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사냥꾼’ 한스 란다 대령이 쇼산나 드레이퍼스(오른쪽)와 생크림을 듬뿍 얹은 슈트루델(strudel)을 함께 먹고 있다. 그녀가 유대인인지 아닌지 떠보려는 것. 슈트루델은 고기가 들어간 빵이다. 유대인은 고기와 유제품을 함께 먹지 않는다. 사진 IMDB
‘유대인 사냥꾼’ 한스 란다 대령이 쇼산나 드레이퍼스(오른쪽)와 생크림을 듬뿍 얹은 슈트루델(strudel)을 함께 먹고 있다. 그녀가 유대인인지 아닌지 떠보려는 것. 슈트루델은 고기가 들어간 빵이다. 유대인은 고기와 유제품을 함께 먹지 않는다. 사진 IMDB

“난 내 별명이 맘에 들어요. 노력해서 얻은 거니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점령된 프랑스. 평화롭게 보이는 외딴 농가에 유대인 사냥꾼이란 별명을 가진 나치 장교, 란다가 부하들을 이끌고 나타난다. 그는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점잖게 앉아 우유를 달라 해서 마시고 담배를 피운다. 부드럽게 미소 짓고 나긋한 음성으로 질문하지만 카메라는 마룻바닥 아래, 겁에 질린 눈동자들을 비춘다. “우리의 적을 숨겨주고 있지요?” 대령이 묻자 압박감을 가까스로 견디고 있던 농부는 공포에 질려 눈물을 주르륵 흘린다. 대령은 부하들을 조용히 불러들인다. 일가족을 향해 난사되는 총탄들. 그때 사지를 빠져나와 죽을힘을 다해 도망치는 한 소녀의 뒷모습이 대령의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이상하다. 유대인 사냥꾼이 총을 쏘지 않는다. 오늘 못 잡으면 내일 잡지, 하는 여유였을까. 대령은 겨누고 있던 총을 슬그머니 내리며 크게 소리친다. “또 보자(Au revoir), 쇼산나.”

나치와 히틀러가 등장하지만 영화는 누구나 알고 있는 역사를 지루하게 반복서술하지 않는다. ‘옛날 옛적 나치 치하의 프랑스’라는 자막을 보여주는 것으로 앞으로 두 시간 반 동안 상상력을 마음껏 풀어놓을 테니 관객도 신나게 즐기시오, 하고 말하는 것 같다. ‘옛날 머나먼 은하에서는’이라는 오프닝 자막으로 시작해서 누구도 검증할 수 없는 우주전쟁을 벌이는 ‘스타워즈’처럼 말이다. 하물며 ‘킬 빌’ ‘저수지의 개들’ ‘펄프픽션’ 등을 통해 ‘헤모글로빈의 시인’이라는 별명을 얻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작품이다.

“우리가 맡은 임무는 단 한 가지. 나치를 죽이는 것이다.”

4년 후, 에마뉘엘로 신분을 바꿔 극장 소유주로 살아가고 있던 쇼산나는 나치로부터 히틀러와 괴벨스가 참석하게 될 영화시사회를 준비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날의 안전 책임을 맡은 장교가 가족을 몰살시킨 란다 대령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본 쇼산나는 기절할 듯 놀란다. 하지만 대령은 그녀가 유대인은 아닌지 눈여겨보면서도 농가에서 도망쳤던 소녀인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다. 대령의 의심을 무사히 통과한 쇼산나는 란다와 나치에게 복수할 기회가 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시사회가 열리는 밤, 히틀러를 죽이려는 것은 쇼산나뿐만이 아니다. 독일 수뇌부들이 모인다는 정보를 입수한 연합군도 극장을 폭파시켜 세계대전을 끝낼 계획에 돌입한다. 야구방망이를 휘둘러 머리를 깨부수고, 아파치족처럼 피부를 벗기고, 공포를 입소문 내라고 가끔 살려서 돌려보내는 포로에겐 죽을 때까지 씻지 못할 나치 표식을 그들의 몸에 남기는 거친 녀석들. 여덟 명의 특수대원으로 구성된 팀을 이끌고 프랑스에 잠입, 나치 소탕작전을 벌이고 있던 미국인 알도(브래드 피트) 소위가 임무를 맡는다.

“너무 달콤한 먹이는 위험하다는 거야.”

타란티노 감독은 폭력을 미화한다고 늘 공격받지만 “관객은 영화와 현실을 구분할 정도로 현명하다”며 세상의 우려를 일축한다. 사실 그의 작품은 일반적인 잔혹 공포물이나 폭력 영화들과는 성격이 좀 다르다. 가령 브래드 피트가 마약중개인으로 나오는 ‘카운슬러’는 사회의 악을 파헤친다는 미명 하에 세상은 이렇게 암울하다, 인간은 이토록 추악한 존재다, 하고 고발하는 것으로 끝난다. 참혹하게 살해당하는 대상은 대부분 아무 죄 없는, 악인과 비교해서 죄가 덜한 사람들이다. 그 결과 극장을 나서는 관객의 마음은 어둡고 무겁고 불쾌하다. 

오락영화로 젊은층에서 인기몰이를 했던 ‘킹스맨’에서는 종이인형처럼 반듯하게, 케이크처럼 깔끔하게 사람의 몸을 두 동강 낸다. 피는 한 방울도 보이지 않는다. 악당이 인류의 뇌 속에 심어놓은 폭탄 칩이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로 터지는데 엘가의 ‘위풍당당행진곡’이 웅장하게 연주된다.

무엇이 더 폭력적이고 위험한 영화일까. 악당조차 때리고 찌르면 뼈가 부러지고 붉은 피가 사방에 튄다는 것을 눈살 찌푸리게 보여주지만 그들을 해치우고 나면 잠시나마 세상에 고요와 평화와 안도감이 찾아오는 작품? 악당이 보통 사람들을 고문하고 죽이는, 그래서 인류의 미래는 암담할 뿐이라고 속삭이는 영화? 영문도 모르고 전 인류의 머리통이 펑펑 터지며 불꽃들로 피어오르는 아름다운 화면과 스토리?

“역사 속에선 가끔 뜻밖의 운명이 모든 걸 바꿔 놓지. 어떤 역사를 원하나?”

쇼산나의 원한은 까맣게 몰랐지만 란다 대령은 알도와 거친 녀석들의 계획은 훤히 꿰뚫고 있었다. 그런데 대령은 체포한 알도를 죽이지 않는다. 대신 한적한 곳에서 은밀하게 마주앉는다. 그는 전쟁의 판세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고. 히틀러의 목숨과 연합군의 승패가, 무엇보다 세계의 운명이 오늘 밤, 자신의 손에 달렸다는 데 우쭐해진다. 그는 누구보다 뛰어난 생존전략가였다. 란다는 주사위를 높이 던진다.

브래드 피트와 모든 출연진이 뛰어나지만 이 영화는 나치 장교 란다 역을 맡은 크리스토프 왈츠를 위한, 그에 의한, 그의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빙고!”를 외칠 때는 너무 귀엽기까지 해서 저 사람이 정말 나치일까, 그를 악인으로 봐야 할까 하는 의문마저 생긴다.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주장한 ‘악의 평범성’을 떠올리게 하는 캐릭터다. 그러고 보면 영화 초반, 란다가 쇼산나를 살려준 것은 우연이나 실수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란다 역시 직업에 충실한 사람이었을 뿐, 더 인정받고 싶고 더 행복해지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진,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감독이 보여주고 싶었던 건 아닐는지.

“멋지지? 내 생애 최고의 걸작이야.”

알도 소위의 입을 빌려 감독이 자화자찬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폭력영화를 선호하지 않는 관객조차 그의 작품을 보기 시작하면 빨려 들어간다. 그만큼 스토리와 플롯이 탄탄하다. 무엇보다 관객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악인이 살해 대상이다. 이 영화에서는 나치와 히틀러이고 어느 영화에서는 좀비이고 또 다른 영화에서는 현상금 사냥꾼이나 갱단, 흑인노예 장사꾼이다. 그래서 관객은 화면 속에서 벌어지는 잔혹함을 죄책감 없이 즐길 수 있다.

인간이 착하고 선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는 삶의 본능 에로스와 죽음의 본능 타나토스가 함께 잠재해 있다. 중요한 건 타나토스를 어둠 속에만 가두고 눌러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에로스 못지않게 죽음의 욕망 또한 밝은 곳으로 꺼내서 잘 해소시켜주어야 한다. 그래야 건강하고 활기차게 긍정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단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고 단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재미와 매력에 빠져보고 싶다면 타란티노의 작품과 함께하길 추천한다. 단, 전쟁의 잔혹함과 영화 속 폭력을 오락으로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진짜 어른만 관람 가(可).


▒ 김규나
조선일보·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 ‘트러스트미’ 저자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Inglourious Basterds, 2009)

장르|액션
국가|미국·독일
러닝타임|152분
감독|쿠엔틴 타란티노
출연|브래드 피트(알도 레인), 멜라니 로랑(쇼산나 드레이퍼스), 크리스토프 왈츠(한스 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