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미학 상차림’에서 식사 중인 김청미씨.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서울 종로구 ‘미학 상차림’에서 식사 중인 김청미씨.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미학 상차림
메뉴 젓갈 상차림
주소 서울 종로구 사직로8길 34
영업 시간 매일 11:30~15:00 마지막 주문 14시, 17:30~21:00 마지막 주문 20시, 일요일 휴무


‘미학 상차림’의 젓갈 상차림.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미학 상차림’의 젓갈 상차림.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봄은 달음을 하고 여름은 임박했다. 하늘 아래 일상이 축약됐기 때문일까. 올해 5월의 하늘은 유난히 청신한 빛으로 이 계절을 치장한다. 시종 화사한 햇볕을 쏟아내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낯선 만남을 앞둔 마음의 진동을 경희궁의 고전적 향취에 기대어 나긋이 걸어본다.

작지만 그 뉘앙스가 동네의 운치에 맞게 담박하고 정갈한 식당 ‘미학 상차림’. 쌀을 각별하게 다루어 아름답게 내려는 노력을 담았다. 이곳에서 밥을 사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 하얀 도자기에 담뿍 담긴 밥 한 그릇처럼, 아무도 밟지 않은 첫눈을 두 손에 담아 옮긴 것 같은 소중한 마음을 고봉으로 내주고 싶은 사람이다. 식당 안은 희고 깨끗한 벽에 새어드는 볕과 그늘이 함께 머문다. 그 사이를 감싸는 구수하고 달큼한 밥 냄새가 허기를 가만히 돋우며 다가오는 첫 만남을 말없이 보챈다.

하얀 블라우스와 청바지 차림의 생기 가득한 아가씨가 볕을 흠뻑 묻히고 식당으로 들어온다. 야무지고 당당한 음성으로 내게 먼저 인사를 건넨다.

그녀의 이름은 김청미. 서울 중랑구 사가정에서 마카롱 가게 ‘위드마카롱’을 운영하고 있으며 대구·경북 지역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쏟아져 나오던 2월 말 10년간 간호조무사로 일한 경력을 살려 가게 문을 닫고 안동과 포항의료원으로 의료봉사를 다녀왔다. 그녀의 이야기는 인스타그램을 시작으로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세간에 알려졌다. 인터넷 커뮤니티가 이번 만남의 오작교가 된 셈이다.

“3월 2일, 대구에서 코로나19 의료진이 부족하다는 소식에 마음이 동했어요. 당장 보건복지부로 전화해 지원했어요. 합격해서 간다는 보장도 없었는데 전화를 끊자마자 짐을 싸 두고 지원 호출전화를 기다렸어요. 며칠 뒤 합격 전화를 받고 만들어 둔 마카롱은 반값으로 팔아 달라며 가게는 친구에게 맡겨 두고 인스타그램에 휴업 사정을 올렸죠. 가게 옆 미용실 사장님께 공과금 지로용지를 잘 보관해달라 여차여차 말씀드리니 제 손을 꼭 잡고 우셨어요. 괜찮다며 사장님을 달래고 안동으로 향하는 첫차에 몸을 실었는데, 느닷없이 눈물이 흐르더라고요. 알 수 없는 감정이었죠.”

상 위로 갓 지은 솥 밥과 미역국, 갖가지 젓갈을 비롯한 찬들이 차려진다. 밥맛이 좋다 꼽히는 고시히카리 품종으로 밥을 지어봤지만 윤기가 과해 차림에서 저만 유달리 튀는 것 같아, 여러 가지 쌀 품종을 구해 그마다 육수 비율을 맞추고 곁들여지는 반찬과 짝을 맞추는 등 각고의 연구를 거친 어울림의 상차림이다. 경기도에서 재배한 참 드림 품종의 쌀을 매일 아침 직접 도정해 사골육수를 부어 지은 밥이 이 집의 백미다. 솥뚜껑을 열어 주걱으로 밥을 설설 섞어 백자 그릇에 담아 그녀에게 내밀며 귀를 기울인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의료봉사를 다녀온 김청미씨. 사진 김청미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의료봉사를 다녀온 김청미씨. 사진 김청미
김청미씨가 운영하는 가게 ‘위드마카롱’의 마카롱. 사진 김청미
김청미씨가 운영하는 가게 ‘위드마카롱’의 마카롱. 사진 김청미

대가 바라지 않은 선행이 복으로 돌아와

조리복을 벗어 던진 그녀는 방호복을 입고 안동의료원에서 봉사를 시작했다. 현장은 모든 것이 부족했다. 제각기 다른 병원 이름이 적힌 환자복을 비롯한 물품들은 외부로 유출되는 것이 금지되었기에 최대한 깨끗하게 아껴 써야 했다. 대부분 와상 노인 환자들이었다. 대소변을 받아내고 두 시간 단위로 체위를 바꿔주며 그들의 손발이 돼 주었다.

하루 두 번씩 네 명의 의료진이 환자 스무 명의 식사를 담당했는데, 치매에 걸린 환자들이 밥상을 뒤엎어 구호 물품들을 고스란히 폐기하거나 먹던 물을 의료진 머리에 부어 자가 격리했던 일을 떠올렸다. 코로나19는 환자가 사망하는 순간 감염력이 강해지기 때문에 시신을 여러 차례 랩핑(wrapping)하고 가족들이 임종도 지키지 못한 채 화장터로 향하는 상황이 안타까웠다며, 전쟁터 같던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따뜻한 밥 오랜만에 먹어 보네요. 고향 생각이 나요.”

그녀는 맵디매운 청양고추의 산지 충남 청양에서 5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빠듯했던 집안 사정에 일찌감치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해 제과를 전공했지만, 파티시에가 꿈은 아니었다. 보건의료 정보관리사(의무기록사) 자격증을 따면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다는 선생님 말씀에 혹해 간호전문대에 입학했다. 2년간 웨딩 도우미를 비롯한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악착같이 벌었다. 보건의료 정보관리사는 물론 간호조무사부터 미용사 자격증까지 돈이 된다는 자격증들은 적금 붓듯 취득해 뒀다.

“늘 먹고살 궁리를 하며 살았어요. 그러다 미용 학원에서 나이가 지긋하신 아주머니 한 분에게 왜 자격증을 따려고 하시냐 여쭸더니, 생계가 아닌 노인봉사를 위해 공부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저 하나 먹고살 생각만 했는데, 내 일이 누군가에게 대가 없는 선행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그래서 언젠가 내가 가진 것으로 봉사해야겠다는 마음을 쟁여 둔 것 같아요.”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고 큰 병원에 입사하면 기숙사가 나온다는 말에 혹해 연고도 없이 상경했다. 계획 따위 없었지만 자신만만했기에 정형외과에 간호조무사로 무사히 취직해 서울살이에 안착할 수 있었다. 이윽고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반복되는 일상에 지루함을 느낀 그녀는, 모아둔 목돈으로 작은 마카롱 가게를 열리라 마음먹었다. 그대로 간호조무사 생활을 접고 밤낮으로 마카롱 레시피를 개발하고 운 좋게 가게를 인수해 창업했다.

2년이 지나 2020년 3월 2일부터 29일까지 안동중앙의료원에서 근무한 뒤 포항의료원으로 옮겨 4월 13일까지 의료봉사와 2주간의 격리 기간을 마치고 영업을 재개했다. 그 사이 전국 맘카페와 이종격투기 카페 등을 통해 그녀의 이야기가 회자해, 부산과 제주 등 지방에서 일부러 찾아와 마카롱을 사가거나 전국에서 택배 주문이 들어와 하루에 300개 이상의 마카롱을 만들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녀는 솥 안에 불려 놓은 누룽지를 후후 불어 마시며 오랜만에 숭늉을 마셔 본다고 말하며 그녀의 엄마를 떠올린다. 그녀가 의료봉사를 떠난다고 통보하던 날, 그녀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공동생활이니 절대 남에게 폐 끼치지 말고 건강하게 네 할 일 다 하고 오너라.” 나는 느닷없이 눈물이 울컥 솟아 흘렀다.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5월의 하늘은 유난히 맑다.


▒ 김하늘
푸드테크 스타트업 라이스앤컴퍼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