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역대급 협업으로 화제가 된 디오르와 조던의 ‘에어 조던 1 OG 디오르’. 사진 디오르 인스타그램. 나이키와 지드래곤이 협업한 ‘에어포스 1 파라-노이즈’. 사진 하입비스트코리아 인스타그램. 신상품이 나올 때마다 바로 리셀 가격이 오르는 ‘나이키 X 사카이 LD 와플’. 사진 하입비스트코리아 인스타그램
왼쪽부터 역대급 협업으로 화제가 된 디오르와 조던의 ‘에어 조던 1 OG 디오르’. 사진 디오르 인스타그램. 나이키와 지드래곤이 협업한 ‘에어포스 1 파라-노이즈’. 사진 하입비스트코리아 인스타그램. 신상품이 나올 때마다 바로 리셀 가격이 오르는 ‘나이키 X 사카이 LD 와플’. 사진 하입비스트코리아 인스타그램

“당첨됐어요. 손이 너무 떨립니다.” “축하합니다. 정말 부럽습니다.” 인터넷 블로그에 쏟아지는 환호와 축하. 무엇에 당첨됐기에 그토록 사람들이 열광하는 걸까? 로또 당첨, 아파트 청약이나 공모주 청약 당첨도 아니다. 엄청난 화제 속에 국내에 상륙한 ‘나이키 에어 조던 1 OG 디오르’의 래플(raffle·추첨식 복권) 당첨을 축하하는 것이다.

이 모델은 프랑스 명품 브랜드 디오르(Dior)와 나이키 조던이 협업한 결과물이다. 6월 25일 국내 판매가 시작됐다. 역대급 최강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협업)이란 화제 속에 ‘에어 디오르’란 별칭으로 불리며, 오랫동안 운동화 팬에게 설렘을 줬다. 전용 웹사이트에 구매 신청 등록하고 추첨을 통해 당첨돼야만 구매 자격이 주어지는 귀하디 귀한 한정판이다. 발목까지 올라오는 하이톱이 300만원, 일반 스니커즈 스타일의 로톱은 270만원이다. 명품 브랜드와 스포츠 브랜드의 협업 한정판 중에서도 역대급이라고 하지만, 이 비싼 운동화 구매권이 로또만큼 당첨되기 어렵다는 점이 놀랍다. ‘에어 디오르’는 세계적으로 총 1만3000켤레가 생산됐다. 그중 5000켤레는 유명인사와 최상위 고객에게 별도로 제공됐고, 오직 8000켤레만 일반 고객에게 래플 형식으로 판매됐다. 디오르의 최고경영자(CEO) 피에트로 베카리는 9시간에 걸쳐 추첨이 진행됐다고 발표했다. 유명 패션 주간지 ‘WWD’에 의하면 8000켤레의 에어 디오르를 구매하기 위해 래플에 참가한 응모자가 500만 명이 넘으며, 당첨률은 625명 중 한 명, 즉 0.16%에 지나지 않았다. 신의 영역이라 불리는 주택이나 공모주 청약 당첨률을 뛰어넘는 경이로운 것이다.

더 놀라운 건, 에어 디오르의 리셀(resell·재판매) 가격이다. 한 유명 스니커즈 리셀 플랫폼에 올려진 가격을 보면, 한국 남성의 가장 대중적인 사이즈 270의 재판매가는 1550만원, 265는 1500만원, 275는 1450만원, 280은 1400만원이다.

에어 디오르 이전에는 나이키와 지드래곤이 협업한 ‘에어포스 1 파라-노이즈’가 리셀 마켓을 뒤흔들었다. 응모자가 동시에 몰리는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기습적으로 래플을 진행했는데도 사이트가 일시적으로 정지되는 사태를 피할 수 없었다. 에어포스 1 파라-노이즈 판매가는 21만900원이었는데, 해외 리셀 마켓에서 1728~2373달러(약 207만~284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이렇게 귀한 한정판 운동화는 새로운 문화와 패션 마켓인 리셀을 탄생시켰다. ‘주식보다는 운동화에 투자하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수백만원짜리 고가 한정판 운동화가 아니더라도 희귀한 모델을 확보할 수 있다면 몇 배의 수익을 거둘 수도 있다. 나이키와 아티스트 톰 삭스가 협업한 ‘마스 야드 2.0’은 200달러(약 24만원)에 판매됐지만, 미국에서 리셀 가격은 3750달러(약 450만원)를 뛰어넘었다. 전 세계 운동화 팬이 차지하기 위해 접전이 펼쳐졌던 ‘나이키 X 사카이 LD 와플’의 그린 멀티 컬러는 판매가 155달러(약 18만원)의 네 배가 넘는 700달러(약 84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나이키 X 오프화이트 베이퍼맥스’ 화이트는 판매가가 250달러(약 30만원)였지만 리셀 가격이 800~900달러이며, 한때 최고가 1781달러(약 213만원)를 기록하기도 했다. 물론 희귀 운동화를 확보하는 능력을 발휘해야 하지만 20만원에 구매한 운동화를 200만원에 리셀할 수 있다면, 20만원으로 주식을 사겠는가, 한정판 운동화에 베팅하겠는가?


온라인 플랫폼이 만든 ‘1020 리셀 갑부’

리셀 전자상거래 플랫폼 ‘스톡엑스(Stock X)’의 CEO 조시 루버의 테드(TED) 강연이 유명하다. “2011년에 마지막으로 출시된 ‘조던 3 블랙 시멘트’는 160달러(약 19만원)였습니다. 운동화 출시 며칠 전부터 사람들이 캠핑(줄지어 기다리는 것)을 해서 구매했고, 바로 그날 이베이에 2~3배 가격으로 운동화를 판매했습니다. 만약 2011년에 조던 3 블랙 시멘트를 구매했다면, 2015년 162% 수익을 올렸을 겁니다. 애플 수익률(134%)과 82%의 상승률을 기록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를 뛰어넘습니다.”

미국에서 주식투자를 하려면 18세 이상이어야 하지만, 운동화는 16세에도 거래할 수 있다. 운동화는 많은 사람에게 합법적으로 접근 가능한 수단이며, 운동화 거래 시장은 민주화한 시장이자 규제가 없다. 그는 세계적으로 수요가 폭발하고 있는 운동화 리셀이 온라인이나 소셜미디어를 통한 개인적인 거래가 아니라, 주식처럼 거래될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조시 루벅은 운동화 리셀 마켓을 데이터베이스화하고, 리셀 가격을 주식 시세 변동과 같이 실시간 업데이트하는 스톡엑스를 창업해, 3년 만에 1조원 이상 가치의 리셀 전자상거래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물론 주식 부자와 같은 운동화 리셀 갑부도 탄생했다. 상속이 아니고서야 주식으로 16세의 백만장자가 될 수 없지만, 킥스(Kickz)로 더 잘 알려진 2000년생 벤저민 카펠루시닉은 운동화 리셀로 16세에 10억원을 벌었다. 유대인 사업가 집안의 벤저민 카펠루시닉은 8학년(중2)에 운동화 리셀의 가치를 깨닫고, 처음으로 ‘르브론 X MVP’ 농구화를 400달러에 사서 4000달러에 파는 데 성공했다. 이후 ‘스니커돈(Sneakerdon.com)’이란 온라인 쇼핑몰을 오픈하고 희귀한 운동화만 본격적으로 리셀하기 시작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입소문이 나며 미국 유명 래퍼들이 벤저민에게 직접 운동화를 구매하는 것이 소문나자 그는 리셀러로서 명성을 얻었다.

벤저민 카펠루시닉의 경이로운 성공 신화로 10~20대가 리셀 사업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들의 리셀 마켓은 단순하게 쓸 한만 중고품을 거래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소장 가치가 있는 상품을 거래한다. 또한 상품뿐 아니라 자신만의 개성 있는 취미와 취향을 공유하므로 그들만의 커뮤니티와 문화를 만들고 있다. 

미국 중고 의류 업체 스레드업에 따르면, 세계 리셀 시장은 지난해 20억달러(약 2조4600억원) 규모였는데, 2025년까지 60억달러(약 7조4000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운동화 리셀 플랫폼이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2015년 창업한 스톡엑스는 대규모 투자 유치에 성공하며 1조원 가치의 기업으로 성장했고, 중국 점유율 1위 ‘두앱’은 지난해 상반기에만 약 3400억원의 거래액을 기록했다.

이런 세계적인 흐름에 국내 플랫폼 업체들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네이버 자회사 스노우가 한정판 운동화 거래 플랫폼 ‘크림’을 시작했고, 온라인 패션 쇼핑몰 ‘무신사’도 한정판 운동화 거래 중개 플랫폼 ‘솔드아웃’을 론칭한다.

지난 몇 년 사이 급성장한 운동화 리셀 마켓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불경기에도 흔들림이 없어 보인다. 시장의 독특한 특성 때문에 여러 가지 우려가 있기도 하다. 그러나 분명한 건, 운동화가 이제 더 이상 운동화이기만 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건 유명 경매에서도 증명된다. 지난 5월 소더비 경매에선 마이클 조던이 신었던 ‘에어 조던 1’ 농구화가 56만달러(약 6억9000만원)에 낙찰됐다. 지난해 소더비 경매에 나왔던 나이키 최초의 러닝화 ‘문 슈(Moon Shoe)’가 기록한 43만7500달러를 훌쩍 뛰어넘는 역대 최고가였다. 조시 루버가 창업 초기에 말했던 것처럼, 운동화는 주류 문화 이상의 특별한 투자 기회가 됐다.


▒ 김의향
패션&스타일 칼럼니스트, 케이 노트(K_note)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