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사유 궁전의 콘서트 장면. 사진 위키미디어
베르사유 궁전의 콘서트 장면. 사진 위키미디어

창문 너머로는 끝없이 펼쳐진 정원이 내다보이고 안으로는 찬란한 금빛이 휘감은 방 안에서 궁정 하인들이 저마다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모두 의자와 탁자를 재배치 중이고 또 한쪽에서 하프시코드(피아노의 전신인 건반 악기)를 옮기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는 이미 도착한 현악 연주자들이 조율을 시작하고 있다. 루이 14세의 정부인 마담 드 맹트농은 중간중간 혹시라도 실수는 없는지, 또 왕이 편안히 쉴 수 있는 자리가 잘 마련돼 있는지, 이곳저곳을 살피며 상기된 표정으로 궁인들에게 지시하고 있다. 곧 작은 소용돌이가 지나고 몇몇 지체 높은 왕족들이 입장해 자리에 앉는다. 모두 조용히 마지막 단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그때 마침 문이 열리고 모두 기립한다. 곧 마담 드 맹트농의 부축을 받으며 한 사람이 나타나니 바로 루이 14세다. 그러곤 한때 전 유럽을 호령했고 태양왕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정도로 노쇠한 76세의 왕은 힘겹게 걸어 중앙에 위치한 소파에 앉았다. 이윽고 프랑수아 쿠프랭이 하프시코드 건반에 손가락을 얹으며 음악회는 시작됐다.

1714년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일요일 음악회의 한 장면이다. 앞서 말했듯 태양왕 루이 14세는 젊은 시절에는 그의 명성과 권위에 걸맞게 스펙터클한 초대형 음악회 및 공연을 자주 열었다. 그중 화려하기로 가장 유명한 것은 1668년 극작가 몰리에르의 희극 작품 ‘조르주 당댕’에 작곡가 륄리가 음악을 입힌 희극 발레로, 베르사유 궁전에서 음악가, 무용수, 연극인 등 거의 1200명의 예술가가 동시에 참여한 공연일 것이다. 하지만 1714년 76세의 노쇠한 왕의 마음을 달래 줄 수 있는 건 스펙터클하고 시끌벅적한 초대형 공연이 아닌 작은 규모의 실내악 연주였고, 그의 마음을 이해한 마담 드 맹트농은 왕을 모시고 그의 최측근만 초대해 소규모 실내악 연주를 일요일마다 열었다.

그리고 왕의 지친 심신을 달래줄 곡을 궁정 작곡가에게 의뢰하기도 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 프랑수아 쿠프랭이 작곡한 작품이다. 이름하여 ‘로열 콘서트’.

이 ‘로열 콘서트’를 들을 수 있는 것은 왕에게는 심신의 위안이었겠지만 프랑스 베르사유 귀족 사회에서는 특권 중의 특권과도 다름없었을 것이다. 이 곡을 들어봤다는 것은 바로 왕의 몇 안 되는 최측근에 속했다는 이야기기도 하니까.

프랑수아 쿠프랭의 ‘로열 콘서트’는 총 4곡으로 구성돼 있으며 각각의 곡은 또 5~7개의 작은 악장을 포함한다. 일요일 콘서트 목적에 맞게 이 곡은 자극적이거나 화려한 표현은 자제했으며, 너무 슬프지도 또 너무 기쁘지도 않은 채 마음을 고양하는 듯한 점잖고, 섬세하고, 재치 있으며 우아한 귀족적인 음악 어법으로 가득 차 있다.


프랑스의 왕 루이 14세(1638~1715). 그의 치세 기간은 72년 3개월 18일로 유럽의 군주 중 가장 오랫동안 재위한 것으로 기록됐다. 사진 위키미디어
프랑스의 왕 루이 14세(1638~1715). 그의 치세 기간은 72년 3개월 18일로 유럽의 군주 중 가장 오랫동안 재위한 것으로 기록됐다. 사진 위키미디어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지만 마음에 고상함 깃들어

하프시코드로 연주할 일이 있어 필자는 요즘 날마다 프랑수아 쿠프랭의 ‘로열 콘서트’와 마주하고 있다. 기술적으로는 그렇게 어렵지 않지만, 최고 수준을 요구하는 음악적 취향이 깃든 작품을 연마하는 과정이 그리 쉽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조금만 더 표현하면 촌스러워지고 조금 덜 하면 무미건조해지니 난감하지만, 그사이 어딘가를 헤매다 보면 어느덧 천국에서 신선놀음이 따로 없는 듯 마음이 편안해지고 고상함에 심취하게 된다.

처음 곡을 접했을 때는 왕의 권위와 취향이 담겨 있기 때문에 ‘로열 콘서트’라고 이름 붙였던 것 아닌가 했지만, 이 곡을 접하면 접할수록 마음에 고상함과 고귀함이 넘치니 이 이름을 갖게 된 것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이다.

다음의 음반을 통해 프랑수아 쿠프랭의 ‘로열 콘서트’를 독자에게 소개해본다. 곡도 그리 길지 않으니 잠깐의 여유 시간에 이 ‘로열 콘서트’를 감상하며 베르사유의 귀족 중에서도 소수만이 누릴 수 있었던 이 곡의 정신적 풍요를 마음껏 즐겨보는 건 어떨까.


▒ 안종도
독일 함부르크 국립음대 연주학 박사, 함부르크 국립음대 기악과 강사


plus point

함께 감상하면 좋은 음반
프랑수아 쿠프랭 ‘로열 콘서트’
르 콩세르 데 나시옹, 조르디 사발

이 곡의 작곡가에 대해 조금 더 설명을 부연하자면, 프랑수아 쿠프랭은 프랑스 바로크 시대가 낳은 최고의 음악가 중 한 명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하프시코드를 위한 모음곡’이 유명하며 극도로 섬세한 음악적 감각과 시적인 표현 그리고 종종 새 소리를 악기로 탁월하게 묘사하는 등의 재치를 겸비했다. 당시 이탈리아가 주도하던 클래식 음악 세계에서 프랑스 음악의 취향을 당대 최고 수준으로 올려놓은 작곡가다.

정통 바로크 해석 연주로 유명한 조르디 사발이 이끄는 르 콩세르 데 나시옹의 연주로 ‘로열 콘서트’를 소개해 본다.

안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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