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미
영업 시간 오후 18:00~02:00, 21:00부터는 단품도 판매. 라스트 오더는 01:00까지
대표 메뉴 다양한 제철 재료를 맛본 뒤 황금비율 쌀밥을 메인으로 즐길 수 있는 코스


나는 망망대해를 향해 흐르는 물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견고한 구정물이었으며, 공허한 얼음 덩어리였다. 어둠에 몸을 기대어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어느새 하늘은 말갛게 탈의하고 붉은 해를 띄웠다. 햇볕 아래 누웠다. 웅크렸던 얼음은 녹아 속죄의 까만 눈물을 흘렸다. 두 발은 첫눈이 되고, 두 손은 정화수가 되고, 두 눈은 비를 내려 무지개를 띄웠다. 얼굴엔 세상의 색조가 스며들었다. 말간 피부가 느껴지고 가뿐한 고요가 맴돌았다. 그제야 내가 되는 것 같았다. 마치 모국어를 찾은 것 같았다.

여기 모국어를 찾은 한 사람이 또 있다. 이름은 장진모, 직업은 셰프다. 처음 그를 만난 건 2016년, 낯선 이의 낯선 집에서였다. 그는 한남동에서 ‘앤드다이닝(AND Dining)’을 이끌고 있었는데, 그다음 행보에 대해 고민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의 고민 속에 비치는 음식에 대한 철학은 넓고 깊게 흐르는 강물처럼 강건했으며, 주관을 읊는 품새는 강물을 헤엄치는 물고기의 지느러미처럼 유연했다. 이후 그는 종종 미식 행사에서 요리 실력을 선보이기도, TV 드라마 요리 자문을 하기도 했다. 음식 사진도 찍었다. 하지만 전처럼 자리를 잡지는 못했다. 그렇게 두 해가 지난 2018년, 장진모 셰프는 한식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묘미(Myomi)’로 회귀했다. 이전과는 적잖이 다른 모습으로.

설레는 마음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강남구청역 3-1번 출구를 나와 작은 비탈을 한달음에 올랐다. 반가운 마음으로 문을 열어 젖히고 유리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으로 서둘러 몸을 밀어 넣었다. 왼편에 위치한 별도의 프라이빗 룸을 지나 디귿자 형태의 바 테이블에는 근사하고 말쑥하게 차려입은 남녀가 짝지어 식사하고 있었다. 예약된 자리에 앉아 그부터 찾았다. 깔끔하게 빗어 올린 포마드 헤어스타일에 매끈한 슈트 차림이 아닌, 새하얀 조리복을 차려입은 그를 마주했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편안해 보였다. 간단한 인사만 나누고 별다른 안부를 묻지 않았다. 주방으로 들어간 그는 곧장 접시 위 요리를 전하며 그간의 안부를 말했다.

코스는 잣국수로 시작됐다. 경북 포항의 대게 살을 전남 영암 이영숙 선생의 솔잎 식초에 버무려 잣국수에 얌전히 얹고, 그 위는 오이와 허브, 꽃송이로 장식했다. 가느다란 젓가락 끝을 세워, 잔잔한 미온의 잣국과 청량한 오이와 향긋한 허브가 면발에 엉기도록 서로 가만히 비빈다. 크림처럼 부드러운 질감이 입안을 폭 감싸며 식사의 시작을 안락하게 환영한다. 여기에 강원 평창 박광희 선생의 매실 장아찌를 입에 넣으니, 은방울꽃을 따 먹는 상상과 함께 귓가에 방울 소리가 초롱초롱 들리는 것만 같은 환상이 펼쳐진다. 빈 접시가 정리되고, 경남 통영 석화가 그 자리를 메웠다. ‘스텔라 마리스’라는 이 굴은 속살이 껍데기를 가득 채울 만큼 실하며, 몸을 담그고 싶을 정도로 맑은 바다의 맛을 내는 품종이다. 바위에서 갓 따온 것처럼 싱싱하고 진주처럼 영롱한 빛깔을 내는 굴과 ‘빠알간’ 석류알이 섞인 자태를 보니 마치 주얼리 박스에 담긴 보석 같아 프로포즈라도 받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석화 위에 뿌려진 눈꽃이 혀끝에 닿으면, 투명한 별빛이 잘게 부서지는 것 같은 소리가 귓가에 반짝반짝 맴돈다.

성게알이 올라간 계란찜, 캐비아가 올라간 게살 품은 호박 나물, 송이버섯과 무를 곁들인 대구가 차례대로 이어졌다. 그다음, 소를 담뿍 여문 만두와 함께 나오는 버섯전골은 만두를 씹고 육수를 넘길 때마다 표고의 정돈된 진한 감칠맛이 입안을 굽이치며 장악한다. 징검다리를 건너듯 접시를 하나하나 뒤로하는 걸음걸음이 즐겁다. 된장과 배를 넣고 숙성해 구운 투플러스 한우 스테이크 위로 트뤼프(송로버섯)가 쏟아져 내려앉는다. 나는 지방이 풍부하고 짭조름한 감칠맛이 밴 스테이크와 향긋함이 톡 터지는 산초장아찌 그리고 진한 풍미의 트뤼프, 이 셋을 삼합이라 부르고 싶다.


바다에서 갓 따온 것처럼 싱싱한 경남 통영 석화 위에 빨간 석류알이 올라가 있다. 사진 김하늘
바다에서 갓 따온 것처럼 싱싱한 경남 통영 석화 위에 빨간 석류알이 올라가 있다. 사진 김하늘
충남 아산의 백진주쌀과 전남 곡성의 골든퀸 3호쌀을 7 대 3의 비율로 섞어 만든 쌀밥. 사진 김하늘
충남 아산의 백진주쌀과 전남 곡성의 골든퀸 3호쌀을 7 대 3의 비율로 섞어 만든 쌀밥. 사진 김하늘

코스의 메인은 쌀밥, 본질을 찾았다

“오리지널리티(본질)를 찾고 싶었어요.” 그는 과거 화려한 첨단의 요리를 했던 것과는 달리, 묘미에서는 순수한 본질적 요리를 한다. 총 아홉 개의 요리로 구성된 코스의 메인이 다름 아닌 쌀밥이라는 점이 이를 충분히 뒷받침한다. 밥을 중심으로 한국 음식을 내는 것이 아주 특별하진 않아도 꽤 괜찮은 일이라 믿고 있는 그다. 한식에 관한 고서를 샅샅이 찾아 읽으며 한식의 줄기를 역으로 파고들었고, 일본을 오가며 쌀밥을 내는 방식에 대해 고심했으며, 국내의 다양한 쌀 품종으로 밥을 지으며 가장 이상적인 쌀밥에 대한 기준을 세웠다.

그는 냄비로 밥을 짓는다. 압력솥을 사용하면 쌀알이 퍼져 쌀 품종 고유의 성질이 뭉개지기 때문이다. 충남 아산의 백진주쌀과 전남 곡성의 골든퀸 3호쌀을 7 대 3의 비율로 섞는다. 쌀 품종마다 질감과 풍미 등을 조합해 이상적인 밥맛을 내기 위함이다. 쌀을 고르고 씻고 익히고 뜸을 들이고 상에 내기 전까지 뭐 하나 치밀하지 않은 것이 없다. 더욱 정확한 밥맛을 끌어내기 위해 와트(watt)로 화력을 측정할 수 있는 인덕션 레인지를 사용할 정도다.

뜸을 들이기 위해 냄비에서 도기 밥솥으로 옮겨 담은 갓 지은 밥과 평창 박광희 선생이 공들여 담근 배추김치, 갓김치, 백김치, 산마늘김치를 포함한 총 여덟 가지 김치가 앙증맞은 항아리에 담겨 테이블 위로 오른다. 솥뚜껑이 열리자마자 구수한 풍미를 머금은 수증기가 뿜어져 흐른다. 짙은 색 밥공기에 윤기가 잘잘 흐르는 흰 쌀밥이 담긴다. 아무도 밟지 않은 밤거리에 첫눈이 쌓인 것 같은 자태가 백색 도화지처럼 하염없이 순수하다. 말간 피부가 느껴지고 가뿐한 고요가 맴돈다. 망망대해로 향하는 그의 행보를 그의 모국어로 구사해냈다. 그가 안내하는 ‘오리지널리티’에 가 닿는다.

새 옷을 입었다. 강물을 가른다. 바다를 향한다. 헤엄은 멈추지 않는다. 머무르지 않고 흐를 것이다. 나아갈 것이다. 나는 그걸 기다려왔다.


▒ 김하늘
외식 컨설팅 회사 ‘브랜드테일러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