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하손만두
주소 서울 종로구 부암동 245-2
영업 시간 오전 11시~ 오후 9시 30분 (명절 전날과 당일 휴무)
대표 메뉴 만둣국, 만두전골

계열사
주소 서울 종로구 부암동 258-3
영업 시간 낮 12시~ 오후 11시 30분 (매주 월요일 휴무)
대표 메뉴 프라이드치킨, 골뱅이소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사람을 가졌다. 낮잠에서 깨어나 문득 울음을 터뜨리는 소녀의 얼굴로 빈자리를 서성인다. 하필 첫눈이 내린다. 눈썹 끝에 맺혔다 떨어지는 눈물처럼. 바닥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한숨처럼. 설렘은 땅을 구르는 그림자 위에 앉았다가 멀어지고 죽어간다. 침묵과 침묵 사이에서, 어스름과 어스름 사이에서, 시간의 저편으로 사라져간다. 바람은 붙잡히지 않고 울음은 파도처럼 왔다 간다. 나 그저 곁에 머물러 모래알처럼 지저귀고 싶었을 뿐인데. 아마 영원을 본 건 꿈이었나 보다.

우연히 선물 받은 편지지 한 묶음. 미색의 편지지 위에는 젖은 녹색의 잎사귀와 붉은 앵두 한 다발이 그려져 있다. 종이 한쪽은 솜털이 난 듯 까슬까슬하고 한쪽은 연하고 제법 보드랍다. 종이를 손끝으로 훔치니 20년 전 기억의 문양이 지문에 걸린다. 그녀는 이따금 얇은 붓 펜을 잡고 조용히 글씨를 써 내려가곤 했다.

그것은 빗나가고 빛난 계절 노래였고, 시린 귓불을 감싸는 사랑 노래였으리라. 아득한 글씨를 주워 가방에 담는다. 하얀 입김을 피우며 이윽고 경복궁, 서촌을 지나 부암동에 왔다.


서울 부암동 ‘자하손만두’의 정갈한 만둣국. 사진 김하늘
서울 부암동 ‘자하손만두’의 정갈한 만둣국. 사진 김하늘

할머니 생각나는 ‘자하손만두’

인왕산 자락에 자리한 넓은 창이 달린 양옥 주택. 단정하게 가지를 둥글린 정원 목과 켜켜이 쌓인 돌계단, 현관 앞에 놓인 수십 개의 장독과 푸성귀와 화분 등은 마치 수채화에서 느낄 수 있을 법한 정취를 풍긴다. 이 집을 메운 사람, 그리고 그 앞에 모인 사람의 표정은 늘 즐겁다. 기습한 겨울이 그들의 발걸음을 보챘을 것이다. 그 차가운 설렘에 뽀얀 두 볼이 담뿍 차오른다.

할머니 생각이 났다. 할머니가 만두를 잘 빚어 주시곤 했다며 나도 모르게 그리움을 토한다. 이곳에 오면 마치 어젯밤 꾸던 꿈을 오늘 다시 꾸는 것 같다. 유보했던 기억을 다시 끄집어 창밖의 나뭇가지 위에 걸어 두고 하나둘 첨삭하는 시간. 꺼내 볼수록 마음 어느 한 곳 간곤함을 폭 채운다.

할머니는 목에 커다란 앞치마 매듭을 걸어 주시고, 한 손에는 누런 양은 주전자 뚜껑을 쥐여 주셨다. 아버지가 밀대로 얇게 민 만두피 반죽 위에, 밀가루를 솔솔 뿌리고 주전자 뚜껑으로 반죽을 짓눌러 동그란 피를 만드는 게 내 임무였다. 할머니는 내가 만든 만두피에 다진 고기와 두부, 채소 따위로 만든 소를 한 숟가락 가득 올려 만두를 빚으셨다. 뭉툭한 손끝으로 둥근 모선 위에 물을 묻히고 주름을 접기 시작하면 조막만 한 만두가 떡하니 탄생하는 게 그렇게 신기할 수 없었다. 할머니는 당신 손에 바늘과 실이 있다며 짓궂은 농담으로 어린 손녀를 놀리시곤 했다.

할머니가 빚으신 만두 맛이 쾌활하고 풍성했다면, ‘자하손만두’의 만두는 담박하고 심심하다. 오로지 직접 담근 조선간장으로만 맛을 낸다. 소에 파, 마늘이 들어가지 않는다. 간장에 찍어서 모자란 간을 맞추고, 아삭한 김치를 곁들여 조화를 맞춘다. 물만두부터 편수, 엄나무순 만두까지 만두의 종류도 다양하다. 그마다 모양도, 색도 제각각 다르다. 당근, 비트, 시금치로 물을 내 반죽을 곱게 물들이고 이것은 떡국과 전골에 더해진다.

드디어 만둣국 한 그릇이 상에 올랐다. 잘 익은 배추김치와 알타리김치, 만두에 곁들일 조선간장. 말끔한 도자기 그릇 속 음식의 담음새에서 담박한 세련미가 배어 나온다. 육수를 한 입, 만두의 배를 갈라 간장에 적셔 한 입 떠먹으면 그 맛은 선량하고 기품이 넘친다. 더욱더 뜨끈하고 두둑하게 속을 채우고 싶다면, 만두전골이 좋다. 빨간 국물에 시원함을 더하는 배춧잎과 미나리와 대파는 물론 소고기, 명태전과 함께 끓여 먹는다.

더는 할머니의 만두를 먹을 수 없다. 나는 놀이를 멈춘 어른이 됐다. 하지만 저 산의 나무는 점점 더 물들고 벗겨지며 내 머리카락은 하염없이 자란다. 그릇을 금세 비운 게 아쉬워 앵두화채 한 그릇으로 사라지는 여운을 달랜다. 사라진 박동을 되짚을 수 없으니, 편지를 써야겠다.


서울 부암동 ‘계열사’의 프라이드치킨과 감자튀김. 사진 김하늘
서울 부암동 ‘계열사’의 프라이드치킨과 감자튀김. 사진 김하늘

부암동의 자부심 ‘계열사’

부암동 지형이 지네를 닮아서 창의문 지붕 아래에 닭이 그려져 있다. 닭은 지네의 천적이라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창의문 아래 그려진 닭으로 이곳 지네 기운을 막는 것과 같은 이치로, 부암동에 치킨집을 개업하면 대박 난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과연 이 말이 먼저일까, 이 말을 빼다 박은 치킨집 ‘계열사’가 먼저일까. 알 수 없지만, 부암동의 자부심으로 자리 잡은 계열사는 늘 문전성시를 이룬다.

“엄마랑 왔냐? 그래 나도 엄마가 있었지. 잘 먹고 가니라.” 엄마와 함께 가게 밖에서 대기 줄을 서고 있을 때였다. 반 백발의 주인 할머니는 우리 모녀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인왕산 호랑이를 만난 듯 그녀의 기세는 젊은이 못지않았다. 쌀집을 하다 옆 치킨집을 인수해 닭을 튀긴 지 벌써 25년이 훌쩍 넘었다.

닭 한 마리와 감자가 튀겨져 광주리에 듬뿍 담긴다. 양념치킨은 따로 없고, 양념은 따로 나오니 스스로 ‘찍먹’하면 된다. 양파를 넣고 끓인 기름에 할머니만의 레시피로 염지 해 튀긴 닭은 공복에 먹어도 폭력적이지 않다. 치킨은 흔하디흔하지만, 입천장이 다 까질 정도로 파삭한 튀김옷은 흔치 않다. 과자보다 맛있다. 떨어진 부스러기를 손가락 끝으로 꾹꾹 눌러 붙여 싹 쓸어 먹는다.

생맥주를 연거푸 마시며 신나게 수다를 떠는데, 주인 할머니가 우리 모녀에게 다가왔다. 치킨 맛은 어떠냐, 무 좀 더 줄까 살뜰히 살폈다. 그러곤 다음에도 엄마 손, 딸내미 손 꼭 잡고 같이 오라는 말과 감귤 두 개를 남기고, 홀연히 주방 안으로 사라졌다.

부암동에 오면 호젓한 욕심이 생긴다. 그저 곁에 머무르고 싶다고. 흘러가는 삶을 만지작거리며 지저귀고 싶다고. 나무는 잠들지 않아도 영원은 꿈일 테니까.


▒ 김하늘
외식 컨설팅 회사 ‘라이스앤컴퍼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