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트 슈만의 피아노. 사진 위키미디어
로베르트 슈만의 피아노. 사진 위키미디어

“어느 날 밤 천사가 내게 내려왔어요. 그러곤 노래를 불러주었죠. 그 노래는 천상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었어요. 하지만 또 끔찍하게 잔인하기도 했어요. 나를 천국에 데려다주기도, 지옥에 던져버리기도 했습니다.”

1854년 독일 낭만주의 음악의 대가 로베르트 슈만이 그의 마지막 작품 ‘영혼 변주곡’을 두고 언급한 내용이다. 혹자는 이보다 더 로맨틱한 작품 탄생 스토리는 따로 없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도 그럴 것이 천사가 내려와서 작곡가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작곡가는 그저 받아 적었을 뿐이라니 이 음악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지 이미 그의 언급으로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곡이 완성된 바로 다음 날인 2월의 매서운 겨울, 그것도 꼭두새벽에 슈만은 집을 뛰쳐나가 얼음보다도 더 차가운 라인강에 투신한다. 당시 그의 책상 위에는 완성된 이 ‘영혼 변주곡’의 자필 원고와 함께 곡을 그의 아내 클라라 슈만에게 헌정한다는 서명이 놓여 있었다.

1810년 독일 츠비카우에서 태어난 로베르트 슈만은 그의 작품을 빼놓고는 낭만주의 시대 사조를 논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업적을 세운 음악가다. 그중 ‘트로이메라이’는 영화 및 광고 등 각종 매체에 등장할 정도로 클래식 음악을 잘 모르는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시, 문학에도 탁월한 감각을 보인 그는 매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섬세한 감정선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그러한 감수성은 그의 음악에 특출나 보인다. 불과 몇 초 안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에도 그 감정의 널뛰기는 격렬하게 진행되고 사랑과 애증, 삶과 죽음 등을 어우르는 감정이 극단적으로 전개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그 자신도 그의 음악에는 쾌활하고 외향적인 자아와 내성적이고 조용한 자아가 서로 충돌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슈만은 그의 아내 클라라와의 세기적인 러브스토리로도 잘 알려져 있다. 피아노를 배우러 그의 스승 집에 찾아갔다가 딸 클라라를 보고 사랑에 빠져 구혼했다. 곧 스승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헤어짐의 위기가 찾아오지만, 그들은 당시의 정서(물론 현대의 정서에도 쉽게 생각하기 힘들다)에 파격적이라 할 수 있는 미래의 장인을 법원에 고소한 끝에 결혼에 이르게 된다.

그들의 사랑이 결혼으로 결실을 본 1840년 로베르트 슈만은 ‘여인의 사랑과 생애’라는 가곡을 작곡했는데 당시 사회가 여인에게 아내로서의 지고지순한 덕목을 기대했던 내용이 가사에 잘 담겨 있다. 로베르트 슈만이 그의 아내를 염두에 두고 썼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가곡은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아내가 그와의 사랑을 그리워한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요즘 이 곡을 연습 중인데 연주하다가 마지막 부분에 이르면 앞서 언급한 ‘영혼 변주곡’이 난데없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들은 알았을까? 이 가사의 내용처럼 그들의 삶이 전개된다는 것을.


로베르트 슈만과 그의 아내 클라라 슈만. 사진 위키미디어
로베르트 슈만과 그의 아내 클라라 슈만. 사진 위키미디어

고통 속 작곡한 ‘영혼 변주곡’

자신에게 두 개의 자아가 있다고 언급할 정도로 슈만의 극도로 예민하고도 감수성 풍만한 기질은 점차 정신병적인 증상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영혼 변주곡’을 작곡할 당시에는 일상생활을 지속하기 힘들 정도로 증상이 악화하는데, 특히 그를 괴롭혔던 것은 견딜 수 없이 크게 울리던 이명과 환청이었고 심할 때는 종종 환영도 보았다고 한다. 그는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소리를 지르고 돌발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다 증상이 잠시 완화돼 이성적인 삶이 가능할 때는 작곡을 이어 나갔다고 한다. 아마도 이 ‘영혼 변주곡’은 그 두 자아의 경계에서 나온 작품이 아닐까 싶다.

곡은 마치 크게 흐느끼고 난 다음에 찾아오는 위로가 느껴지는 듯한 멜로디로 시작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더 깊은 심연에 잠긴다. 특히 그가 라인강에 몸을 던지기 직전 작곡한 곡의 마지막 부분은 이성의 경계 혹은 삶의 경계에서 저편의 세계로 비상하는 듯한 환영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가 언급한 천상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끔찍하게 잔인하다는, 언어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표현이 무언지 음악으로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다.

투신한 라인강에서 기적적으로 한 사람에게 발견돼 구조된 이후 그는 자발적으로 정신병원에 격리되고 곧 삶을 마감한다. 당시 마지막 아이를 배고 있었던 아내 클라라는 그 와중에도 남편의 작품을 정리하고 연주하고 또 남겨진 아이들을 양육하며 병원에 있는 남편을 걱정했다고 한다.

법원에 고소하며 결혼에 이르렀을 정도로 사랑했던 남편이 삶의 마지막으로 치닫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느꼈을 그녀의 감정과 삶 또한 ‘영혼 변주곡’에서 슈만이 언급했던 내용처럼 황홀하게 아름다우면서도 끔찍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 안종도
독일 함부르크 국립음대 연주학 박사, 함부르크 국립음대 기악과 강사


Plus Point

함께 감상하면 좋은 음반

원곡│로베르트 슈만 ‘영혼 변주곡’
연주│안드라스 쉬프

로베르트 슈만의 언급처럼 천사가 불러주었다는 주제 멜로디와 5개의 변주곡으로 이뤄져 있는데, 특히 환영을 보는 듯한 마지막 변주곡은 이 곡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다. 필자도 지난해에 이 작품을 연주할 계기가 있었는데, 연주 후 몇 주간은 이 곡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을 정도로 아름답고 낭만주의적인 작품이다.


원곡│로베르트 슈만 ‘여인의 사랑과 생애’
연주│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
노래│(소프라노) 바버라 보니

총 8곡으로 이루어진 작품으로 한 소녀가 짝사랑에 빠져 그 상대와 결혼하고 출산하며 여인으로 성장하고 이후 남편과 사별하며 아픔을 겪고 지나간 사랑을 간직하며 산다는 이야기다. 현대 사회의 관점으로는 다소 진부하고 가부장적일 수 있으나 당시 보수적인 사회에서는 여인에게 요구되는 아내, 어머니로서의 덕목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아내 클라라 슈만 또한 이 가곡의 내용과 같이 한 남편의 아내이자 어머니로 헌신적인 삶을 살았다. 다만, 클라라는 당시 여성으로는 드물게 피아니스트, 작곡가로서도 성공적인 삶을 살았던 여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