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타이거 우즈(왼쪽)와 필 미켈슨이 ‘캐피털 원스 더 매치’에서 우승 상금을 가운데 두고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 AP연합
2018년 11월 타이거 우즈(왼쪽)와 필 미켈슨이 ‘캐피털 원스 더 매치’에서 우승 상금을 가운데 두고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 AP연합

“타이거 우즈는 친구들이 필 미켈슨을 ‘포니(phony·사기꾼)’라고 부를 때마다 늘 미소를 지었다. 우즈는 미켈슨이 말을 잘하고 에너지가 많고 지나치게 아는 척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고 느끼는 것 같았다. 우즈는 특히 미켈슨과 대결할 때 인종적인 감정을 가졌다. 미켈슨에게 우호적인 기사가 나오는 것은 백인기자들의 인종적인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2004년부터 2010년 5월까지 스윙코치로 우즈와 함께했던 행크 헤이니가 2012년 발간한 책 ‘빅 미스(The Big Miss)’에 나오는 내용이다. 우즈와 미켈슨은 공식적으로는 상대를 추켜세웠지만, 사석에서는 말을 섞지 않는 냉랭하기 그지없는 라이벌이었다.

불편한 둘 사이가 만천하에 공개된 것은 2004년 미국과 유럽의 대항전인 라이더컵이었다.

당시 미국 단장 할 서튼은 최고의 두 선수를 한 조로 묶어 첫날 첫 경기 포볼 매치에 내세워 유럽 팀에 기선제압을 하려 했다. 하지만 둘은 팀 워크가 중요한 대항전에서 경기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경기에도 졌다. 둘째 날 포섬 경기에도 둘은 한 조로 나가 졌다.

올해 4월 14일 마스터스 대회 조직위원회는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지난해 타이거 우즈가 우승한 직후 챔피언스 라커룸의 모습을 담은 사진 4장을 공개했다. 사진에는 2019년 마스터스 챔피언인 우즈가 우승자에게 수여되는 ‘그린 재킷’의 치수를 재는 모습과 함께 필 미켈슨이 손으로 직접 쓴 축하 편지가 담겨 있다. 미켈슨은 클럽하우스 냅킨에 ‘타이거, 당신의 올해 대회는 정말 대단했고 감동이었다. 당신이 우승해서 매우 행복하다! 필’이라고 적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45∙미국)와 ‘쇼트 게임의 마법사’ 필 미켈슨(50∙미국)은 지난 30년간 골프 팬의 마음을 사로잡은 슈퍼스타였다. 우즈는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통산 최다승 타이기록인 82승(메이저 5승)을 거두며 통산 상금 1위(1억2066만달러)에 올랐고, 미켈슨은 역대 9위 승수인 44승(메이저 5승)을 거두며 통산 상금 2위(9129만달러)를 달리고 있다. 이들은 여전히 PGA 투어 스타이기도 하다. ‘우즈와 미켈슨’은 ‘톰과 제리’처럼 으르렁거리던 사이에서 불혹의 나이를 지나며 서로에게 힘이 되는 사이가 됐다. ‘너 죽고 나 살기’식 제로섬 게임에서 서로 ‘윈윈(win-win)’하는 포지티브섬 게임(positive-sum game)으로 관계를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게임의 본질을 꿰뚫은 진정한 승부사다.

우즈와 미켈슨은 5월 24일 미국 플로리다주 하비 사운드의 메달리스트 골프클럽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성금 1000만달러(약 122억원)를 걸고 ‘더 매치: 챔피언스 포 채리티’ 대회를 연다. 메달리스트 골프클럽은 우즈의 오랜 홈 코스다. 플로리다주 주피터에 사는 우즈는 이 골프장을 연습코스로 이용하고 있다. 미켈슨 역시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살다가 올해 초 주피터로 이사해 메달리스트 골프장 회원으로 라운드하고 있다.

우즈와 미켈슨은 미국프로풋볼(NFL) 스타인 페이턴 매닝, 톰 브래디(이상 미국)와 함께 2 대 2 형식으로 대결을 펼친다. 우즈와 매닝이 짝을 이루고, 미켈슨과 브래디가 호흡을 맞춘다. 이 대회는 2018년 11월 우즈와 미켈슨이 총상금 900만달러를 승자가 모두 차지하는 맞대결을 벌였던 ‘캐피털 원스 더 매치’의 2탄 성격을 띤다. 당시 연장 끝에 미켈슨이 승리했다.


타이거 우즈가 지난해 마스터스 우승 후 라커룸에서 그린 재킷 사이즈를 재고 있다. 사진 마스터스 공식 트위터
타이거 우즈가 지난해 마스터스 우승 후 라커룸에서 그린 재킷 사이즈를 재고 있다. 사진 마스터스 공식 트위터
냅킨에 우즈의 마스터스 우승에 대한 축하 메시지를 남긴 필 미켈슨의 손 편지. 사진 마스터스 공식 트위터
냅킨에 우즈의 마스터스 우승에 대한 축하 메시지를 남긴 필 미켈슨의 손 편지. 사진 마스터스 공식 트위터
타이거 우즈(왼쪽)와 필 미켈슨이 5월 24일 미국 메달리스트 클럽에서 리턴 매치를 갖는다. 사진 PGA투어
타이거 우즈(왼쪽)와 필 미켈슨이 5월 24일 미국 메달리스트 클럽에서 리턴 매치를 갖는다. 사진 PGA투어

손 잡은 두 스타…시너지 효과 뛰어나

둘 사이가 가까워진 것은 베를린 장벽 붕괴에 비유될 정도로 급작스러웠다. 2018년 4월 마스터스를 앞두고 우즈와 미켈슨은 연습라운드를 함께했다. 팀 대회를 제외하고 두 선수가 연습라운드를 함께한 건 1998년 LA오픈 이후 20년 만에 처음이었다. 당시 우즈와 미켈슨은 한 팀이 돼 프레드 커플스, 토머스 피터스와 2 대 2로 내기를 해 이겼다.

둘은 라이벌의 숙명을 타고났다고 할 수밖에 없다. 미켈슨이 1992년 PGA투어에 데뷔해 스타로 발돋움한 지 불과 4년 만인 1996년 우즈가 등장해 천하를 평정했다. 우즈는 명예와 부를 한 손에 쥔 골프의 아이콘이었지만 어려서부터 겪어온 인종 차별의 콤플렉스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듯하다. 미켈슨은 우즈에게 밀려났지만, 골프 주류인 백인 사회가 원하는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는 슈퍼맨 같은 존재였다. 우즈와 미켈슨은 흑백의 피부색,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라는 차이부터 시작해 거의 모든 점에서 대척점에 있었다.

우즈는 자신의 요트 이름을 ‘프라이버시’라고 지을 정도로 사생활 보호를 중시했다. 팁에도 인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미켈슨은 팬들에게 사인을 잘해주고 레스토랑과 라커룸에서 팁으로 100달러짜리를 뿌렸다. 우즈가 섹스 스캔들로 끝없이 추락하던 시절에는 암에 걸린 아내를 지극 정성으로 보호하고 세 아이를 돌보는 미켈슨의 모습이 미디어에서 끊임없이 대조됐다.

2018년 둘은 반전이 필요했다. 우즈는 섹스 스캔들과 약물 중독, 허리 부상으로 이어진 10년간의 부진을 딛고 재기에 나선 참이었다. 미켈슨은 지난 몇 년간 성적 난조에 내부 정보에 따른 주식 거래로 FBI 수사를 받은 데다 라이더 컵 단장이었던 톰 왓슨의 리더십에 의문을 제기하는 발언을 하는 등  쌓아온 긍정적인 이미지가 흔들리고 있었다. 둘의 화해가 전략적인 선택이었는지 나이가 들며 쌓인 정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둘이 손을 잡자 시너지 효과는 기대를 뛰어넘는다. 1000만달러짜리 매치플레이가 뚝딱 만들어지고 자선경기에 나서는 둘의 훈훈한 모습에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에도 애정이 실려있다. ‘우즈와 미켈슨’이 펼치는 상생의 게임은 둘을 자연스럽게 골프계의 어른들로 이끌어주는 다리가 될 것 같다.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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