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옥천군 부소담악 앞 금강변의 경치가 아름답다. 사진 이우석
충청북도 옥천군 부소담악 앞 금강변의 경치가 아름답다. 사진 이우석

“넓은 들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귀에 익은 아름다운 시 ‘향수(鄕愁)’의 덕이다. 내륙 중 내륙 땅 충북 옥천(沃川)은 이렇게 ‘꿈엔들 잊힐 리 없는’ 향수 어린 한국인의 고향이 돼버렸다. 그 중심에는 옥천에서 나고 자란 정지용 시인이 있다. 유학 떠나는 뱃길에서 눈부시게 푸른 대한해협 바다를 보았을까? 시인은 유독 바다를 노래하기를 좋아했다.

“바다는 뿔뿔이 달아나려고 했다. 푸른 도마뱀 떼같이 재재발렀다. 꼬리가 이루잡히지 않었다. 흰 발톱에 찢긴 산호보다 붉고 슬픈 생채기.” 정지용의 시 ‘바다2’에 나오는 구절이다. ‘바다1’ ‘바다2’에다 ‘갈릴레아 바다’ ‘해협’ 등 많은 작품에 바다에 대한 사랑을 그대로 내비쳤다. ‘바다’ 제목만 아홉 편이다.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정지용의 대표 시 ‘고향’에서도 드러냈다. ‘향수’에는 바다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늘 바다(항구)를 마음속에서 놓지 않았다.

시인에겐 호수도 바다를 대체할 만한 것이었다. 다행히 옥천엔 비단 같은 금강(錦江)이 흐른다.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밖에.” 호수만 한 마음을 도저히 가릴 수 없어 눈을 감아버린다.

시인이 생을 마감하고 훗날 그의 고향에 ‘내륙의 바다’로 불리는 대청호가 생겨날 줄 이미 알았을까. ‘논어’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지자요수 인자요산(知者樂水 仁者樂山)’. 슬기로운 이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 이는 산을 좋아한다. 슬기로운 이는 즐겁게 살고, 어진 이는 오래 산다. 시인은 물을 좋아하는 ‘지자(知者)’였다. 그래서 내내 호수의 큰 물을 마음에 두고 살았던 모양이다.

시인 정지용(鄭芝溶·1902∼50), 그의 명성이나 예술성 그리고 이름까지. 요새 이름으로 치자면 ‘지드래곤’급이다. 시인을 잉태한 옥천은 이제 진초록 여름을 보내고 있다. 시인이 떠난 옥천에 1970년 생겨난 대청댐. 옥천은 가장 많은 땅을 잃은 대신 바다 같은 물이 생겼다.

옥천 구읍(舊邑)에서 나고 자란 시인. 그의 발자취를 찾아갔다. 상·하계리, 죽향리, 문정리, 교동리 등 조선 시대 관아가 자리한 큰 마을을 이룬 곳이 구읍이다. 하지만 경부선 철로가 남쪽으로 지나며 그냥 그런저런 시골이 되었다. 이곳에 바로 ‘꿈엔들 잊지 못하는’ 시인의 고향 마을이 있다.

나지막한 지붕에 작은 초가집. 정지용 생가다. ‘얼룩백이 황소’는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로 집 앞에는 ‘넓은 들’이 있고 ‘실개천’이 휘돌아나간다. 자그마한 골목 벽에도 우편취급국 간판과 상점 셔터에도 시구(詩句)로 빼곡히 채워졌다. 마을에서 탄생한 시인 덕분에 대단한 서정이 깃들었다.

‘향수’, 1927년 3월 종합 월간지 ‘조선지광’에 발표한 시다. 첫 시집은 8년 후인 1935년에 나왔다. 조선 최초의 모더니스트 시인이 탄생한 순간이다. 전쟁 발발 이후 그가 월북했다는 얘기가 돌았다. 이후 그 이름은 우리 근대사에서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모든 흔적을 지웠지만, 그 누가 ‘향수’를 외면하고 ‘춘설’을 망각할 수 있을까. 시인은 문학사를 기록하는 정기간행물 대신 가슴에 남았다. 초가집 옆에는 정지용 문학관이 있다. 문학관 앞에는 동상이 있고 밀랍 인형도 지키고 섰다. 해리포터처럼 동그란 안경을 쓴 그의 외모는 참 명석해 보인다.


민물고기인 피라미를 기름에 튀긴 후 고추장에 조린 도리뱅뱅이는 충청도 별미다. 사진 이우석
민물고기인 피라미를 기름에 튀긴 후 고추장에 조린 도리뱅뱅이는 충청도 별미다. 사진 이우석

시가 떠오르는 맑은 물 위 연둣빛 풍경

‘향수’의 고장 옥천은 의외로 교통이 사통팔달이다. 철도 및 도로가 아주 좋다. 서울에서 두어 시간만 달려오면 향수를 달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서슬 퍼런 해를 보면 가을맞이 채비는 아직 멀어 보이지만, 옥천은 벌써 무르익었다.

옥천을 돌아나가는 금강은 이름처럼 녹색 비단이 휘날리듯 흐르고 있다. 이름 뜻은 ‘구슬 옥’ 자가 들어가는 옥천(玉川)이 아닌 ‘기름질 옥’이 들어가는 옥천(沃川)이지만 아무도 그리 받아들이지 않는다.

서화천 등 구불구불 작은 물줄기도 많다. 조선의 성리학자 우암 송시열이 극찬한 바위 ‘부소담악’도 서화천이 대청호와 이어지는 길목에 있다. 바위로 만든 병풍이 물에 떠 있는 것 같다는 그 부소담악을 보기 위해선 580m가 넘는 고리산에 오르면 된다. 정식 명칭은 환산(環山)이지만 마을 사람들은 고리산이라고 부른다.

산에 오른다면 겁부터 내는 이들이 많지만 원래 물이 잠긴 지대가 높을 뿐 정작 산은 나지막하다. 낚시꾼들이 세월을 낚는 천변 오솔길을 따라 걷다가 장승공원에서 올라가면 금방이다. 공원이란 이름이 붙었지만 작은 놀이터만 하다. 대청호에 수몰마을에서 가져온 장승을 세워놓았다.

위엔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흙 계단을 몇십 개 오르자면, 풍경을 한눈에 집어넣을 수 있는 정자가 나타난다. 정자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온통 녹색을 뒤집어쓴 거울 같은 물을 바라본다. 우뚝 솟은 봉우리도 삐죽한 소나무 그림자도 모두 반질한 물에 새겨진다. 철쭉을 흔드는 바람이나 제법 멀리 채는 낚싯대 정도로는 절대 깨지지 않을 단단한 물이다.

기어코 정적을 깨는 배가 한 척 떴다. 브이(V) 자 모양 파장을 길게 남기며 녹색의 조각을 흩트려 놓는다. 시인의 말처럼 “푸른 도마뱀 떼같이 재재바른 강물도, 호수도 뿔뿔이 달아 나려고” 하는 모양이다.

강변에서 호반으로 펼쳐진 연둣빛 세상을 실컷 감상하면 하루가 모자란다. 하지만 역시 향수, 정겨운 시장을 지나칠 순 없다.

청산면 장에는 없는 게 없다. 볕 좋은 길가에선 푸성귀를 내놓은 아낙이 앉았고 골목에는 잡화며 옷을 판다. 밥 한술 뜰 곳을 찾아 나섰다. 옥천 다슬기는 씨알이 굵기로 유명하다. 옥천 명물 생선국수(민물고기 어죽)를 먹으러 이름값 떨치는 식당으로 향했다.

흙내는 없다. 구수한 감칠맛이 모락모락 김을 타고 피어난다. 딱 맞춰 한 바퀴 돌려 튀겨낸 도리뱅뱅이(민물고기인 피라미를 프라이팬에 동그랗게 놓고 기름에 튀긴 후 고추장에 조린 음식)는 바삭한 그 맛에 서너 번 젓가락질에 사라져 버린다.

아직 오지도 않은 가을이지만 식탁 위 도리뱅뱅이처럼 금세 사라질까 두렵다. 요절 시인의 시구처럼 가슴에 오래 남을 옥천 여행이지만 해가 저물어가니 마음은 개학 앞둔 초등학생처럼 급하고 헛헛하다. 잠시 왔지만 다시 향수가 가슴에 알알이 맺힌다. 정작 내 고향은 이곳이 아닌데. 이제 한 달이면 추석이라 그런 모양이다.


▒ 이우석
놀고먹기 연구소 소장, 성균관대 미술교육학과, 전 여행기자협회 회장


여행수첩

먹거리 청산면 선광식당은 붕어 등 민물고기와 잡어를 푹 끓여낸 생선국수가 맛있는 집이다. 나지막한 작은 슬레이트 지붕집에서 국수를 맛볼 수 있다. 매콤 시원하게 끓여낸 국물을 들이켜도 작은 가시 하나 없다. 도리뱅뱅이도 참 잘한다.

충북의 여느 고장처럼 옥천은 다슬기(올갱이)로도 유명하다. 널찍한 주차장을 둔 옥천 금강올갱이는 다슬깃국으로 널리 입소문이 났다. 얼갈이를 넣고 시원하게 끓여낸 다슬깃국에 밥을 말아 한술 뜨면 찌든 속이 다 시원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