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한적한 거리에서는 이런 차들을 볼 수 있다. 왼쪽부터 1974년식 페라리 ‘디노 246 GT’와 1973년식 포르셰 ‘914’. 사진 황욱익
유럽의 한적한 거리에서는 이런 차들을 볼 수 있다. 왼쪽부터 1974년식 페라리 ‘디노 246 GT’와 1973년식 포르셰 ‘914’. 사진 황욱익

바야흐로 친환경의 시대다. 배출가스 규제는 매년 강화되고 있으며 유럽 일부 국가는 내연기관 자동차가 환경 파괴의 주범이라고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한다. 그렇다고 지금껏 만들어진 내연기관 자동차가 한 번에 없어지거나 새로운 이동 수단으로 대체되지는 않는다. 자동차 선진국에서는 나름 합리적인 방법으로 친환경 자동차와 기존 내연기관 차의 균형을 맞춘다. 반면 한국의 경우 비합리적인 법률이 클래식카 시장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한국의 클래식카 시장이 성장하는 데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이 바로 자동차 관련 법규다. 클래식카라 불릴 변변한 차종이 없는 건 둘째치고 아버지가 타던 차를 아들이 물려받아 타는 일은 이제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더군다나 차령이 20년 이상 된 차를 길거리에서 보기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며, 자동차를 통해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할 만한 거리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얼마 전 필자의 지인 중의 한 명은 아주 황당한 경험을 했다. 지독한 자동차광이기도 한 그는 몇 년 전 어렵사리 구한 현대차 ‘그라나다’를 정성껏 복원하며 종종 그 내용을 지인들과 공유했다. 지인들은 그 모습을 보며 매우 부러워했다. 할아버지와 추억이 가득한 이 차는 그에게 매우 특별한데, 그는 이 차의 복원을 위해 전 세계 부품상을 뒤졌으며, 풍물 시장과 중고 장터를 돌며 그 시절의 추억 가득한 소품도 하나씩 준비했다. 촌스러운 포장의 사랑방 사탕과 당시 성인들에게 인기 있었던 주간지 ‘선데이 서울’, 1980년대 초반 사업가들이 사용했음 직한 알이 큰 은테 안경, 고급스러운 천으로 만들어진 사각 티슈 케이스 등 그 시절 그라나다에서 볼 수 있었던 소품들이었다.

그의 차는 상당히 오랜 시간에 걸쳐 원래의 모습을 찾아갔다. 부식된 철판은 다시 만들어 붙이고 없는 부품은 제작하는 등, 그는 이 차에 많은 것을 투자했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생명을 찾은 이 차가 도로에 나왔을 때 많은 자동차 마니아가 환영했다. 하지만 서울시의 노후 차 관련 법규는 그러지 못했다. 낮에 사대문 안에서 운행할 경우 이 차는 과태료 부과 대상이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시는 노후 차 등급을 나누고 사대문 안 출입 제한, 과태료 부과 등의 배출가스 등급제를 시행 중이다.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지목된 경유차 억제로부터 시작된 이 정책은 배출가스저감장치(DPF)를 장착하면 운행이 가능하나 문제는 배출가스저감장치가 없을 경우다.

운이 좋아 배출가스저감장치를 장착할 수 있는 경우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라나다처럼 차령이 30년 이상 되었거나 구조적으로 배출가스저감장치를 달 수 없는 차들, 혹은 판매 대수가 적거나 남아 있는 개체가 적은 차종은 멀쩡히 잘 달릴 수 있어도 유예 기간이 지나면 폐차하거나 서울시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현재 국내 자동차 관련 법규가 여러모로 문제가 많다는 지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오래된 차 혹은 클래식카에 대한 법률은 금지와 제한을 위해 존재할 뿐 자동차 마니아를 위한 부분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실정이다.

일단 한국에서 오래된 차는 법률적으로 환영받지 못한다. 날로 까다로워지는 환경 규제 때문인데 몇만 대 단위도 아니고 기껏해야 몇백 대 수준의 오래된 차까지 현재 기준을 적용한다는 것은 매우 불합리한 일이다. 더군다나 차령이 긴 차를 일상 주행용으로 매일 쓰는 경우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이유로 오래된 차를 소유한 사람들은 운행 일자 대비 세금과 보험에 있어도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정식 번호판이 달려 있는 1934년식 MG PA ‘스페셜 레이서’. 사진 황욱익
정식 번호판이 달려 있는 1934년식 MG PA ‘스페셜 레이서’. 사진 황욱익
2017년부터 미국 내 수입이 가능해진 영국 포드의 1972년식 ‘RS 2000’. 사진 황욱익
2017년부터 미국 내 수입이 가능해진 영국 포드의 1972년식 ‘RS 2000’. 사진 황욱익

클래식카 위해 합리적 규제 적용하는 해외

자동차 법규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일본은 차령에 따라 세금이 할증되는 제도를 시행 중이다. 자동차 안전검사나 배출가스 검사도 자동차가 제작된 해 기준이다. 일본의 자동차 안전검사는 1972년을 기준으로 나뉘는데 1972년 이전에 제작된 차는 내수형이든 수입이든 안전벨트가 없거나 운전석만 있어도 자동차 검사를 통과하는 데 문제가 없다. 왜냐하면 일본에선 안전벨트에 대한 규정이 생긴 게 1973년이기 때문이다. 자동차 법규가 까다롭다고 하지만 일본은 꼼꼼하게 매년 갱신하고 있다. 환경 기준부터 안전 기준 등 자동차를 운용하는 데 필요한 법률을 까다롭게 심사하고 적용하지만, 이들이 항상 염두에 두는 건 제작 당시의 사회적인 환경과 법률이다.

좀 더 탄력적인 미국은 주별로 자동차 관련 법규가 다르다. 대표적으로 워싱턴주는 차령이 30년 이상이면 클래식카로 등록을 할 수 있는데, 이 차는 매년 부과되는 자동차세를 면제받는다. 물론 이 경우에도 각 주에서 정한 안전 기준과 환경 기준을 충족해야 하지만 한국처럼 불가능한 배출가스 기준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른 주의 경우 차령 25년 이상 된 차를 별도의 카테고리로 취급하는데 이 역시 제조 연도에 따른 법률을 적용하며 일부는 차령에 따라 배출가스에 대한 검사도 면제된다.

영국과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도 환경 기준과 안전 기준은 매년 강화되고 있지만 과거에 제작된 자동차들이 불리하거나 비합리적인 처우를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미국과 비슷한데 특정 차종이나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차, 원형 그대로 보존된 차에 대해서는 특별 번호판을 발급하거나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관리한다.

한국에서 클래식카를 보기 어려운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자동차를 바라보는 시각이 교통수단 정도로 단편적이고 자동차를 통해 만들어진 문화가 없기 때문이다. 소비재의 역할이 여전히 크지만, 자동차는 한 시대를 대표하고 기술의 척도를 나타내는 기계 산업의 꽃이라 불리며 문화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소비하는 자동차는 내가 필요해서 사는 것보다 남이 어떻게 보느냐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법률 역시 마찬가지다. 일부에서는 한국의 자동차 법률과 보험 체계가 신차 위주라 자동차를 오래 소유하는 것이 매우 번거롭다는 말까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