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그림책의 주인공은 그 자신이다. 앞으로 자기 안의 걱정 많은 어린이와 살겠다는 요시타케 신스케. 사진 남강호 기자
모든 그림책의 주인공은 그 자신이다. 앞으로 자기 안의 걱정 많은 어린이와 살겠다는 요시타케 신스케. 사진 남강호 기자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 요시타케 신스케의 ‘있으려나 서점’을 방문한다면 세상의 모든 책이 달라 보일 것이다. ‘있으려나 서점’엔 “있다마다요” 하면서 책을 꺼내주는 싹싹한 민머리 서점 주인과 기침하는 책, 뛰어다니는 책, 수중 도서관 등 엉뚱하고 귀여운 책들이 가득하다. 이 책에서 가장 짠한 챕터(장)는 ‘베스트셀러가 되길 바랐던 책’이다. 그 장엔 오늘날 종이책을 쓰고 만드는 모든 출판인의 약하고 장하고 애틋한 마음이 다 깃들어 있다.

“오늘도 전혀 못 팔았군. 다 재밌는 책인데….”
“이런 책을 만들어야 몇 명이나 읽을까요?”
“됐네. 난 이미 과거의 작가인걸.”

서점 주인, 편집자, 출판사 사장, 노작가, 작가 지망생 소녀…. 그들은 미안한 기색과 아련한 눈빛으로 차마 꺼내지 못한 말을 복화술로 주고받는다. ‘미안해요. 베스트셀러를 터뜨리지 못해서.’ ‘아직은 모르지. 우연히 운 좋게 베스트셀러가 될지도.’ 전 세계에 그림책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희한한 상상력의 대가, 요시타케 신스케를 만났다. ‘있으려나 서점’은 일본에서는 발매 3주 만에 10만 부를 돌파했고, 우리나라에서는 출간 3개월 만에 3만 부를 넘어섰다. 그는 이 모든 것이 ‘걱정의 산물’이라고 한다.


짐짓 태연한 척해도 모두 맘속으론 ‘운 좋게 언젠가는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을지도 몰라’라는 희망을 놓지 않더라. ‘있으려나 서점’에 등장하는 출판계 사람들 말이다.
“15년 전, 내가 그랬다. 서른 살에 일러스트집을 냈는데 전혀 안 팔렸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미련이 계속 남았다. 책을 쓰고 만드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번엔 잘 팔릴 거야’라는 희망을 품는다.”

어쩌면 그 미련하고 아련한 희망이 이토록‘가성비’ 없는 출판 산업이 지속하도록 만드는 신비 아닐까.
“맞다. 99%의 책이 독자 눈에 닿지도 못하고 사라지더라도. 어쩌겠나? 세상엔 두 종류의 책만 있는걸. 베스트셀러가 된 책, 베스트셀러가 되기를 바라는 책(웃음).”

요시타케 신스케는 1973년생으로 쓰쿠바대 대학원 예술연구과 종합조형코스를 수료했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던 그는 마흔 살이 되던 해인 2013년 첫 그림책 ‘이게 정말 사과일까?’를 출간하고 전 세계가 주목하는 그림책 작가로 떠올랐다. 사과 한 알을 앞에 두고 심각하게 관찰하는 어린이 이야기는 출간 첫해, 일본에서만 13만 부, 3년 만에 22만 부가 팔렸다.

사과의 정체성은 아이의 걱정과 만나 생명이 들썩이는 ‘알’에서 반짝이는 ‘별’로 천변만화(千變萬化·끝없이 변화함)한다. 통제되지 않는 발명가 같은 요시타케의 기상천외한 추론은 감정을 다룬 책 ‘심심해 심심해’를 비롯해 존재를 다룬 ‘이게 정말 나일까’, 죽음을 다룬 ‘이게 정말 천국일까’로 이어진다. 볼로냐국제도서전은 2017년 ‘벗지 말 걸 그랬어’로 그에게 ‘라가차상’ 특별상을 수여했고, 일본 어린이 12만 명은 올해 어린이날 인기투표에서 읽고 싶은 책 10권 중 요시타케의 그림책을 4권이나 골랐다.

사실 요시타케를 만나면 ‘어떻게 하면 재밌는 어른이 될 수 있는지’ 꼭 묻고 싶었다.
“가나가와현에서 가장 눈에 안 띄고 마음 약한 아이가 나였다(웃음). 어릴 적부터 ‘뭘 해도 안 될 거야’라며 자주 비탄에 빠졌다. 그래서 난 항상 현재 상태의 반대를 가정한다. 어떻게 하면 즐거워질까, 덜 심심할까. 그렇게 나를 즐겁게 하려는 연습이 그림책으로 나왔다.”

책에 등장한 서가로 된 무덤은 정말 기발했다. 돌아가신 분과 살아 있는 사람이  ‘책’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생각에 전율이 일었다.
“예컨대 고인이 생전에 읽었던 책을 가져가고, 고인이 천국에서 읽으면 좋은 책을 넣어두는 거다. 나는 사실 사람이 한 권의 책이라고 생각한다. 각자 자기 인생의 책을 쓰지만, 그 책이 제대로 읽히지 않은 채로 무덤까지 가는 경우도 많다.”

맞는 말이다. 인생도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가 있다. 끝까지 읽히지 않는 사람은 외로웠을 것이다. 특히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공책을 읽으며 죽음을 공상하는 ‘이게 정말 천국일까’는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이야기가 도착한 것 같았다. 당신 덕에 이젠 늙으신 부모님과도 제 아이들과도 웃으며 죽음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함빡 웃으며) 다행이다. 나는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당신들이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듣질 못했다. 병으로 돌아가셨는데, 그동안 두려웠을 거다. 살아계실 때, 나 또한 무서워서 죽음에 관해 묻질 못했다. 책을 보면서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당신은 어떤 어른인가.
“어린아이 같은 어른이다. 내 나이 마흔다섯인데, 지금도 무슨 일이 생기면 ‘어른들은 참 대단하지’라고 생각하거든. 어린아이의 가치관으로 어른들을 본달까. 어릴 땐 어른스러운 아이였다. 나이 먹을수록 어려지다 보니 거기서 생기는 감정의 이격이 재밌다. 걱정 많은 아이와 어리광부리는 어른이 공존한달까. 그래서 내가 쓴 그림책의 주인공은 전부 나다(웃음). 일부러 어린이의 마음을 상상할 필요가 없다.”

막 그린 듯해도 왠지 공손하고 정교한 그림체는 어떻게 탄생했나.
“그림을 잘 못 그린다. 미술대학교 교수님도 ‘못 그리는 애가 들어왔다’고 대놓고 핀잔하셨다. 나는 눈앞에 있는 그대로를 그리는 데는 재주가 없다. 실력이 부족해서 단순하게 그리기 시작했다. 동그라미와 점만으로 사람을 그리는 식이다.”


거구에 어울리지 않는 반듯한 자세. 돌아오지 못할까 무서워 반경 5㎞ 밖을 나가지 않는 그에게 책은 세상을 향해 열린 창이다. 사진 남강호 기자
거구에 어울리지 않는 반듯한 자세. 돌아오지 못할까 무서워 반경 5㎞ 밖을 나가지 않는 그에게 책은 세상을 향해 열린 창이다. 사진 남강호 기자

놀이터나 기계 장치 묘사가 매우 정교하던데, 그림이 발전한 계기가 있나.
“안 보고 그리기 시작하면서 잘 그리게 됐다. 어떤 사물이나 장면을 보고 암기해서 비슷한 것을 그렸더니 실력이 확 늘었다. 닮은 듯, 간단하게 그릴 뿐이다(웃음).”

어린이 독자들이 그의 그림을 그려서 편지로 부쳐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아이들이 ‘이 정도는 나도 그릴 수 있어’라고 할 때 말할 수 없이 기쁘단다. “그거야말로 굉장한 일이 아닙니까?”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첫 독자가 아내와 아이들이라고 들었다. 그들의 반응에 일희일비하는 편인가.
“아이들은 내 책에 기쁨으로 반응한다. 아내는 다르다. 뭐랄까 내 일에 흥미가 없달까.”

아무래도 아내는 어른이니까(웃음).
“맞다. 좀 심술궂고 신랄하다(웃음). 새 책이 나오면 ‘전의 책이 더 좋았어’라거나 중간쯤 읽다가 ‘다 알 것 같군. 지루하다니까’라고 해서 상처를 받곤 했다. 아무래도 아내는 어른이니까(웃음).”

당연히 아내가 재미없다고 한 책이 잘 팔렸을 테고.
“물론. 그래서 아내가 ‘재미있다’고 하면 몹시 불안하다(웃음).”

집 근처 반경 5㎞를 벗어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걸어서 돌아갈 수 없는 곳으로 가는 게 무섭다. 바다를 건너는 일 따위는 못 할 줄 알았는데 편집자 덕에 처음으로 해외(볼로냐국제도서박람회)에 나가봤다. 한국이 두 번째 외국행이다. 등 떠밀려서 왔지만, 막상 용기를 내어 와보니 정말 재미있다.”

아무래도 당신의 상상력은 그렇게 생활을 단순화해서 상상의 여지를 남겨뒀기에 가능했던 게 아닌가 싶다. 좀 심심한 상태로. 그러니 여행은 물론이거니와 게임이나 스마트폰과도 거리를 둘 듯한데.
“게임은 안 한다. 스마트폰은 사용해도 검색을 끝까지 해보지 않는다. 정답을 알면 생각을 멈추거든. 궁금한 게 생기면 내 얕은 지식 안에서 해결해 보려고 한다. 이런저런 가설을 세워서 말이다. 아이들도 그렇다. 모르는 게 많아서 더 이상하고 재미난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마흔 살에 그림책 작가로 데뷔하기 전까지는 무슨 일을 했나.
“광고 회사에서 촬영용 인형이나 건물 등 미니어처 만드는 일을 했다. 퇴근해서 밤에 나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 일러스트를 그렸다. 취미가 일이 된 셈이다. 만약 처음부터 그림책 그리는 일을 했으면 오래 못 했을지도 모른다(웃음).”

서른 살부터 마흔 살까지, 그는 퇴근 후 낄낄거리며 그림을 그리지 않았으면 살 수 없었다고 했다.

오로지 당신 한 사람을 위한 그림이었나.
“그렇다. 나는 여전히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내 그림은 나만 재미있을 줄 알았는데, 전 세계 독자들이 웃고 있다는 사실이. 지금도 나는 어린 시절, 걱정 많은 어린이 요시타케를 재밌게 만들려고 그린다. 걱정 많은 아이가 100명 중 10명은 있지 않겠나(웃음)?”

당신 상상력의 원동력은 걱정인가.
“그렇다. 나는 항상 혼날까 봐 걱정했다.”

많이 혼나면서 자랐나.
“혼나지 않았다. 혼날까 봐 걱정만 했다(웃음). 자주 혼났으면 혼나도 별거 아니라는 걸 알았을 텐데, 혼이 나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서 무서웠다. 책을 만들면서도 나는 온갖 상상을 다 한다. 이런 표현은 상처가 되지 않을까, 마음이 아프거나 불편해하는 분은 없을까. 결례되는 표현은 전부 배제한다. 그래서 나를 착한 사람으로 보는 분들이 많지만, 나는 착하지 않다. 나쁜 상상을 밖으로 내뱉지 않을 뿐(웃음).”

앞으로 어떤 상상과 걱정을 이어 나갈 생각인가.
“나에겐 ‘이게 정말 사과일까’가 출발점이다. 사과 한 알을 두고도 끝없이 걱정하며 즐거운 공상을 이어 가는 모습. 앞으로 나는 ‘이게 정말 천국일까’처럼 거대하고 말하기 두려운 죽음이라는 주제와 ‘벗지 않을 걸 그랬어’처럼 말도 안 될 정도로 사소한 이야깃거리, 두 가지를 계속 상상하고 그릴 작정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걱정 많은’ 어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심심한 나를 웃겼더니, 우연히 독자가 생기고 작가가 됐다. 이건 확실히 운이다. 그런데 운은 우리가 어쩔 도리가 없다. 그러니 재미있는 일을 하는 게 다다. 나를 즐겁게 하지 않으면서 타인을 행복하게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인생은 복잡하지 않다. 걱정하고 웃고, 걱정하고 웃고, 그런 일의 연속이다. 그러니 나처럼 용기를 내시라(웃음).”

문득 도서관에 반납된 책들에 던진 그의 애틋한 질문이 떠오른다. “어떤 사람이었어? 소중히 읽어줬어? 읽으면서 웃었어? 울었어?” 인터넷 검색만으로 도달할 수 없는 놀라운 마음의 정경을 보여주는 요시타케의 그림책처럼, 인생도 그렇다. 걱정만으로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웃음의 세계가 항시 대기 중이다.

매일매일 싱싱한 걱정과 웃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소소한 우리 인생에 경배를!

김지수 조선비즈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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