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가야의 역사가 담긴 말이산 고분군은 경주의 고분군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사진 이우석
아라가야의 역사가 담긴 말이산 고분군은 경주의 고분군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사진 이우석

함안은 태곳적부터 사람이 모인 곳이다. 국내 지자체 중 일국의 수도였던 곳이 얼마나 되겠나. 함안은 그중 하나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안라국(安羅國), 즉 아라가야가 있던 곳이 함안이다.

약 1500년 전 소멸한 것으로 추정되는 아라가야가 지금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고대 한반도 남부 지역에 약 600년간 존속했던 가야의 고분군이 최근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신청 대상이 됐다. 내년 가을에 유네스코 자문기구(ICOMOS)의 현지 실사와 심사를 거쳐 2022년 제46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재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이번 등재 신청 대상인 가야 고분군 중에 함안 말이산 고분군(사적 제515호)이 있다.

‘가야(伽倻)’는 삼국시대 초중반까지 한반도 남부에 있었던 국가들의 총칭이다. 변한에서 흩어진 작은 국가들이 오랜 세월 명멸하며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가야 중에는 금관가야(금관국)가 초기에 주도권을 잡았고, 후기에는 대가야(반파국)가 주요 세력이었다고 그동안 알려졌다. 여기다 함안에 자리한 아라가야(안라국)가 독자적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연구 결과가 보태졌다. 가야는 그리스 도시 국가처럼 통일되지 않고 각 지역에서 번성했다. 최근 아라가야의 유적과 유물이 대량 출토되면서 고대 국가의 신비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함안은 예로부터 제방을 쌓아 국토를 유지한 땅이었다. 낙동강과 남강의 수운과 남해 해운을 기반으로, 주변국과 문물 교류를 할 수 있었던 지리적 이점이 있었다.

강성한 왕권에 힘입어 풍납토성에 비견할 만큼 거대한 토성을 쌓고 성읍을 유지했으며, 그 자리에 수많은 고분군과 출토 유물을 남겼다. 특히 말이산 고분군의 경우 4세기부터 6세기 중엽까지 장소를 이동하며 축조한 고분 100여 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눈에 익숙한 경주 대릉원을 떠올릴 만큼 거대한 고분들과 그 부장품으로 미루어 짐작건대 가야의 중심국으로서 강력한 왕권과 군사·외교력을 과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왕궁지에선 지표층을 걷어내고 고고학 발굴 조사가 한창이다. 토성을 축조하기 위한 비계 격인 영정주와 이를 가로로 잇는 횡장목이 또렷이 새겨진 공간, 흙을 다진 달구질 자국, 적을 막기 위해 일렬로 촘촘히 박아놓은 목책 흔적 등이 발견된 상태다.

아라가야 유적에 대한 확실한 단초는 바로 ‘함주지(咸州誌)’다. 선조 20년(1587년) 함안군수 정구(鄭逑)가 편찬한 지방지로, 현존하는 지방지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지리·역사·인구·경제·행정·풍습 등 함안에 대한 모든 것을 기록한 이 책에 ‘왕궁지’에 대한 기록이 있다. ‘가야국의 도읍터(伽倻國舊基), 옛 나라 터(古國墟)’로 적혀 있다. 6세기 중엽 멸망한 것으로 추정되니 1000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입으로 전해졌을 옛 나라를 기록한 셈이다. 이를 토대로 유적을 찾아냈고, 아라가야의 역사가 함안 땅에서 이뤄졌음을 이론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고분군 아래 함안박물관에 가면 아라가야의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다. 당시 첨단 세라믹 제조 기술이던 토기를 비롯해 비늘갑옷·투구·검 등 다양한 출토 유물이 있다. 철기 문화가 발달한 아라가야 철검은 다른 삼국의 고유 검 유형과 상이하다. 손잡이 부분이 꼭 ‘병따개’처럼 생겼는데 아라가야 철검의 특징이다.

특히 마갑총에서 출토한 말 갑옷은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완벽한 상태로 발견됐다. 당시 가야의 중장기병이 비늘갑옷으로 스스로 무장하고, 타는 말도 무장시킬 만큼 고도로 발달한 군사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토기 역시 불꽃무늬 굽구멍 토기(화염문 투창 토기)로 독특한 ‘함안 양식’을 남겼다. 가운데 크게 뚫린 ‘불꽃’ 문양은 강렬하면서도 간결한 것이 현대적인 디자인에 가깝다. 이는 주변국과 왜에도 전파되어 당시 해상 세력이었던 아라가야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함안 악양생태공원에 핑크뮬리가 활짝 폈다. 사진 이우석
함안 악양생태공원에 핑크뮬리가 활짝 폈다. 사진 이우석

유구한 역사와 현재의 공존

함안에서의 시간여행은 옛 나라 가야를 실컷 돌고 나서 고려로 가면 된다. 고려, 산인면 모곡리에 ‘고려동’이 있다. 조선왕조가 들어섰지만 성균관 진사 이오 선비는 이를 부정하기로 마음먹었다. 함안에 거처를 잡고 담장을 둘렀다. “밖은 조선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이곳은 분명한 고려”라 선언하고 자급자족하며 살았다. 아들에게도 조선에선 벼슬을 하지 말라고 일렀다. 유언을 받들어 이오의 후손이 무려 19대 6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곳에 남아 살고 있다. 마을에는 고려동학비·고려동담장·고려종택 등 유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번엔 조선이다. 함안에 남은 조선의 기억은 바로 생육신의 의리와 절개다. 왕위를 찬탈하고 조카를 죽인 세조에게 반기를 들고 낙향한 어계 조려와 나머지 생육신을 기리기 위해 곽억령 등이 서산서원을 지었다. 군북면 원북리 서산서원과 채미정·원동재 등이 유적으로 남아 있다.

역사 여행을 다녀오니 현실이다. 함안에선 무엇을 즐길 수 있을까. 우선 가을의 분홍을 뽐내고 있는 악양생태공원에서 핑크뮬리를 볼 수 있다. 남강변 생태늪지와 함께 조성된 악양생태공원에선 선명한 분홍색을 발하는 핑크뮬리밭을 거닐어 볼 수 있다. 이곳은 원래 붉은 석양으로 유명한 악양루 아래에 있어 어쩌면 하늘 전체에 퍼진 분홍색을 감상할 수도 있다. 데크 산책로도 잘 조성해놓아 걷기에 그리 무리가 없다.

곧 만산홍엽 단풍으로 물들 입곡군립공원 출렁다리도 좋다. 이마저도 귀찮다면 조작이 쉬운 유유자적 뱃놀이를 즐기며 저수지의 아름다운 풍광을 눈에 담을 수 있는 무빙보트(물에 띄워 움직이는 레저 시설) ‘아라힐링카페’를 챙겨볼 만하다. 빙글빙글 돌며 입곡저수지 단풍의 곱디고운 붉은 색에 잠시나마 젖어볼 수 있다.


▒ 이우석
놀고먹기 연구소 소장, 성균관대 미술교육학과, 전 여행기자협회 회장


여행수첩

먹거리 아라가야광장 주변에는 국수를 잘 말아내는 옛골식당이 있다. 구수한 멸치 육수에 갖은 고명과 양념장을 얹은 ‘옛날국시’로 푸짐하고도 맛있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 곁들여내는 김치도 정갈하고 맛깔난다.

금룡중화요리는 우동을 잘한다. 세월의 흔적이 서린 오래된 간판에 직접 손으로 쓴 메뉴판 등 옛날 감성이 입맛을 자극한다. 주문과 함께 재료를 손질해 즉석에서 조리해 상에 낸다. 시원하고 고소한 국물과 쫄깃한 면발, 아삭한 채소 등 뭐 하나 나무랄 것 없는 맛이다. 건더기로 오징어와 달걀, 채소로는 표고·호박·양파·부추가 들었다.

대영식육식당은 된장 국물을 베이스로 한 한우 샤부샤부가 맛있다. 보글보글 끓는 된장 국물에 호박잎 등 채소를 데쳐 먹다가 얇게 저민 한우를 넣었다 날름 집어 먹는다. 고기도 신선하지만 무엇보다 국물이 좋으니 재료에 죄다 고소한 맛이 배어든다. 고기와 채소, 국물 맛이 서로 녹아들며 국물이 점차 진해진다. 이른바 쇠고기 된장국이다. 졸아든 국물에 밥을 넣거나 우동 사리를 넣어 먹으면 더욱 맛난다.

가야시장 덕이식당은 집에서 담근 농주(막걸리)가 맛 좋기로 소문났다. 명태를 통째로 지져낸 명태전과 부추에 농익은 김치를 넣고 부친 김치전이 일품이다.

이우석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