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카메라를 흔들리지 않게 유지하기’ 가운데. 사진 김진영
챕터 ‘카메라를 흔들리지 않게 유지하기’ 가운데. 사진 김진영

누구나 사진을 찍는 시대다. 카메라가 없는 사람도 카메라가 달린 휴대전화가 있고, 기계장치에 대한 이해가 없더라도 버튼을 누르면 사진을 쉽게 찍을 수 있다. 과거와 비교한다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사진을 소비하며, 가히 사진의 우주라고 부를 만한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렌즈가 부착돼 있는 전자 기기들로 수많은 사진을 생산하다 보니, 과거에는 사진을 찍기 위해 필수적인 지식이라 여겨진 것들이 이제는 부차적인 것이 되었다. 물론 전문 영역에서는 그렇지 않지만,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은 경험이 전부인 사람에게 조리개나 셔터 스피드를 이해해야만 사진을, 혹은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한다면, 그럼 내가 찍은 사진은 좋은 사진이 아니냐는 반문의 말을 들어야 할 것이다.

‘카메라 잡는 법(Holding The Camera·Spector Books & Everyedition·2019)’은 지금 잊혀 가고 있는, 그리고 점점 더 잊힐 이미지인, 카메라를 잡는 자세에 대한 사진을 담은 책이다. 이 책의 저자 알베르토 비에첼리(Alberto Vieceli)는 사진가가 아니라 그래픽 디자이너인데, 그는 자신이 이미지를 직접 생산하는 대신 여러 방법으로 이미지를 수집하고 분류한다. ‘영국에서 인사 보내는 동물들(Animals Greeting From The UK·Everyedition·2019)’에서는 1940년대에서 1960년대 만들어진 동물 빈티지 엽서를 수집해, 동물의 이미지로 안부 인사를 전했던 문화를 소개한다. ‘기쁨의 디비전(Division of Pleasures·Everyedition·2019)’에서는 밴드 조이 디비전의 ‘알 수 없는 기쁨(Unknown Pleasures)’ 앨범이 발매된 후, 40여 년간 각종 물건에 앨범 커버 디자인이 변주돼 등장한 것을 웹상에서 이미지를 모아 소개한다. 그의 흥미를 끄는 이미지는 끈기 있는 수집·분류·디자인을 거쳐 책으로 완성된다.

‘카메라 잡는 법’ 역시 저자가 수집한 사진에 기반한 책이다. 그는 4년간 필름 카메라의 매뉴얼과 오래된 사진 관련 잡지를 헌책방이나 벼룩시장에서 수집했다. 이에 더해 구글링을 비롯해 다양한 디지털 아카이브를 뒤졌다. 그리고 그 안에서 카메라를 지지하고 고정해 잡는 다채로운 방식을 수집했다. 빠르게는 1910년대부터 시작해 1990년대에 이르는 330개의 이미지를 책에 담고, 각 이미지의 출처를 색인표에 꼼꼼히 정리해 표기했다.

사진가가 시공간이 있는 4차원에서 2차원의 사진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4차원의 점이 돼 카메라를 잡아 고정해야 한다는 점을 이 책은 보여준다. 저자는 이를 자세 및 방법에 따라 26개의 챕터로 분류해 수록했다. ‘허리와 가슴 높이에서 사진 찍기’에서는 허리나 가슴 높이에 카메라를 들고 아래를 내려다보며 찍어야 하는 이안반사식 카메라를 쥐는 정자세가 담겨 있고, ‘머리 위로 들기’에서는 카메라를 머리 위로 들고 찍는 자세가, ‘바닥 높이에서 찍기’에서는 바닥에 카메라를 두고 찍을 때의 자세가 담겨 있으며, ‘카메라를 수평과 수직으로 들기’에서는 같은 카메라를 수평으로 들 때와 수직으로 들 때의 자세가 담겨 있다. 이러한 챕터에 담긴 사진들은 우리에게 익숙하고 가장 널리 생산된 종류의 카메라 잡는 이미지들이다.

오늘날에는 생경한 이미지들도 책에 가득 담겼다. 벨로즈라 불리는 주름상자가 늘어나는 카메라를 고정하는 방식, 벽을 이용해 카메라를 지지하는 방식, 사진가가 없는 채로 자전거·책·차량 등에 사진기를 매다는 방식, 나아가 현대 몰카의 조상 격이라 할 수 있을 사진들, 이를테면 손목이나 넥타이에 카메라를 숨겨두는 방식까지 말이다.

스위스 작가 나딘 올로네츠키는(Nadine Olonetzky)는 책에 수록된 ‘고정의 유형학(Typology of Holding On)’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카메라를 어떻게 기울이고, 허리 앞에서 두 손으로 어떻게 카메라를 쥐는지, 뷰파인더를 어떻게 바라보고, 한 눈으로 세상을 어떻게 응시하는지, 그리고 마치 탐정이 된 것처럼 카메라를 어떤 방식으로 스타킹 속에, 등 뒤에 숨기는지, 그리고 어떻게 건물 모퉁이에 숨은 채 카메라만 주변을 살피도록 하는지. ‘카메라 잡는 법’은 현재는 멸종한 아날로그 사진 시대에서 온 이미지를 보여준다. 운석 충돌에 희생된 것으로 여겨지는 공룡처럼, 한때 매뉴얼과 광고를 통해 백만 번은 배포되었지만 이제는 지워지고 사라진 이미지들을.”

온갖 기발한 노력이 담긴 ‘카메라 잡는 법’은 원하는 이미지를 담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를 동원하겠다는 사진가의 의지를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뷰파인더를 통해 보는 것과 이후에 사진이라는 결과물로 나올 이미지가 최대한 일치하도록 말이다. 그리고 이 ‘수’에 필수적인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사진가의 신체라는 점이 한때 수없이 배포된 이 이미지들을 통해 자명하게 드러난다.


‘카메라 잡는 법’ 표지. 사진 김진영
‘카메라 잡는 법’ 표지. 사진 김진영
챕터 ‘카메라를 수평과 수직으로 들기’ 가운데. 사진 김진영
챕터 ‘카메라를 수평과 수직으로 들기’ 가운데. 사진 김진영

스마트폰 등장 이후 낯설어진 매뉴얼 이미지

카메라의 기계적 속성에 맞춰 적확하고 일사불란하게 자세를 취하는 사진가들의 모습은 그들이 들고 있는 카메라를 닮아 있다. 팔은 특수한 자세가 되어 카메라를 지지한다. 두 손이 카메라를 쥐는 데 사용되자 입이 셔터 릴리즈를 눌러 작동시킨다. 그야말로 사진가는 온몸을 이용해 원하는 촬영을 안정적으로 하는 것이다. 인간의 신체는 카메라와 거의 물리적으로 연결돼 보일 정도로 기계적이고 자로 잰 듯하다. 카메라를 그저 인간이 사용하는 도구로 여기기에 부적합해 보일 정도로, 인간과 기계 사이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융합돼 있다.

미디어 이론가 빌렘 플루서(Vilém Flusser)는 ‘몸짓들: 현상학 시론(Gesten: Versuch einer Phönomenologie·1991)’에서 카메라와 인간의 융합을 다음과 같이 서술한 바 있다. “사진의 몸짓 속에서 사람의 몸은 장치와 융합된다. 몸과 카메라 중 어느 하나에 특별한 기능을 배분하는 것이 거의 무의미할 정도로 말이다.” 우리는 보통 사진가를 결정 권한이 있는 행위자로, 그리고 카메라를 도구로 생각한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 카메라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어떻게 될까? 카메라의 관점에서는 인간의 신체 역시 매뉴얼에 따라 카메라의 가능성을 실현하는 도구가 된다. 이런 이유로 플루서는 이렇게 말한다. “카메라를 사진가의 도구라고 규정하는 것은 거의 무의미하다. 촬영 위치를 탐색하는 사진가의 몸을 카메라의 도구라고 주장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무의미하다.” ‘카메라 잡는 법’이 보여주듯, ‘사진 촬영의 몸짓’에서 사진가의 몸과 카메라는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을 오늘날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는 행위에 적용하긴 어려워 보인다. 사진 촬영의 몸짓은 이제 정해진 매뉴얼이 없는 즉흥적인 재즈 연주를 닮았다. 그래서 카메라를 어떻게든 잡고 지지하는 사진가의 몸짓은 지금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시대의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마치 오래된 유물을 소개하는 고고학 서적을 들여다보는 느낌을 준다.


▒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