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안드레스 곤살레스의 책 ‘미국식 종이접기(American Origami)’. 책의 중앙 부분이 묶여 있지 않기 때문에 페이지의 오른쪽 절반을 왼편으로 넘기다가 오른쪽으로 완전히 젖히면 전혀 다른 페이지와 연결되면서 과거의 이미지가 나온다. 사진 김진영
사진가 안드레스 곤살레스의 책 ‘미국식 종이접기(American Origami)’. 책의 중앙 부분이 묶여 있지 않기 때문에 페이지의 오른쪽 절반을 왼편으로 넘기다가 오른쪽으로 완전히 젖히면 전혀 다른 페이지와 연결되면서 과거의 이미지가 나온다. 사진 김진영

미국의 사건·사고에 관한 기사를 접할 때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사안이 있다. 바로 총기 사고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매년 약 3만5000명이 총기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이 가운데 학교에서 발생한 총기 사고는 1970년대 163건에서 2010년대 426건으로 늘어났다. 학교 내 총기 사고는 제자리걸음 수준이 아니라 오히려 나빠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진가 안드레스 곤살레스(Andres Gonzalez)의 책 ‘미국식 종이접기(American Origami)’는 미국에서 발생한 학교 총기 사고를 다룬다. 6년 동안 그가 조사한 미국 내 학교 총기 사고에 대한 내용, 그가 찍은 사진 700여 점이 담겨 있다. 책은 콜럼바인 고등학교, 레드 레이크 고등학교, 버지니아 공대, 노던 일리노이 대학교, 샌디 훅 초등학교, 움프콰 커뮤니티 칼리지, 마저리 스톤맨 더글러스 고등학교 등 총 7곳에서 발생한 총기 사고를 차례로 보여준다. 각 챕터는 장소, 날짜, 시간, 사망자 수, 부상자 수를 간단히 기재하며 시작한다.

곤살레스는 총기 사고가 발생한 학교는 물론 학교 인근 주택가, 시내, 희생자들이 남기고 간 물건,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도착한 물건과 편지 등을 책에 담았다. 이뿐 아니라 당시 사건을 보도한 신문 기사나 학교에서 찍은 학생들의 단체 사진 등을 수록했다.

책의 중간중간에는 1인칭 인터뷰가 담겨 있다. 총기 사고 현장에서 살아남았지만, 트라우마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교직원은 “이 나라에 이런 일이 왜 일어나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하고, 희생자의 아버지는 “누구든지 잊혀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거의 모든 책은 찍개심이나 풀, 실 등을 이용해 책 중앙을 고정시키는 방식을 쓴다. 우리가 흔히 중철(中綴)이라 말하는 방법은 종이를 반으로 접은 중앙 지점에 찍개심을 박아 종이를 고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보통 ‘책이란 중앙이 묶여 있어 오른쪽 페이지를 왼편으로 넘기면서 보는 물건’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하지만 이 책은 책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내지를 반으로 접되, 책의 중앙부 대신 책의 가장 오른편을 찍개심으로 고정하는 방식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단순하지만 쉽게 생각하기 어려운 이 같은 발상의 전환은 책에 활짝 열리는 구조를 부여한다.

이 책의 특이한 제본 방식은 곤살레스가 성실하게 취재한 내용을 빛내준다. ‘미국식 종이접기’는 책의 중앙 부분이 묶여 있지 않기 때문에 페이지의 오른쪽 절반을 왼편으로 넘기다 오른쪽으로 완전히 젖히면 전혀 다른 페이지와 연결되면서 새로운 이미지가 펼쳐진다.

이런 제본 방식을 적용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보통의 책을 보듯 ‘미국식 종이접기’ 책장을 넘기면 미국 교외 지역의 한적한 풍경이 나타난다. 눈이 쌓인 겨울의 주택가, 안개 낀 새벽녘의 도로, 길가에 곱게 핀 꽃, 학생들이 즐겨 찾을 듯한 패스트푸드 음식점과 볼링장, 잔디가 푸르게 올라온 캠퍼스, 정갈히 늘어서 있는 기숙사 건물. 이런 모습은 사진 속 공간이 비극적 사건과 연루된 적이 없었던 듯 평화롭고 고요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이 이 책을 보는 첫 번째 방식이다.

그러나 이 책을 보는 두 번째 방식, 즉 오른쪽 절반을 왼편으로 넘기다 지금까지 읽었던 페이지를 오른쪽으로 젖히면 우리의 눈앞에 ‘과거’의 이미지가 펼쳐진다. 평화로운 학교에 끔찍한 총성이 울려 퍼졌던 ‘그날’의 충격이 떠오르는 사진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총격 사고 이후 교정을 가득 채웠던 추모 꽃과 물건이 가득 쌓인 모습, 희생자들이 남기고 간 소지품 등을 담은 사진은 ‘그날’로 되돌아간 느낌을 준다.


1 ‘미국식 종이접기’ 표지. 사진 김진영 2 총기 사고 생존자 인터뷰. 사진 김진영 3 평화로운 교정과 종이학. 사진 김진영
1 ‘미국식 종이접기’ 표지. 사진 김진영 
2 총기 사고 생존자 인터뷰. 사진 김진영 
3 평화로운 교정과 종이학. 사진 김진영

고요한 현재와 참혹한 과거가 공존

‘미국식 종이접기’의 독특한 제본 방식은 고요한 현재와 통곡이 가득했을 과거를 교차해서 보여준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다 보면, 겉으로 보이는 평화로움이 사실은 얼마나 위태로운 것인지, 얼마나 쉽게 깨질 수 있는지를 느낄 수 있다. 이 책에 담겨있는 이미지는 고요하지만, 무거운 울림을 주는 이유다.

미국 버지니아 지역 신문인 ‘버지니아 쿼털리 리뷰(Virginia Quarterly Review)’의 기자 폴 레예스(Paul Reyes)는 ‘미국식 종이접기’를 이렇게 평가했다.

“총기 사고가 미국의 학교를 어떻게 파괴했는지를 얌전하지만 깊이 있게, 가슴 저미는 방식으로 증언한다. 거의 매해 발생하는 공포를 미국 사람이 뼛속 깊이 아파하고 있음을, 공동체가 이를 어떻게 소화하고 있는지를 말이다.”

종이학은 사람들이 슬픔을 공유하고 나누는 방식을 상징한다. 총격 사건이 발생하면 쏟아지는 추모 물건 중에는 꼭 종이학이 있을 정도다. 곤살레스의 책 제목 ‘미국식 종이접기’는 총기 사고에 대한 슬픔을 애도하는 또 다른 방식이다.


▒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