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의 초콜릿 전문 기업 몬델레즈는 2016년 자사의 ‘토블론’ 초콜릿 바의 삼각뿔 사이 간격을 넓혀 ‘재료비를 아끼기 위한 꼼수’라는 비난을 샀다. 사진 몬델레즈
스위스의 초콜릿 전문 기업 몬델레즈는 2016년 자사의 ‘토블론’ 초콜릿 바의 삼각뿔 사이 간격을 넓혀 ‘재료비를 아끼기 위한 꼼수’라는 비난을 샀다. 사진 몬델레즈

시그널
피파 맘그렌|조성숙 옮김|한빛비즈
1만9500원|528쪽|5월 27일 발행

2009년 6월 패션잡지 ‘보그’ 영국판 표지에 수퍼모델 나탈리아 보디아노바가 전라로 등장했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었지만,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경제정책 특별보좌관을 지낸 저자는 수퍼모델의 누드사진 이상의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패션 트렌드를 선도하는 잡지 커버 모델이 아무런 패션 아이템도 착용하지 않고 등장한 것을 글로벌 금융위기가 패션계까지도 집어삼켰다는 신호로 받아들인 것이다.

보디아노바가 세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에도 주목했다. 유행을 좇아 신용카드를 긁어대던 젊은층이 경기 악화로 지갑을 닫으면서 구매력을 갖춘 주부들이 패션산업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드론 전문 기업인 H. 로보틱스와 컨설팅 회사 DRPM의 공동 창업자이기도 한 저자는 숫자와 도표 없이도 일상 곳곳에서 세계 경제에 관한 ‘시그널(signal·신호)’들을 감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이유로 경제학자들도 경제 현상을 숫자와 데이터로만 풀려 하지 말고 일상의 작은 변화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는 책의 서문에서 “경제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잘못된 판단과 결정을 반복한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중국 경제성장 둔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도널드 트럼프 당선 등 지난 10년간 굵직한 경제 사건의 조짐을 번번이 놓쳤다. 내 눈에는 이 사건들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위기 사건에 대해 글을 쓰고 경고했고, 그럴 때마다 조롱을 받았다”고 썼다.


물가 상승 압력에 제과업계 ‘꼼수’대응도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여론 조사에서는 힐러리 클린턴이 우세했다. 하지만 저자는 인파로 넘치는 트럼프 유세장과 달리 클린턴 유세장 곳곳에 빈자리가 남아있는 것을 보고 트럼프의 우위를 점쳤다.

같은 해 ‘토블론’이란 이름의 삼각뿔 초콜릿 바로 유명한 스위스의 초콜릿 전문 기업 몬델레즈가 삼각뿔 모양의 초콜릿 사이 간격(사진 참고)을 넓히기로 결정했다는 기사를 접하고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기도 했다. 초콜릿을 만드는 원재료 비용 부담이 커지면서 제조사가 꼼수를 부렸다고 본 것이다.

매일같이 시끄럽게 짖어대던 개가 언제부턴가 짖지 않는 것을 깨닫고 건설 경기가 나빠지고 있다는 걸 직감한 적도 있었다. 이웃집의 차고 공사를 진행하던 인부들이 회사의 부도로 발길을 끊으면서 개 짖는 소리도 끊겼던 것이다.

저자는 이 같은 일상 속 경제 신호들을 토스트 굽는 냄새에 비유한다. 탄내가 나기 시작하면 얼른 알아차리고 전원을 꺼야 하는 것처럼 세계 경제가 보내는 신호에도 신속히 반응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지난 금융위기의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경제를 더 이상 ‘전문가’에게만 맡겨둘 수는 없다는 것이다. “내일의 경제는 오늘 건설 중이고, 경제 신호는 도처에 있다. 그것을 포착하고 이용하는 것은 당신의 몫”이라는 저자의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사치관(觀)’이 가른 산업화의 명암
사치의 제국
우런수|김의정 외 옮김|글항아리
2만9000원|596쪽|4월 29일 발행

“연회 한 번 여는 비용이 중간층의 가산을 다 털어도 마련할 수가 없도다.”

중국 명대 수필집인 ‘오잡조(五雜俎)’에 등장하는 대목이다. 대만 출신 사학자인 저자는 명 말기 성행한 사치 풍조가 중국 최초의 소비사회 형성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한다. 사치 풍조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었지만 시장 구매율 증가, 사치품의 일상화, 최신 유행 형성, 신분제도의 붕괴 등은 중국에서 이전에 없던 명 말기만의 특징이다. 19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을 촉진했던 18세기 초중반의 ‘소비혁명’ 당시 상황과 비슷했다.

저자는 그럼에도 명나라가 영국과 달리 산업화에 실패한 원인을 두 나라의 ‘사치관(觀)’ 차이에서 찾는다. 산업혁명 이전 영국에서 사치의 긍정적 측면을 강조한 소비론이 주류 지식으로 흡수된 반면 명대의 지식인들은 사치 풍조를 ‘경박함’이라 말하며 검소함을 숭상할 것을 요구했다. 명대의 중국은 여전히 농업국가였던 반면, 19세기 영국은 이미 상업국가에 진입해 있었다는 것도 차이점이다. 저자는 “중국과 서양이 사치 관념을 수용하는 양상이 달랐기에 역사도 다르게 발전했다”고 결론짓는다.


술 마시면 라멘이 당기는 이유
라멘이 과학이라면
가와구치 도모카즈|하진수|부키
1만5000원|248쪽|4월 30일 발행

라멘은 일본의 ‘국민 음식’ 중 하나다. 일본 전역에 약 5만 개의 라멘 전문점이 성업 중이다. ‘과학 커뮤니케이터’를 자처하는 저자는 어느 날 라멘의 인기 비결을 과학적으로 규명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유명 라멘 가게들을 찾아가 맛을 보았고, 면과 밀가루 제조사를 방문해 라멘을 만들어 보기도 했다. 또 대학 연구소와 라멘 관련 협회들에서 라멘을 주제로 한 실험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 결과물을 기록한 책이다.

술을 마시면 라멘이 당기는 이유는 알코올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떨어진 혈당을 보충하기 위해 탄수화물이나 단것이 먹고 싶어지는데, 음주로 혀의 감각이 둔해져서 진한 맛을 찾게 되기 때문이란다.

라멘을 먹을 때 나는 소리를 표현한 의성어까지 과학적 분석을 시도한 것도 흥미롭다. 면을 입에 넣은 뒤 빨아들이듯 먹을 때 나는 소리를 우리나라에선 ‘후루룩’, 일본에선 ‘즈루즈루’로 표현한다. 저자는 라멘 국물이 다른 나라의 국물 요리와 비교하면 향이 약하기 때문에 감칠맛을 충분히 느끼기 위해서는 ‘고속 흡입’을 통해 향을 증폭시켜야 한다고 설명한다.


성공하려면 제너럴리스트가 되라
레인지(Range: Why Generalists
Triumph in a Specialized World)
데이비드 엡스타인|리버헤드북스
16.8달러|5월 28일 발행

‘전문화된 세상에서 제너럴리스트가 승리하는 이유’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미국의 저명 스포츠 기자인 저자는 어떤 산업군에서건 독보적인 존재가 되려면 한 분야에만 집착하기보다 다양한 분야를 섭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와 관련해 스포츠와 음악 분야의 예를 들어 설명하면서 “전문화에 앞서 다양한 종목과 악기를 접하는 ‘샘플링’ 과정을 경험해야 성공 확률이 높다”고 설명한다.

이 같은 노력이 빛을 본 스포츠 분야의 대표적인 예는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다. 페더러의 부친은 어린 아들에게 배드민턴과 농구, 축구 등을 두루 가르친 후에 테니스에 집중하도록 했다.

언뜻 “특정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1만 시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콤 글래드웰의 ‘1만 시간의 법칙’과 모순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보다는 같은 대상의 다른 부분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글래드웰은 전문가의 길에 들어선 이후의 ‘선택과 집중’에 초점을 맞춘 반면, 엡스타인은 그 대상을 찾기까지 준비 과정에 중점을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