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계 ‘경인식당’

 불닭보다 얼큰한 닭만둣국




 어스름해지는 오후, 시간은 어느새 5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거기... 늦게 가면 만두 없어. 만두 없으면 주인장이 문 닫고 그냥 집에 가버리거든. 그러니까 좀 일찍 서둘러야 할 거야” 했던 선배의 말이 문득 생각났다. 그러나 속으로는 ‘만둣국이 맛있으면 얼마나 맛있겠나’ 싶었다.

 도착한 시각은 6시 조금 모자란 시간. 횡계 읍내에서 꼬불꼬불 골목길을 들어가 찾은 곳은 ‘경인식당’. 잘 보고 신경 쓰지 않으면 찾아내기도 힘든 구석진 후미에 작은 식당 간판이 걸려 있다. 식탁은 대여섯 개, 손님을 반기는 이는 탁자 밑에 매어진 조그만 강아지가 전부다. 컹컹 짖는 소리에 주인 할아버지가 나온다. 힐끗 주방을 쳐다보던 할아버지, 무뚝뚝하게 소리친다.

 “(만두) 있어?”

 “없어요! 다 팔았어요.”

 낭패감에 젖어 있을 즈음, 주방에서 할머니 목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왔다.

 “몇이우?”

 “셋인데요.”

 “그럼 앉아. 그 정돈 돼.”

 지응상(77), 윤순녀(70) 씨가 40년째 운영하고 있는 전설의 만둣국집 경인식당은 사실 초라하다 못해 불안하기까지 한 형색이었다. 하지만 욕심 없이 장사하는 주인장들의 시선과 마음이 그대로 장식 없이 음식에만 담겨져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오히려 반갑고 푸근할 정도였다. 메뉴 역시 단촐한 만둣국 한 가지다. 만두가 맛있다고 하니 군만두니 찐만두니 여러 메뉴가 있을법한데 고집도 보통이 아닌 셈이다. 그러고 있는 사이 벼르고 있던 만둣국이 드디어 나왔다.

 붉고 얼큰한 국물에 김치와 두부 그리고 예전엔 꿩이었던 고기가 이젠 닭으로 변해 만두 속을 채우고 있었다. 첫맛은 얼큰하고 강렬하다. 하지만 만두를 한 입 깨물고 입맛을 다시면 금세 담백한 기운이 입안에 퍼진다. 매운 국물과 담백한 만두가 절묘한 조화를 이뤄 허겁지접 숟가락을 놀리게 만든다.

 주인 어르신들이 평생 만두를 팔아 자식농사까지 다 하셨다고 하니 맛의 수준은 다들 인정한 셈. 일면 무뚝뚝한 말 속에 따뜻한 마음이 전해 왔다.



 둔내 ‘함박눈’

 할머니 손맛의 산채정식



 영동고속도로를 지나다가 휘닉스파크스키장을 들어서는 길이 바로 면온 나들목이다. 이 나들목에서 면온초등학교 쪽으로 직진하다가 보면 오른쪽 모퉁이로 아주 조그맣고 허름한 식당이 한 채 보이는데, 이곳이 바로 오래된 강원도 산골짜기 일자형 가옥 내부만을 간단하게 개조해 사용하고 있는 산채정식 전문점 ‘함박눈’이다.

 휘닉스파크를 찾는 많은 사람들 중 아는 사람들은 꼭 한 끼는 먹고 간다는 산채정식 집으로, 횡계의 경인식당처럼 연로하신 조권형 씨 내외가 직접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맛의 비결은 처음에는 찾기가 힘들 정도로 담담한 나물들의 맛에 있다. 이 담담한 맛은 매연에 그리고 각종 조미료에 길들여진 도시인의 혀로는 좀처럼 감지하기 어려운 깊은 내공을 숨기고 있다.

조권형 씨가 직접 주변 태기산에서 채취해 온 것만 요리하는 스무 가지가 넘는 다양한 나물들을 입에 넣고 이리저리 굴려보면 천천히 산의 맛이 느껴진다. 뿌리가 느껴지는 흙발에서 줄기까지 그리고 잎을 따라 공기가 숨쉬는 듯 입으로 혀로 코로 드나드는 나물의 향은 좀처럼 거부하기가 힘들다.

 산더덕, 곰취, 신선초, 고비, 고사리 등 20여 가지의 산채나물에 뚝뚝한 조기 한 마리와 뒷뜰에 있는 된장통에서 급히 퍼왔을 누런 된장국은 산채정식과 환상의 콤비를 이룬다. 더덕구이에 동동주 한 잔이면 서슬 퍼런 추위도 금세 녹아버린다.



 고성 ‘꼽슬이네’

 살살 녹여내듯 만든 오삼불고기



 아시는 분은 다 아는 사실이겠지만 대관령과 동해바다가 만나 멋들어지게 만들어낸 음식 작품 하나가 바로 오삼불고기다. 횡계에서 워낙 유명해진 이 메뉴는 겨울철 스키어들이 황태구이와 함께 가장 많이 찾는 별미 메뉴 중 하나이다. 용평리조트가 있는 횡계쪽 식당들이야 워낙 유명한 곳이 많아서 이 자리를 빌려 굳이 소개하지 않아도 다 아는 곳이지만 자연설이 내리는 진부령 알프스스키장에도 명물 오삼불고기집이 하나 있다.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흘리 알프스스키장 안에 있는 꼽슬이네 하우스는 해병대 출신 김정회 씨가 운영하는 조그마한 산장식 식당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식당 안은 식사를 하는 곳이라기보다 이곳을 찾은 스키어들이 모여 꾸며 놓은 작은 동산 같다는 느낌이 먼저 들 정도로 친숙한 분위기가 압권이다.

 벽을 장식하고 있는 형형색색 각종 스키용품들과 주인장이 수십 년 동안 직접 담근 술들이 차례로 벽을 타고 줄 지어 있고, 구석에는 역시 주인장이 손수 만들었다는 멋진 벽난로 위에 손님들이 써놓은 갖가지 사연들이 추억을 타고 오르는 듯 술과 함께 익어가고 있었다.

 꼽슬이네 하우스의 주 메뉴는 오삼불고기와 족발. 오징어와 삼겹살을 얼큰한 고추장에 버무려 철판 위에서 살살 녹여내듯 만들어 놓은 꼽슬이네 오삼불고기는 그 맛이 횡계에서 먹는 맛보다 더 쫀득하면서도 매콤하기로 유명하다. 집에서 직접 담근 토속 고추장과 금방 동해안에서 잡아 온 싱싱한 오징어를 직접 사용하다 보니 그 쫀득함이 입안에서 솔솔 배어나오기 때문이다. 여기에다가 주인아저씨가 직접 담근 머루나 다래, 오가피주를 한 잔 얼큰하게 마실라치면 오후 내내 스키 타는 것은 포기하는 게 허다하단다.

 또 해병대 출신인 주인장 김씨가 넉넉한 인심으로 오고가는 모든 손님들을 친구처럼 맞아주어 혼자라도 부담 없이 들를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거진 ‘성진식당’

 낚시로 잡은 끝내주는 생태찌개



 동해에서 명태가 사라졌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아직도 생태찌개를 해 먹을 만큼은 난다. 동해안을 찾은 스키어들이 시간을 내어 생태찌개를 먹으러 일부러 찾아오는 지역은 대부분 속초나 강릉 부근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진정한 근해 낚시로만 건져 올린 명태로 끓인 생태찌개를 맛나게 먹을 수 있는 곳은 이제 별로 없다. 대부분 냉동이나 일본산 또는 러시아산 명태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진부령 알프스스키장을 내려와 대대리 검문소에서 북쪽 7번 국도를 타고 10여분을 올라가면 나오는 최북단 항구 거진에는 아직 이 별미를 맛볼 수 있는 집이 있다. 거진읍 10리, 거진우체국 앞에 있는 ‘성진식당’이 그곳이다.

 이 식당에서는 거진항 소속의 낚싯배들이 인근 해에서 직접 건져 올린 명태만을 사용한다. 대파와 시원한 무를 숭숭 썰어 넣고 싱싱한 명태를 넣어서 팔팔 끓이는 생태지리는 보기만 해도 숨이 꼴딱 넘어간다. 추운 겨울바람을 헤치고 이 북녘 먼 곳까지 찾아온 보람이 있어도 한참 있는 그런 맛이다. 주인아주머니 역시 인심이 너무나 좋아 밥 한 공기는 그냥 선뜻 내어준다.

 거진은 본래 동해에서 가장 명태가 많이 나기로 유명한 항구였다. 하지만 지금은 명태가 씨가 말라 동네 사람들도 많이 줄고 있다지만, 당시 명태 전성기 때는 가구 세대 전체가 생태찌개 전문가로 불릴 정도로 명태 요리가 전국 최고인 그런 마을이었다. 그런 마을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굳이 이 집에 와서 생태찌개를 시켜서 먹는 것만 보아도 어느 정도 시원한 맛인지는 대충 알 수가 있는 셈이다.

 성진식당의 생태찌개는 명태 내장 중 이자를 따로 빼내어 기름이 흐르지 않게 끓이는 것이 시원한 맛의 비결이다. 추운 지방인 이북식은 이 이자를 함께 넣어 기름이 둥둥 뜨게 만들어 먹는데, 고성 쪽은 아직도 시원한 맛을 유지하기 위해 곤이만 넣고 이자는 넣지 않는다. 반찬으로 나오는 아가미 젓갈을 함께 곁들여 먹으면 그 시원한 맛이 두 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