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스크린이 장착돼 있지 않은 렉서스 ES. 사진 한국토요타
터치스크린이 장착돼 있지 않은 렉서스 ES. 사진 한국토요타

도요타 아발론 하이브리드가 지난 10월 국내에 출시됐다. 벌써 5세대 모델이다. 출시 행사가 있던 날 도요타는 모듈형 아키텍처 플랫폼인 TNGA(Toyota New Global Architecture)를 적용해 디자인과 주행성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고 강조했다. 음, 디자인은 잘 모르겠지만 주행성능은 확실히 나아졌다. 네 바퀴가 노면을 움켜쥐고 안정적으로 달리는 맛이 믿음직했다. 특히 승차감은 엄지를 치켜들 만했다. 스팀다리미로 쭈글쭈글한 바지를 쭉쭉 펴는 것처럼 요철이 있는 노면에서도 매끈하고 부드럽게 내달렸다.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도 엉덩이를 ‘탁탁’ 하고 두 번 치는 일이 없었다. 둔탁한 소리를 내거나 덜컹거리는 일 없이 사뿐히 타고 넘었다. 하지만 시승 내내 날 불편하게 한 게 있었다. 바로 헤드레스트다.


목이 불편한 아발론 하이브리드

도요타는 프리미엄 세단에 맞게 앞 좌석 시트도 많이 신경 썼다고 강조했다. 시트에 가해지는 압력을 고르게 나눠 오래 운전해도 피로를 덜 느끼도록 설계했다고 덧붙였다. 과연 시트는 푸근하고 편안하게 등과 엉덩이를 감쌌다. 하지만 등받이가 너무 긴 게 문제였다. 키 160㎝인 내가 앉으니 헤드레스트에 머리를 반도 기댈 수가 없었다. 게다가 헤드레스트가 앞으로 살짝 기울어 있어 시승 내내 어정쩡하게 고개를 숙이고 운전할 수밖에 없었다. 아발론 하이브리드를 시승한 다음 날, 하루 종일 목이 뻐근했다. 만약 나처럼 키 작은 운전자라면 아발론 하이브리드를 타기 전, 목베개를 준비하는 게 좋을 거다.

그러고 보니 올해 시승한 자동차 가운데 아쉬운 부분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차가 더 있다. 랜드로버는 신형 레인지로버에 제스처 선블라인드를 달았다고 자랑했다. 룸미러에 달린 센서가 손동작을 인식해 손을 움직이면 자동으로 선루프 덮개를 열고 닫는 기특한 기능이다. 버튼으로 여닫으면 되는데 굳이 손동작으로 여닫을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운전하면서 선루프를 여닫는 건 쉽지 않다.

특히 신호등이 없는 고속도로나 자동차전용도로를 계속 달리면서 고개를 들지 않고 천장에 달린 선루프 조작 버튼을 한 번에 누르는 건 코끼리 코로 스무 바퀴를 돈 다음 비틀거리지 않고 바로 서는 것만큼 어렵다. 시승차를 받자마자 가장 먼저 제스처 선블라인드를 테스트해봤다. 그런데 손을 아무리 움직여도 1㎝ 남짓씩 찔끔찔끔 밖에 열리지 않았다. 손동작에 문제가 있던 걸까. 아니면 손동작을 인식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걸까. 스무 번쯤 시도하다 결국 버튼을 눌러 선루프를 열었다. 손동작에 익숙해지면 한 번에 스르륵 열리려나?

캐딜락 에스컬레이드의 트렁크 공간도 아쉽다. 에스컬레이드는 5m가 넘는 크기에 걸맞게 실내가 널찍하고 여유롭다. 2~3열 시트를 모두 접으면 성인 남자도 발 뻗고 누울 수 있을 만큼 드넓은 공간이 펼쳐진다. 하지만 3열 시트를 세우면 ‘애걔’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비좁은 트렁크 공간이 나타난다. 바닥 공간은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위로 갈수록 비스듬하게 좁아져 20인치 여행용 캐리어 하나도 똑바로 세워 싣기 어렵다(캐리어를 실으면 문을 닫을 수가 없다). 더 큰 문제는 지면에서 트렁크 입구까지 높이가 80㎝인데 안쪽에 10㎝ 남짓한 턱이 하나 더 있다는 거다. 대부분의 자동차는 트렁크 바닥 아래에 자잘한 물건을 넣을 수 있는 수납함이 있는데 에스컬레이드는 트렁크 위에 커다란 수납함을 올려놨다. 무거운 짐을 겨우 트렁크 입구까지 올려도 턱을 또 한 번 넘어야 하니 이보다 불편할 수가 없다. 에스컬레이드에 7명이 타고 여행이라도 가려면 각자 짐을 안고 타야 하는 걸까?


애스턴마틴 밴티지에는 글러브박스가 없고, 있는 컵홀더도 거의 쓸모가 없다. 사진 애스턴마틴
애스턴마틴 밴티지에는 글러브박스가 없고, 있는 컵홀더도 거의 쓸모가 없다. 사진 애스턴마틴

있어도 불편한 애스턴마틴 밴티지 컵홀더

애스턴마틴 밴티지는 글러브박스가 없다. 손잡이나 버튼이 숨어 있는 건 아닐까. 혹시 시트로엥 C4 칵투스처럼 대시보드 위쪽에 있는 건 아닐까. 샅샅이 살폈지만 역시나 없었다. 조수석 대시보드에 지갑 하나 넣을 수납공간이 없는 거다. 밴티지는 컵홀더도 인색하다. 아, 없진 않다.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있는 컨트롤러 뒤쪽에 숨어 있는데 위쪽 덮개를 뒤로 밀면 안쪽에 얌전히 놓인 컵홀더 두 개가 나타난다. 그런데 바닥에 1㎝ 깊이의 둥근 구멍 두 개만 겨우 파놓은 것 같은 모양이다. 컵을 전혀 지지할 수 없을 뿐더러 구멍도 작아 큰 컵은 아예 꽂을 수가 없다. 이런 걸 컵홀더라고 할 수 있을까. 스포츠카에 컵홀더가 무슨 필요냐는 뜻일까. 하지만 메르세데스-AMG GT에는 번듯한 컵홀더가 두 개나 있다. 애스턴마틴 디자이너는 밴티지에 컵홀더 넣기가 그렇게 싫었을까.

밴티지에 글러브박스가 없다면 렉서스 모델에는 터치스크린 모니터가 없다. 지난해 출시한 5세대 LS는 물론 지난 10월 출시한 신형 ES 역시 터치해도 반응하지 않는 모니터를 달았다. 렉서스 엔지니어에게 “메르세데스-벤츠와 BMW, 아우디 모두 고집을 버리고 터치스크린 모니터를 달았는데 렉서스는 왜 터치스크린 모니터를 달지 않느냐”고 질문한 적 있다. “터치패드와 컨트롤러로도 쉽고 편하게 조작할 수 있기 때문에 터치스크린 모니터를 달지 않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결코 쉽고 편하지 않았다. 특히 LS의 경우 앞 좌석에서 열선이나 통풍 시트를 켜려면 터치패드 뒤에 달린 시트 모양 버튼을 누른 다음, 모니터에 뜬 메뉴를 컨트롤러로 조작해 찾아 들어가야 한다. 다행히 ES는 열선과 통풍 시트 버튼을 센터페시아 아래에 달아 켜고 끄기가 수월하지만 여전히 터치되지 않는 모니터는 불만이다. 아아, 렉서스 모델에는 언제쯤 터치스크린 모니터가 달리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