만들면서 현재처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게 됐다. 1870년대부터 제2차 세계대전 직후까지는 격주로 한 주는 시계 방향, 다음 주는 시계 반대 방향 등 양방향으로 코스를 활용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도는 것이 디오픈 때 더 많은 관중이 들어올 수 있고 원활한 동선이 나오게 되자 굳어지게 됐다. 지금도 매년 4월에 며칠 동안 올드 코스를 거꾸로 치는 게 허용된다.  

현재의 방향에서 거꾸로 코스를 돌아본 골퍼들은 그제야 이전에는 생뚱맞게 있던 벙커들이 왜 그 자리에 있는지 알게 된다. 찾아보니 ‘올드 코스 거꾸로 치기(The Old Course in Reverse)’를 위한 스코어카드도 있다.

우즈가 말한 것처럼 1번 홀에서 17번 홀 그린으로 플레이한 뒤 2번 홀이 아닌 18번 홀 티박스에서 16번 홀 그린으로 도는 방식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파4 홀로 꼽히는 17번 홀(별칭 Road Hole)도 색다른 감각으로 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하면 티 박스를 기준으로 1번에서 시작해 18번, 17번, 16번 등 역순으로 플레이해 마지막에는 2번 홀 티박스에서 18번 홀 그린으로 마무리하게 된다.

이렇게 경기해도 큰 불편이 없는 이유가 있다. 올드 코스에는 싱글 그린이 딱 4개밖에 없다. 1번, 9번, 17번 그리고 18번 홀이다. 나머지 홀들은 하나의 그린을 2개 홀이 공유한다. 여기에도 나름의 질서가 있다. 그린을 공유하는 홀 번호를 짝지어 보면 2-16, 3-15, 4-14, 5-13, 6-12, 7-11, 8-10의 순이다. 아웃과 인 코스가 순서대로 교차한다. 그린 폭이 100야드 넘는 곳이 있을 정도로 크다.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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