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 모델 3는 약 40분 만에 배터리의 80%를 채울 수 있다. 다만 서비스센터가 전국에 한 곳뿐이라는 점이 걸린다. 사진 테슬라
테슬라 모델 3는 약 40분 만에 배터리의 80%를 채울 수 있다. 다만 서비스센터가 전국에 한 곳뿐이라는 점이 걸린다. 사진 테슬라

10년 넘게 자동차 잡지 기자로 있으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어떤 차를 타세요?”와 “어떤 차가 좋아요?”다. 그런데 요즘은 그 질문 사이에 “어떤 전기차가 좋을까요?”가 종종 섞여 있다. 그러고 보니 전기차에 대한 관심이 점점 많아지는 듯하다. 편집팀에서 유일한 20대인 막내 기자는 친구들 상당수가 첫 차 후보에 전기차를 꼭 넣는다고 말했다. 나 역시 몇 년 전만 해도 전기차라면 손사래를 쳤지만 요즘은 ‘다음 차로 전기차를 사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지난달 재규어 ‘I 페이스’를 3일 동안 시승할 기회가 생겼다. I 페이스는 재규어의 첫 배터리 전기차다. 바닥에 90 리튬이온 배터리를 깔아 환경부 기준 주행가능거리가 333㎞에 이른다. 굳이 ‘환경부 기준’이란 말을 넣은 건 우리나라가 전기차 주행거리 인증에 인색하기 때문이다. I 페이스는 국제표준배출가스시험방식(WLTP)에서 470㎞의 주행거리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국내에 들어오면서 100㎞ 이상 주행거리가 짧아졌다. 어찌 됐건 300㎞ 넘는 주행거리는 그리 짧은 편은 아니다. 잘만 달리면 3일 동안 충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촬영을 경기도 파주에서 진행하는 바람에 하루 만에 배터리의 50%가 바닥났다. 기본 주행거리가 길건 짧건 배터리 잔량이 50% 아래로 떨어지면 나는 불안해진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전기차 충전소를 찾아봤다. 생각보다 충전소는 꽤 많았다. 그중 남편 회사와도 가까운 판교역 공영주차장에 있는 충전소에 가기로 했다. 충전기를 꽂아놓고 남편과 저녁을 먹으면 시간이 딱 맞겠다는 계산에서였다.

하지만 충전은 계산대로 되지 않았다. 일단 환경부 전기차 충전소 홈페이지에서 충전기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까진 알려주지 않는다. 지하 4층에서 지상 7층까지 넓디넓은 공영주차장 어느 구역에 충전기가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다행히 충전기가 1층 출입구 근처에 있었지만 그 때문에 드나드는 차들이 많아 충전기 앞 주차구역에 정확히 주차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결국 비스듬하게 차를 세우고 충전기에 뜬 안내에 따라 신용카드를 화면에 댔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충전기가 내 신용카드를 인식하지 못했다. 그렇게 10분쯤 신용카드와 씨름하다 충전기 업체에 전화를 걸었는데 뜻밖의 해결책을 알게 됐다. 태그하는 방식의 충전기는 후불 교통카드 기능이 있는 신용카드만 사용할 수 있다. 다시 신용카드를 바꿔 결제까지 성공했지만 이번엔 충전기가 차를 인식하지 못했다. 열 번쯤 충전기를 뺐다 꽂았다를 반복하다 결국 충전에 성공한 시각은 주차장에 들어오고 30분이 지나서다. “왜 안 오느냐?”는 남편의 전화를 받고 자초지종을 설명한 후 생각했다. 전기차는 아직이라고.

만약 이런 불편을 감수할 각오가 돼 있다면, 집에 충전기를 설치할 상황이 된다면 전기차를 사는 것도 괜찮다. 출퇴근 거리가 길어 기름값이 부담이라면 전기차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전기차를 타면 고속도로 통행료나 공영주차장 이용료를 할인받을 수 있어 혜택도 쏠쏠하다. 국고보조금이 점점 줄고 있어(처음 국고보조금은 1500만원이었지만 올해는 900만원, 내년엔 800만원으로 준다) 어차피 살 거라면 일찍 사는 게 이득이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되는 전기차는 수소연료전지 자동차인 현대 넥쏘를 포함해 모두 13종이다. 이 가운데 어떤 전기차가 좋겠냐고? 13종을 모두 살펴본 후 내가 내린 결론은 아직 완벽한 전기차는 없다는 것이다. 주행거리가 길면 값이 비싸거나 뒷자리가 비좁고, 공간이 넉넉하면 주행거리가 짧거나 충전이 불편하다. 모든 것을 만족시키는 전기차는 아직 없다는 얘기다.

현대 코나 일렉트릭은 406㎞의 넉넉한 주행거리와 4000만원대의 합리적인 가격(보조금 반영 전)을 자랑하지만 뒷자리가 몹시 비좁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도 80%쯤 만족시키는 전기차가 있긴 하다. 기아 쏘울 부스터 EV와 테슬라 모델 3, 쉐보레 볼트 EV다.



비교적 만족도 높은 전기차 3인방

쏘울 부스터 EV는 최고급 노블레스의 기본 가격이 4830만원이지만 각종 보조금을 받으면 3000만원 초반에 살 수 있다. 64 배터리를 깔고 앉아 주행거리가 386㎞에 달한다는 것도 장점이다. 배터리가 바닥에 있어 실내 공간도 여유롭다. 트렁크 공간이 조금 좁긴 하지만 이건 뒤 시트를 접어 해결할 수 있다. 기아차 모델답게 편의장비도 풍성하다. 열선시트는 기본이고 93만원짜리 UVO 내비게이션 옵션을 넣으면 앞차와의 거리를 스스로 조절하는 것은 물론 내비게이션과 연동해 과속카메라 앞에서 속도를 줄이는 기능까지 발휘한다.

쉐보레 볼트 EV는 일찌감치 전기차 시장에 뛰어든 모델답게 기본기가 탄탄하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두르고 있어 밸런스가 좋고, 움직임에서 군더더기가 없다. 주행거리도 383㎞로 준수하다. 현대·기아차에 비해 편의장비가 부족하고 실내 디자인도 단순하기 그지없지만 대신 실내공간이 여유롭다는 것이 장점이다. 특히 뒷자리는 코나 일렉트릭에 비하면 매우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테슬라 모델 3는 롱 레인지 모델의 미국 환경보호국(EPA) 기준 주행거리가 499㎞에 달한다. 롱 레인지 모델은 기본 가격이 6239만원이지만 보조금을 받으면 4000만원대에 살 수 있다. 테슬라 전용 충전기로 충전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긴 하지만 V2 수퍼차저로 충전하면 약 40분 만에 배터리의 80%를 채울 수 있다. 한 가지 걸리는 건 서비스센터가 전국에 한 곳뿐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테슬라는 앞으로 국내에 서비스센터를 늘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단, 예약자가 밀려 차를 언제 받을지 기약이 없으니 무한정 기다릴 각오는 해야 한다.

전기차 오너들은 하나같이 충전 문제만 해결된다면 전기차를 사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2~3년 전에 비하면 충전소가 많이 늘어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만큼 전기차 인구도 늘었다. 정부는 2020년까지 전기차 20만 대를 보급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보급 대수를 늘리는 게 능사는 아니다. 쉽고 편하게 충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우선이다. 일단 환경부 전기차 충전소 홈페이지에서 충전기 위치라도 정확히 알려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