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사유 궁전 전경.
베르사유 궁전 전경.

1월 말의 프랑스 파리는 유독 추웠다. 에펠탑은 센강에서 피어오른 아지랑이로 둘러싸여 뿌옇게 보였다. 에펠탑 뒤를 종종걸음으로 가로질러 교외로 나가는 기차를 타고 베르사유로 향했다. 비록 추운 날씨와 교통 파업으로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세 배나 걸려 고생스럽게 가고 있었지만, 마음만은 들떠 있었다. 베르사유 궁전 오페라 극장에서 열리는 장 필립 라모의 오페라를 보러 가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장 필립 라모는 바로크 시대가 낳은 유명 작곡가다. 오페라를 보려고 두 달 전에 좌석을 예매했다.

베르사유역에서 베르사유 궁전으로 걸어가는 길에 짙게 어둠이 내려있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도 저 멀리 뻥 뚫린 광장을 가로질러 금색 테두리가 끝없이 이어진 베르사유 궁전 지붕이 눈에 들어왔다. 궁전 정문에 다다랐을 때 화려하고 장대한 궁전의 자태에 압도당했다.

베르사유 궁전은 유럽에서 가장 큰 궁전 중 하나로 ‘태양왕’ 루이 14세가 절대 왕정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베르사유 궁전은 1600년대 유럽에서 ‘핫플레이스’로 불릴 정도로 유럽 귀족 사이에서 선망이 되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확립된 매너, 격식, 문화, 예술 등이 곧바로 유럽의 유행으로 이어질 정도였다.

피아니스트인 필자가 주목한 것은 베르사유 궁전에서 행해진 음악이다. 17~18세기 프랑스 귀족뿐만 아니라 프랑스 각지에 퍼져있던 최고 수준의 음악가들이 베르사유로 모여들었다. 피아노보다 앞서 쓰인 건반악기인 하프시코드를 이용한 음악, 루이 14세가 애정을 가졌던 발레 음악, 오페라가 18세기 초·중반까지 베르사유 궁전에 울려 퍼졌다. 베르사유에서는 당시 유럽 음악을 주도하던 이탈리아 음악을 벗어난 독자적인 음악 세계가 만들어졌다.


베르사유 궁전 오페라 극장 내부. 사진 안종도
베르사유 궁전 오페라 극장 내부. 사진 안종도

이런 흐름에 큰 공헌을 한 음악가 중 한 명이 오페라 작곡가 장 필립 라모다. 장 필립 라모는 1683년에 태어나 1764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오르가니스트(오르간 연주자), 쳄발리스트(쳄발로 연주자)로 활동했다. 그는 프랑스 건반 음악에 중요한 이정표가 된 하프시코드 모음집 외에도 다수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그는 이탈리아 음악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프랑스 오페라 형식을 완성했다. 또한 그는 근대 화성학의 기초를 확립했다. 오늘날 재즈 화음의 근원을 장 필립 라모가 확립한 화성학에서 찾는 이가 있을 정도다. 그는 지금 들어도 놀라울 만큼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했다.

장 필립 라모가 살아생전 마지막으로 작곡한 오페라는 ‘북풍의 신(Les Boréades)’. 이 곡은 베르사유 궁전 중에서도 음악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오페라 극장’에서 열렸다. 베르사유 궁전 중앙에 있는 본관 바로 오른쪽에 붙어있는 오페라 극장은 1770년, 루이 15세 때 완공됐다. 이후 장 밥티스트 륄리의 오페라 ‘페르세’를 필두로 프랑스의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오페라와 발레 공연이 상연됐다.

높고 기다란 회랑을 따라 들어가자 오페라 극장 직원이 내부로 향하는 문을 열어줬다. 오페라 극장 내부는 모든 이가 탄성을 쏟아낼 정도로 아름답고 화려했다. 말발굽 모양의 오페라 극장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베르사유 궁전이 지어진 시기, 프랑스 왕실의 권위를 보여주듯 사방은 금빛으로 빛났고, 벽에는 갖가지 세공 예술 및 부조, 화려한 그림이 공연장을 휘감고 있었다.

장 필립 라모의 ‘북풍의 신’은 프랑스 고전 음악 연주를 전문으로 하는 ‘콜레지움 1704(Collegium 1704)’ 오케스트라가 연주했다. 이들의 연주와 성악가의 입에서 퍼져나온 음 하나하나는 루이 14세가 썼던 황금 왕관이 내뿜었을 법한 빛이 깃들어 있는 듯했다. 또한, ‘북풍의 신’이 가진 웅장함, 극도로 섬세하고 우아함은 베르사유 궁전 양식과 일맥상통한다고 느끼게 했다.


▒ 안종도
독일 함부르크 국립음대 연주학 박사, 함부르크 국립음대 기악과 강사


Plus Point

장 필립 라모
오페라 ‘북풍의 신(Les Boréades)’
성악가 바바라 보니, 폴 앤드루
함께 감상하면 좋은 음반

1763년 완성된 장 필립 라모의 마지막 작품 중 하나다. 총 5막으로 이루어진 서정 비극이다. 그리스 아라비스 전설을 기초로 서로 신분이 다른 이들의 사랑 이야기를 그려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이야기로 여겨졌다. 장 필립 라모가 세상을 뜬 뒤, 후대의 음악학자들은 당시 사회적으로 팽배했던 혁명 및 계몽주의의 영향이 반영됐다고 평가한다. 오페라 제4막에 나오는 ‘폴리네시아의 입구(Entrée de Polemnie)’라는 곡은 서정적이고 우아함이 깃들어 있어 가장 사랑받는 곡 중 하나다. 그가 살아있을 동안에는 공연되지 못했다. 이후 200년이 지난 1974년, 영국 런던에서 존 엘리엇 가드너의 지휘로 처음 연주됐다. 정식 초연은 1982년 프랑스 엑상프로방스에서 열렸다. 장 필립 라모가 평생 헌신한 음악의 모든 요소가 대가의 취향으로 다듬어졌기에 프랑스 바로크 오페라의 대표작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세계적 고전 음악 단체인 레자르 플로리상의 연주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