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식당 무법자라는 오해를 벗고, 3년 만에 골목식당 수호자로 거듭난 백종원. 사진 더본코리아
골목식당 무법자라는 오해를 벗고, 3년 만에 골목식당 수호자로 거듭난 백종원. 사진 더본코리아

주말 오후가 되면 나는 리모컨을 들고 백종원이 출연하는 ‘골목식당’과 ‘맛남의 광장’을 몰아 보며 일주일간의 피로를 씻는다. 때론 입맛을 다시고 때론 혀를 차고, 때론 눈물을 흘리거나 감동에 젖어.

‘골목식당’은 무너져가는 전국의 골목 상권을 살리기 위한 맞춤 솔루션 프로그램, ‘맛남의 광장’은 외면받는 지역 특산물로 가정 레시피를 만들어주는 농촌 상생 프로젝트다. 백종원은 눈치 빠른 김성주와 성실한 정인선(‘골목식당’), 재기 넘치는 김희철, 김동준, 양세형(‘맛남의 광장’) 등의 조력자들과 함께 이 리얼한 ‘음식 드라마’를 이끌어간다.

손님이 끊겨 막막하던 식당과 판로가 막혀 한숨 쉬던 지방의 농민들은 백종원을 만나 경이로운 반전을 이뤄낸다. 그의 비법은 단순하고 정확했다. 역지사지. 손님의 입장에 서는 것. 제각각의 사연으로 바닥을 친 자영업자들이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변화하는 모습은 감동을 준다. ‘먹어야 사는 남자’ 백종원을 만났다.


큰 그림이 뭔가.
“앞으로 우리나라 성장 동력은 관광업이다. 사람이 몰리는 관광지를 보면 반드시 볼거리와 함께 먹거리가 있다. 그런데 홍콩, 도쿄, 상하이…. 유독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곳은 또 확연히 다른 점이 보인다.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가 참 반듯하다. 나는 그 출발이 외식문화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식당 하는 사람도 손님 중심으로 태도를 개선해야 하지만, 오는 손님도 바뀌어야 한다. ‘내가 식당 주인이라면, 내 부모나 친구가 식당을 한다면….’ 이런 가정만으로 아량이 생긴다. 그렇게 외식 환경이 성장하면 국민도 바깥손님인 외국인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다.”

관광 한국을 하나의 식당으로 비유하면 가게 주인은 주방을 책임지고 국민은 홀서빙을 담당하는 격이라고 했다. “그런데 손님 역할을 많이 해본 사람이 매너도 좋다(웃음).” ‘골목식당’이니 ‘맛남의 광장’이니 방송으로 자영업자와 농민을 돕는 건, 결국 외식업과 관광업의 파이를 키워 ‘나 살자’고 하는 일이라며, 그가 사람 좋게 웃었다.

멀리 보는 이유가‘나 좋자’고 하는 일이다?
“그렇다. 내가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니까 빈정대는 분도 있다. 방송 나오지 말고 ‘너나 잘하세요!’ 그런데 가맹점이 1000개가 넘어가면 개별 점주들을 일일이 가르치기 힘들다. 방송에서 포괄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효과가 좋다(웃음). ‘가격 낮추라’는 말도 그렇다. 당장 내가 하는 저가 시장에선 경쟁자를 키우는 거지만, 강한 경쟁자가 들어오면 점주들도 강해진다. 왜 어항에 포식성 강한 어종을 넣으면 다른 물고기도 움직여서 전체 체력이 좋아지지 않나.”

최근 포방터시장에서 제주도로 이사한 돈가스집은 여러모로 화제가 됐다.
“방송을 오래 했지만, ‘연돈’ 돈가스집 부부는 정말 특별했다. 대개는 준비가 안 된 상태로 식당을 해서 문제가 발생하는데, 그 부부는 보석 같은 분들이다. 때 묻지 않고 열심히 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맛남의 광장’에서는 버려지는 ‘못난이 감자’에 정용진 부회장이라는 키다리 아저씨를 즉석에서 매칭해주는 걸 보고 놀랐다. 하이퍼커넥트 사회가 되면서 ‘우연성과 진정성’ 이 이 시대의 큰 화두인데, 그 두 가지가 백종원의 레시피로 뚝딱 조리되는 느낌이었다.
“내가 성격이 급하다(웃음). 못난이 감자가 상품성이 없어서 버린다는 말을 들으니 맘이 안 좋았다. 순간 그분이 떠올랐다. 어쩌면 ‘윈윈’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소비자는 싸게 살 수 있고, 마트는 사람을 모을 수 있지 않나.”


양세형, 김희철, 김동준과 함께 ‘맛남의 광장’ 휴게소에 1일 식당을 차려 지방 특산물의 판로를 여는 백종원. 사진 SBS
양세형, 김희철, 김동준과 함께 ‘맛남의 광장’ 휴게소에 1일 식당을 차려 지방 특산물의 판로를 여는 백종원. 사진 SBS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욕심 없는 척’을 하다 보니 점점 ‘척’대로 되어갔다는 백종원. 사진 SBS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욕심 없는 척’을 하다 보니 점점 ‘척’대로 되어갔다는 백종원. 사진 SBS

궁금한 건 바로 전화하는 급한 성격, 남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못하는 태생적 ‘오지랖’ 덕분에 많은 문제가 술술 풀렸다. 제주도 감귤 와인 농장을 돕기 위해서도 팔을 걷어붙였다. 인터뷰 중에도 전화로 몇몇 연예인들에게 홍보와 참여를 권했다. 깃발 든 자가 사심이 없으니 너도나도 같이하겠다고 손을 들었다.

항간에 골목식당은 흥하는데, 정작 골목마다 있던 새마을식당은 안 보인다는 우려의 소리도 들린다.
“사업은 순항 중이다. 불경기에도 매출이 2100억원 정도였다. 어떤 분은 ‘연돈’ 돈가스로 ‘백종원 호텔 홍보하는 거 아니냐?’ 하는데, 아니다. 호텔은 그전에도 이미 3개월 예약이 꽉 차 있었다. 새마을식당은 적정 개수를 유지하고 있다. 브랜드도 유행이라는 게 있다. 한동안 인기 있다가 성장 동력이 떨어지기도 한다. 개수로는 현재 ‘빽다방’이 가장 많지만, 요즘엔 ‘인생설렁탕’ ‘롤링파스타’, 중식 포차인 ‘리춘시장’도 잘된다. 나는 브랜드 만드는 일을 좋아한다. 프랜차이즈 회사가 새로운 브랜드를 만드는 건 시장의 순기능이다. 자체 공장을 세워 이익을 취하는 문어발식 확장이 아니라, 브랜드를 론칭해서 협력사 역할을 하는 거니까.”

3년 6개월 전 인터뷰할 때는 프랜차이즈로‘골목 상권을 해친다’는 공격을 받고 풀이 죽어 있었는데, 지금은 ‘골목을 살리고 농촌을 살린다’고 박수를 받는다. 회심의 반전인가.
“평소에 하고 싶었던 일을 했을 뿐이다. ‘맛남의 광장’도 내가 기획을 했다. 평소에 덜 알려진 지역특산물이나 과잉생산돼서 버려지는 농산물을 보면서 안타까웠다. 여수 갓이, 공주 밤이, 제주 당근이 얼마나 좋은데 소비가 안 되나. 이걸 집에서 해먹을 수 있도록 레시피를 알려주면 된다. 그 과정에 휴게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전국의 휴게소 음식이 다 비슷하니, 지역 특산물로 1일 식당을 차리면 서로 흥하겠다 싶었다.”

그렇게 요리의 멘토에서 사업의 멘토, 삶의 멘토로 가면서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더라. ‘욕심을 줄여라.’
“살아보니 욕심 안 부리고 사는 게 제일 편하더라. 그 맛을 젊을 때 논현동에서 쌈밥집 하며 처음 알았다. 처음엔 욕심을 내서 쌈과 고기 포함 9000원에 팔았다. 비싸게 파니 손님 비위, 직원 비위 맞추는 게 너무 힘들더라. 안 되겠다, 손님이 내 눈치 보게 해야지. 값을 내렸다. 그랬더니 ‘이렇게 팔아도 남느냐’며 칭찬이 쏟아졌다. 나 편하자고 한 일인데, 손님들 앞에서 욕심 없는 척을 한 거다. 신기한 게 그 ‘척’이 내 몸에 잘 맞았다.”

원래 욕심이 없는 게 아니라, 욕심 없는 척을 했다?
“원래부터 착한 놈이 어딨나(웃음)? 내가 사실 입도 거칠다. 그런데 방송하려니 도리가 없더라. 겸손한 척, 착한 척, 순화해야지. 방송에서 하던 대로 밖에서도 말하니, 처음엔 직원들이 ‘어디 아픈가?’ 했다더라(웃음). 참 이상한 게, 사람들이 내 ‘척’을 진심으로 받아주니까, 자꾸 ‘이런 척’ ‘저런 척’ 더 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출연료, 광고료 여기저기 기부도 하면서 마음 부자가 돼갔다. 원래 그런 놈이 아닌데, 점점 ‘척’대로 되어갔다.”

좁은 주방에서 함께 일하다 갈등이 생긴 가족이 서로를 이해하고, 게으르고 무책임했던 사장들이 개과천선하기도 한다. 짧은 시간에 ‘척척’ 변화하는 모습이 신기하다. 비결이 있나.
“카메라가 있잖나. 내가 설득도 하지만 이후에 또 관리가 들어가니까. 그분들은 관계도, 장사도 벼락치기 공부한 셈이다. 작가들이 방송 끝나고도 계속 체크를 한다. ‘겨울특집’ ‘여름특집’으로 불시에 긴급 점검을 하니, 이게 웬 난리인가(웃음)? 일종의 경고다.”

‘음식값을 싸게 받으라’고 가르치는 근본적인 이유가 뭔가.
“80% 이상의 골목식당이 경험 부족이다. 연륜이 다 다른데 1년 한 국숫집이 10년 한 국숫집과 똑같이 7000원을 받는다. 이상한 거다. 좀 부족해도 가격 메리트가 있으면 손님이 오고 경험이 쌓인다. 3년 걸려 쌓을 기술을 반년 만에 쌓을 수 있다. 수련하고 버티려면 메뉴를 줄여야 한다. 기회를 얻기 위한 솔루션 중 하나다.”

솔루션을 잘 흡수해서 개과천선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어떤 차이가 있나.
“조언을 쑥쑥 잘 받아서 더 해주고 싶은 분들이 있다. 선선한 평택 떡볶이 할머니에겐 쌀 튀김까지 전수해 줬다. 그분 운이다(웃음). 반면 너무 깐깐하고 자기주장이 강하고 눈치 없는 분은 못 받는다. 매정한 말이지만 장사가 안되는 집은 다 이유가 있다. 그래도 방송의 힘은 크다. 불특정 다수가 그 집을 찾아온다는 건 대단한 기회다. 앞으로 그 기회를 잡을지 못 잡을지는 태도와 본질의 문제다.”

대학 때 쓰러져가는 호프집을 인수한 일화는 물론이고 일찍부터 시장의 이치에 밝았던 거로 안다. 장사 수완도 타고 나나.
“돈이 모이는 과정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공병을 수집해서 팔았다. 낚시를 해도 남들은 세월을 낚는다지만, 나는 물고기 잡는 어부처럼 낚았다. 좋은 미끼에 투자하고 그물도 치고 밤을 새워서 잡는다. 뭔가 투자해서 결과를 보는 게 적성에 잘 맞았다.”

사회복지학을 공부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손사래를 치며) 아니다. 집안에서 사학재단을 운영하니까 떠밀려 간 거다. 그런데 그때 교수님께 건방지게 따진 적이 있다. ‘진정한 사회복지는 돈 달라고 해서 돕는 게 아니라, 돈 벌어서 돕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그 말이 지금 씨가 됐다(웃음).”

아내 소유진씨와도 생각이 잘 맞나.
“아내가 통이 크다. 남자 같아서, 내가 큰 결정을 하기가 수월하다. 40대 중반에 결혼해서 늦게 세 아이를 낳으면서 욕심이 현저하게 없어졌다. 큰아이가 일곱 살이다. 나 죽기 전에 사업 물려줄 일은 없겠구나 싶으니, 돈에 미련이 없고 공정해진다. 제일 좋은 건 회사가 오래 유지되는 거다. 욕심부릴 이유가 없으니, 착한 척하기가 더 쉬워졌다.”

방송가에서의 포지셔닝처럼 프랜차이즈 사업가로서의 백종원도 진화하고 있나.
“기본적으론 외식 사업 시작하는 분들에게 식자재, 경영 노하우를 가르쳐주고 잘 준비되면 독립시키는 게 우리 일이다. 식자재 시장은 대량매입이 아니라 장기계약을 해야 이익이 남는 구조라, 가맹점 숫자보다는 점포를 오래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모든 게 ‘장기전’이다. 오래 같이하려면 점주들이 딴짓하면 안 된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는 ‘골목식당’ 방송으로 점주들에게 사인을 주는 거다. 돈 벌어서 골프 치러 다니지 말고, 손님을 위해 가게에 재투자하라고.”

어떤 가치를 위해 일했나.
“칭찬에 맛 들여 욕심을 줄이니 사는 게 편해졌다. 내 삶이 좋아지려면 주변 여건도 좋아져야 한다. 슈퍼카 타고 싶으면 길을 뚫어야 한다. 비행기 띄우려면 활주로를 내야 하고. 비포장도로에서 나 혼자 달리면 무슨 맛인가? 굳이 따지자면 그 세상 이치가 내 가치 기준이 됐다.”

마지막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태도를 권장하나.
“척이다. 착한 척, 겸손한 척, 멋있는 척. 처음엔 허언이고 허세라도 일단 내뱉고 나면 보는 눈들이 무서워 행동이 따라간다. 어찌나 효과가 좋은지 내 인생 모토가 ‘척 척 척’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