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로 주행 모드를 처음 적용한 브랜드는 랜드로버다. 랜드로버의 레인지 로버 스포츠. 사진 재규어 랜드로버 코리아
험로 주행 모드를 처음 적용한 브랜드는 랜드로버다. 랜드로버의 레인지 로버 스포츠. 사진 재규어 랜드로버 코리아

최근 데뷔한 현대자동차 ‘팰리세이드’는 그동안 국산 동급 모델과는 많은 부분이 다르다. 기아자동차 ‘모하비’와 쌍용자동차 ‘G4 렉스턴’ 차체 구조는 사다리꼴 프레임에 보디를 얹은, 보디 온 프레임(Body on Frame) 타입이다. 또 엔진을 차의 앞뒤 방향(세로)으로 탑재하고 뒷바퀴를 굴리는 방식이다. 게다가 모하비와 렉스턴은 험로를 쉽게 달릴 수 있는, 성능을 갖추고 있다. 이들 차량에는 2WD(이륜구동)와 4WD(사륜구동), 또는 4H(고속 사륜구동)와 4L(저속 사륜구동)로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트랜스퍼 케이스가 장착돼 있기 때문이다.

반면 팰리세이드는 승용차와 같은 하나로 이뤄진 모노코크(Monocoque) 차체에 엔진을 가로로 얹고 앞바퀴에 동력을 보내는 앞바퀴 굴림을 기본으로 하고 뒷바퀴에 힘을 나누는 AWD(자동 사륜구동)다. 이런 구조의 차에는 트랜스퍼 케이스가 없기 때문에 엔진 힘을 노면으로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어 험로 주행에는 불리하다. 그래서 과거의 험로 주파 능력을 갖춘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를 오프로더(Off-roader)라고 불렀다면, 앞바퀴 굴림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많은 SUV를 소프트로더(Softroader)라고 부른다. 흔히 도심형 SUV라고 하는 차가 여기에 속하는데, 이들의 험로 주행 능력을 키우기 위해 갖추는 장비가 특정한 노면 상황에 따라 다른 여러 장비의 특성을 조절하는 ‘지형 반응 시스템’이다. 팰리세이드에 적용된 험로 주행 모드인 멀티 트레인 컨트롤(Multi Terrain Control)이 그것이다.

사실 이런 험로 주행 모드의 시작은 랜드로버다. 이미 오프로드 달리기에서 명성이 자자한 브랜드이지만, 일반 운전자에게 험로 주행 기술을 가르치는 것보다 차의 기능을 쉽게 쓸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돌려서 말하면 랜드로버를 처음 운전하는 사람이라도 테레인 리스펀스(Terrain Response)라고 불리는 이 기능을 만나는 순간 바로 오프로드 전문가 수준의 주행이 가능하다.

2005년에 출시된 디스커버리3에 처음 쓰였는데, 주행 모드는 모두 다섯 가지로 일반, 잔디·자갈·눈, 진흙, 모래, 암석이다. 2013년부터는 이런 모드 선택도 차가 알아서 해주는 자동조절 기능을 더한 테레인 리스펀스2로 발전했다. 각각의 모드는 노면 상황에 맞춰 차의 여러 기능을 제어한다. 여기에는 브레이크 작동 방법, 액셀러레이터 페달을 밟았을 때의 엔진 반응, 에어 서스펜션의 높낮이, 내리막 주행 장치 등 10여 가지가 포함된다. 이후 미국의 지프가 셀렉 테레인을 내놓았고 포드는 테레인 매니지먼트, 일본 혼다는 인테리전트 트랙션 매니지먼트 등으로 부른다. 심지어 앞바퀴 굴림밖에 없는 프랑스 자동차 업체 푸조도 그립 컨트롤이라는 이름의 비슷한 기능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에 팰리세이드에 들어간 멀티 테레인 컨트롤은 뒷바퀴 굴림인 랜드로버나 지프보다는 구조상 앞바퀴 굴림인 도심형 SUV인 포드나 혼다의 그것에 가깝다. 특히 낮은 기어나 에어서스펜션(공기압을 이용한 충격 완화장치) 등이 없어 조절할 수 있는 장비가 랜드로버보다 적다. 자동차는 노면에 붙어 있는 타이어를 통해 달리고 돌고 멈춘다. 어떤 차라도 바퀴가 헛돌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를 막기 위해 트랙션 컨트롤이나 ABS 같은 장치가 작동하지만, 진흙이나 눈, 모래 등 노면이 바뀌는 경우에도 제어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도 모드마다 자동차 각 부분의 작동 방법을 바꿔 최고의 성능을 발휘하도록 만들었다.


랜드로버 벨라에 적용된 험로 주행 모드. 사진 재규어 랜드로버 코리아
랜드로버 벨라에 적용된 험로 주행 모드. 사진 재규어 랜드로버 코리아
현대자동차의 팰리세이드에는 국산차 최초로 지형 반응 시스템이 장착됐다. 사진 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의 팰리세이드에는 국산차 최초로 지형 반응 시스템이 장착됐다. 사진 현대자동차

노면 따라 각종 장비가 다르게 움직여

우선 팰리세이드의 테레인 모드에서는 눈, 모래와 진흙 등 세 가지를 지원한다. 눈이 내린 길은 노면의 마찰력이 작아 접지력이 크게 줄어든다. 이 경우엔 같은 깊이로 액셀러레이터 페달을 밟아도 엔진의 토크가 부드럽게 나올 수 있도록 제어 방식이 바뀐다. 엔진 회전수를 천천히 올려 지나치게 많은 힘이 분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과 동시에 변속기도 1단이 아닌 2단에서 시작해 부드럽게 출발하도록 돕는다. 또 주행 중에는 빠르게 기어를 올려 조심스럽게 출력이 전달되도록 한다. 반면 전자식 사륜구동인 에이치트랙(HTRAC)은 일반 도로 주행 때보다 뒷바퀴 쪽으로 동력을 더 보내 네 바퀴의 접지력을 가능한 한 많이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모든 오프로드 주행의 기본이 되는 눈 모드는 아스팔트보다 접지력이 떨어지는 다양한 노면에서 사용이 가능한데, 예를 들어 물에 젖은 자갈이 깔린 곳이나 풀로 덮인 언덕 등이다.

두 번째는 모래 모드다. 사실 부드러운 모래는 바퀴가 헛돌기 쉬워 일단 빠지면 탈출하기 어렵다. 부드럽게 출발하지만 다시 빠지지 않도록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엔진 출력을 눈 모드처럼 부드럽게 나오도록 하는 것은 기본. 반면 변속기는 1단에서 출발하고 기어를 올리는 변속 시기를 가능한 한 늦춰 충분한 힘을 발휘하도록 한다. 또 앞, 뒷바퀴에 50 대 50에 가깝게 동력을 나눠 접지력을 최대한 찾으며 좌우 바퀴의 회전 차를 감지해 빠르게 탈출할 수 있도록 한다.

마지막 진흙 모드는 또 다르다. 진흙은 모래보다 저항이 상대적으로 작지만 노면이 부드럽다. 모래 모드처럼 기어 단수를 올리는 변속 타이밍은 늦추고 낮은 단을 사용하는 것에 더해 기본적인 엔진 반응을 키워 적은 회전수에서도 큰 힘을 발휘하도록 한다. 모래 모드만큼은 아니지만 눈 모드보다는 적극적으로 앞뒤에 동력을 나누고, 간접적으로 차를 앞으로 밀어내는 뒤쪽 좌우 바퀴의 회전 차이를 민감하게 감지해 브레이크를 적절하게 제어한다. 원래는 운전대를 꺾었을 때 주행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네 바퀴로 가는 힘을 줄이는 것이 기본이지만, 모래와 진흙 모드에서는 항상 네 바퀴가 힘있게 차를 움직일 수 있도록 동력을 나눈다.

사실 이런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몰라도 된다. 애초 이런 기능의 목적이 ‘운전자는 노면 상태를 확인해서 모드를 선택만 하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주의할 것은 아무리 발전한 기술이라도 자동차에 적용되는 물리 법칙과 거친 자연을 모두 극복할 수는 없다. 이 때문에 지형 반응 시스템을 편의를 위한 보조 기능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좋다.

이동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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