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50주기를 맞아 출간된 산문집 ‘시는 나의 닻이다’. 사진 창비
김수영 50주기를 맞아 출간된 산문집 ‘시는 나의 닻이다’. 사진 창비

시는 나의 닻이다
이어령 외 지음|창비|293쪽|1만5000원

올해 한국 문단은 김수영 50주기를 기리는 일로 분주했다. 새롭게 꾸민 김수영 전집이 나와 시집 부문에서 베스트셀러가 됐고, 김수영 문학을 재조명하는 심포지엄이 성대하게 열렸다. 김수영은 오늘날 젊은 시인들 사이에서 가장 존경받는 선배로 꼽히고 있다. 그런데 김수영은 1968년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세상을 뜨기 전까지 시대를 주도한 시인이었다고 할 수 없었다. 그가 생전에 낸 시집은 1959년엔 펴낸 시집 ‘달나라의 장난’ 한 권뿐이었다.

김수영은 1974년 민음사에서 시선집 ‘거대한 뿌리’와 1975년 산문선집 ‘시여, 침을 뱉어라’가 나온 뒤 문학적으로 되살아났다. 왜 김수영인가. 김수영은 1970년대 한국 문학의 젊은 세대가 늘 되돌아봐야 할 전범(典範)으로 꼽혔다. 4·19 정신에 바탕을 둔 지식인이었을 뿐 아니라 “시작(詩作)은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라며 시의 혁신도 치열하게 추구한 예술가였기 때문이다. 일상어와 비속어도 거침없이 시에 사용해 문학의 권위주의에 도전했고, 정치적 금기와 온갖 구속을 과감하게 거부하는 표현의 자유를 주장했다.

최근 김수영을 재조명한 산문집 ‘시는 나의 닻이다’가 나왔다. 김수영과 순수 참여논쟁을 했던 평론가 이어령을 비롯해 계간 ‘창작과 비평’을 창간한 백낙청과 ‘문학과 지성’을 만든 김병익 외에도 소설가 황석영과 시인 김정환·나희덕·심보선, 평론가 임우기, 철학자 김상환, 사회학자 김종엽 등 각 세대 필자들이 저마다 다양한 관점으로 김수영을 기림으로써 독자에게 김수영 문학의 전체를 생각하게 한다.


이어령, 문학적 연대감 드러내

이어령이 50년 만에 발표한 김수영론(論)이 먼저 눈길을 끈다. 이어령은 1968년 조선일보 지면을 통해 세 차례에 걸쳐 김수영과 ‘순수 참여 문학’ 논쟁을 벌인 바 있다. 당시 김수영은 “모든 전위 문학은 불온한 것”이라며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문화의 본질이 꿈을 추구하는 것이고 불가능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현실 변혁에 참여하는 문학은 지배 권력에 맞서 불온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 이후 ‘불온시(不穩詩)’는 김수영 문학의 열쇠어가 됐다.

하지만 이어령은 “불온성을 작품의 가치기준으로 삼고 있는 김수영씨 같은 시인에게는, 문학비평가의 월평보다 기관원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작품명을 훔쳐보는 것이 훨씬 더 유익할 것”이라며 “문학의 가치는 정치적 불온성 유무의 상대성 원리로 재판할 수 없는 다른 일면을 지니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령은 50년 만에 김수영과의 논쟁을 되돌아보면서 “서로 누운 자리는 달랐어도 우리는 같은 꿈을 꾸고 있었을 것”이라며 문학적 연대감을 표시했다. 이어령은 “보수·진보, 참여·순수 어느 한쪽의 흑백 하나로만 보면 어떤 시인도 도그마의 희생양이 된다”며 “김수영에게 있어서 시는 자유요, 그 자체”라고 평했다. 문학을 참여의 잣대로만 볼 수 없다는 자신의 순수 문학론을 고수하면서 김수영 문학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이 책은 김수영 생전의 모습을 기억하는 평론가 백낙청과 염무웅의 대담도 싣고 있다. 두 평론가는 김수영을 시 ‘오감도’의 시인 이상의 후예로 꼽았다. 이상과 김수영이 시는 난해하게 썼지만, 산문은 명징하고 합리적으로 썼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기성 문학에 안주하지 않으면서 이상처럼 문학의 지평을 새롭게 탐구한 김수영의 정신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소설가 황석영은 “김수영 시인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비틀어서 보여주거나 메타포적인 언어를 구사했다”며 “그러면서도 본질적인 ‘몸의 언어’를 떠나지 않았다”고 풀이했다.

박해현 조선일보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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