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수방의 사진집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사진 김진영
토마스 수방의 사진집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사진 김진영

사진이 디지털화하면서, 사진을 출력해서 보관하는 것보다 디지털 저장 매체에 파일 형태로 저장해두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러다 보니 열심히 사진 파일을 관리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찍은 사진을 다시 찾아보는 것이 다소 어려워졌다. 카메라나 스마트폰을 바꾸면 사진이 사라지기도 한다.

디지털화하기 이전, 필름으로 사진을 찍던 시기에 우리는 인화한 사진을 집 안 한쪽에 보관하곤 했다. 장롱 안에 보관한 앨범을 가끔 꺼내 들춰보기도 했다. 인화된 사진은 소멸되기 위해서도 물리적인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손으로 찢거나 휴지통에 버리는 등 말이다. 버려진 사진은 종종 벼룩시장으로 흘러 들어가 새로운 손길을 기다리며 어딘가에 놓여 있기도 한다.

인화된 사진이 본래 주인의 손을 떠나면, 의도치 않은 곳에서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된다. 최근 많은 작가가 수집한 사진을 소재로 사진집을 선보이고 있다. 네덜란드 작가 에릭 케셀(Erik Kessel)은 벼룩시장이나 중고 가게에서 수집한 사진 중 흥미로운 주제를 골라 책을 펴내고 있다. 아기의 기념사진이나 결혼식 사진같이 가족에게 중요한 사건을 담고 있는 가족 앨범의 아름다움을 담은 ‘Album Beauty(RVB Books, 2012)’, 꽃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여성의 사진을 모은 ‘Mother Nature(RVB Books, 2015)’ 등이 그의 대표적인 책이다. 벨기에 작가 티에리 스트루베이(Thierry Struvay)는 벼룩시장에서 수집한 사진 가운데 사랑, 미움 혹은 알 수 없는 다른 이유로 인물의 일부가 오려져 나간 사진을 모아 ‘Love&Hate&Other Mysteries(August Editions, 2016)’를 펴냈다.

수집한 사진을 소재로 새롭게 기획해 사진집을 선보이는 경향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가 중 한 명이 프랑스 작가 토마스 수방(Thomas Sauvin)이다. 그는 중국 베이징에서 10년 넘게 거주하면서, 중국인의 삶이 담긴 네거티브 필름(Negative Film·피사체와 반대의 톤이나 색상을 가진 필름)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는 명망 있는 작가의 사진이나 유명한 장소가 담긴 사진 같은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히려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변화하기 시작한 일반 중국인의 삶의 모습을 흥미롭게 생각했다.

그러다 그는 도시 외곽의 재활용품 처리 공장에서 버려진 50만 장의 네거티브 필름을 구매한다. 방대한 양의 필름을 살펴보고 분류하고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거치던 중, 그는 결혼식장에서의 다소 생소한 모습을 발견한다. 신부가 하객의 담뱃불을 붙여주는 모습이나, 특이하게 담배를 피우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매우 특이한 광경이었다. 중국 결혼식에 몇 번 가본 적이 있지만 이런 건 본 적이 없었다. 나의 중국인 친구 대부분 역시 그러했다.”

그가 발견한 것은 지금은 대체로 사라졌지만 1980년대에서 1990년대의 사진에는 오롯이 담겨 있는 당시 중국 결혼식의 풍습이었다. 중국 결혼식에서는 하객에게 감사의 의미로, 새로 결혼하는 부부에게는 행운을 비는 의미로 담뱃불을 붙이고 함께 담배를 피우는 관습이 있었다. 하객이 담배를 물고 있으면 신랑이나 신부가 담뱃불을 붙여준다거나, 신랑이나 신부가 담배를 물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어린아이가 담배를 물고 있는 다소 충격적인 모습도 있다. 한 사진에는 음료수 페트병에 구멍을 뚫어 여러 개의 담배를 꽂은 후, 페트병 입구로 담배를 피우는 희귀한 광경도 보인다.

토마스 수방은 누가 찍었는지 알 수 없는, 다시 말해 익명의 사진가가 찍은 사진을 모아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Until Death Do Us Par, Jiazazhi Press, 2015)’를 출간했다. 2015년 1쇄로 1000부를 발행한 이 책은 금세 소진돼 같은 해에 2쇄 2000부를 추가 인쇄했고, 2017년 3쇄 2000부, 2018년 4쇄 2000부를 찍었다.

유명한 작가의 사진집도 아닌 이 책이 이렇게 많은 판매 부수를 기록한 것은 사진집 시장에서 이례적인 일이다. 이러한 대성공을 거둔 데는 재미있고 독특한 장면 못지않게 이 책의 디자인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책은 일명 ‘담뱃갑 사진집’으로 불린다. 이 책을 처음 보면, ‘담배네?’라는 생각이 드는데, 왜냐하면 책이 실제 담뱃갑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토마스 수방은 중국의 유명 담배 브랜드인 솽시(Shuangxi) 담뱃갑 크기에 맞게 사진집을 제작해서 책을 실제 담뱃갑에 넣었다. 그래서 독자는 마치 담배를 사는 기분으로 책을 구매해 비닐을 까고 담뱃갑 뚜껑을 열어 책을 꺼낸다. 서점의 경우, 출판사에 책을 대량으로 주문하는데, 출판사는 담배 보루에 책을 10권 단위로 담아 보내준다. 담배를 주제로 한 책을 생산, 유통하는 너무나 재미있는 아이디어인 셈이다.

토마스 수방을 필두로, 수집한 사진을 소재로 한 이런 작업은 ‘수집가와 작가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낳는다. 특히나 토마스 수방의 경우처럼, 수집한 사진에 채색한다거나 화학약품을 떨어뜨린다거나 하는 후가공이 전혀 없는 경우에는 더욱더 그렇다. 토마스 수방은 이 책에 담긴 사진이 생산되던 당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토마스 수방은 작가가 아닌 건가?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의 한 작품. 음료수 페트병에 구멍을 뚫어 여러 개의 담배를 꽂은 후, 페트병 입구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담겨 있다. 사진 김진영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의 한 작품. 음료수 페트병에 구멍을 뚫어 여러 개의 담배를 꽂은 후, 페트병 입구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담겨 있다. 사진 김진영

편집 방식 고민하면 ‘수집가’아닌 ‘예술가’

만약 그가 이미지를 수집하고 분류해 단순히 제시하는 것에서 그쳤다면, 그는 수집가 혹은 기록연구사(Archivist)로 불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사진집이라는 매체를 통해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에 더해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를 고민하고 표현한다. 그의 다른 책 ‘17 18 19(Void, 2019)’는 교도소의 압류품 센터에 압류된 휴대용 칼, 드라이버, 보석 등의 물건을 찍은 네거티브 필름을 소재로 한 작업이다. 기록연구사라면 이 필름으로 포지티브 이미지를 만들어 어떤 물건이 있는지를 정확하고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목표가 될 것이다.

토마스 수방의 선택은 달랐다. 그는 병원에서 엑스레이 기계가 우리 몸의 문제를 감지해 네거티브 필름의 형태로 보여주는 것처럼, 교도소에서는 카메라가 수감자의 물건을 고발해내듯 담아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네거티브 필름 자체를 표현하기 위해 검정 종이에 은색 잉크를 사용했다. 사진의 주제에 맞는 독특한 물성과 형태를 고민해 사진집을 만드는 것, 그것이 그가 예술을 하는 방식이다.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분명 이 책에 실린 사진 한 장 한 장은 예술사진이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은 예술품이다.

토마스 수방은 베이징 은광 프로젝트( Beijing Silvermine Project)라는 이름 아래 계속해서 네거티브 필름을 수집하고 있으며, 책의 출간과 전시를 이어 가고 있다.

사진을 출력하지 않는 시대에 사는 우리의 일상이 미래에 어떤 방식으로 재출현하게 될지 상상해본다. 100여 년 후, 어떤 아티스트는 버려진 외장하드나 메모리 카드를 수거해 그 안에 담긴 이미지를 가지고 작업을 할지도 모른다. 사진은 자신의 운명을 모른다는 말이 있듯이, 미래의 아티스트가 그 안에서 현재 우리에게는 일상적이고 진부한 무언가를 새롭게 발견할지도 모를 일이다.


▒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