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F가 지난해 공개한 에어백은 차 외부를 감싼다. 충돌하기 0.15초 전에 이를 예측하고 미리 펼쳐진다. 사진 ZF
ZF가 지난해 공개한 에어백은 차 외부를 감싼다. 충돌하기 0.15초 전에 이를 예측하고 미리 펼쳐진다. 사진 ZF

9월 12일부터 열흘간 독일에서 프랑크푸르트 모터쇼가 열렸다.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는 2년에 한 번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모터쇼다. 올해도 새로운 콘셉트카와 자동차, 기술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번 모터쇼에서 가장 궁금했던 것은 완전히 새로워진 랜드로버 디펜더의 실물이었다. 드림카로 꼽는 디펜더이기에 네모 반듯한 실루엣과 투박한 실내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무척 기대됐다. 하지만 디펜더는 내 기대를 저버렸다. 모서리를 둥글게 다듬고 실내를 세련되게 꾸민 디펜더는 더 이상 내가 꿈꾸던 디펜더가 아니었다.

드림카를 꼭 한 번 타보고 싶다는 내 꿈은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국내에 수입되지 않은 데다 해외에서도 좀처럼 타볼 기회가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왜 디펜더는 국내에 들어오지 못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안전 규정을 통과할 수 없어서였다. 2016년 생을 마감한 이전 디펜더에는 에어백이 없었다. 요즘 자동차는 강화된 안전 규정에 따라 대시보드나 운전대는 물론 도어 안쪽에도 에어백을 챙겨야 하는데, 디펜더는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

보통 운전대나 대시보드 안쪽에 숨어 있는 정면 에어백은 앞 범퍼와 타이어, 브레이크 등과 연결된 센서에서 신호를 감지해 충돌했다고 판단하면 0.05초 안에 팽창, 운전대 표면이나 대시보드를 찢고 나온다. 초창기 에어백은 정면에만 있었지만, 요즘은 다르다. 도어 안쪽이나 유리창 위쪽 기둥에서 터지는 커튼형 에어백부터 무릎 아래에서 펼쳐지는 무릎 에어백,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서 부풀어 오르는 센터 에어백, 보행자와 부딪혔을 때 보닛을 들어 올리며 터지는 보행자 에어백까지 다양하다. 메르세데스-벤츠와 포드는 안전벨트 안에 에어백을 넣기도 했다.

에어백은 앞으로 어떻게 진화할까. 지난해 9월 볼보가 새로운 개념의 자율주행 전기 콘셉트카 ‘360C’를 선보였다. 비행기 일등석 같은 시트가 있어 누워서 갈 수 있는 자율주행차다. 막히는 출퇴근길에 누워서 간다는 건 정말 매력적인 제안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갈 때 이 자율주행차를 타면 목적지까지 편하게 도착할 수 있겠다.

그런데 사고 났을 땐 어쩌지? 시트에서 굴러떨어지면서 크게 다치지 않을까? 그래서 볼보 엔지니어들은 새로운 안전벨트와 에어백을 생각했다. ‘스페셜 세이프티 블랭킷(Special Safety Blanket)’이다. 보기엔 그냥 평범한 담요 같지만 덮었을 때 어깨와 엉덩이 부분을 단단하게 고정해 안전벨트 같은 효과를 낸다. 만약 에어백처럼 부풀어 오르는 기능을 추가한다면 탑승자를 보다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 것이다.

현대모비스는 2017년 세계 최초로 파노라마 선루프 에어백을 개발했다. 이 에어백은 차가 뒤집어지는 사고가 났을 때 센서가 이를 감지해 선루프 안에 숨어 있는 에어백을 팽창시킨다.

현대모비스에 따르면 0.08초 만에 지붕 안쪽 전체를 덮어 탑승자를 보호한다. 유리가 깨지면서 탑승자가 선루프 밖으로 튕겨 나가는 일도 막을 수 있다. 아쉽게도 이 에어백은 아직 양산차에 적용되지 않았다.

다만 현대·기아차가 개발한 또 다른 에어백은 앞으로 출시되는 모델에 적용될 예정이다. 센터사이드 에어백이다. 평소에는 시트 안쪽에 숨어 있다가 사고 났을 때 크게 펼쳐지면서 탑승자끼리 부딪히지 않도록 하는 에어백이다. 기존에 센터 에어백은 있었지만 시트에서 펼쳐지는 에어백은 많지 않았다. 자율주행차가 상용화하면 시트를 뒤로 돌리고 달리는 일도 생길 수 있는데, 이럴 땐 센터 에어백이 시트에 있는 편이 더 안전하다는 게 현대차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이 에어백을 사용하면 탑승자끼리 부딪혀 머리를 다칠 가능성이 80% 감소한다고 밝혔다.

볼보만큼 안전에 관심이 많은 다임러그룹은 1970년대 초부터 다양한 안전 기술을 담은 안전실험자동차(ESF)를 내놓고 있다. 올해는 새로운 에어백을 품은 자동차를 선보였는데, 앞 시트 등받이 뒤에서 펼쳐지는 리어 시트 에어백이다. 네모나고 두툼한 기둥처럼 생긴 것이 특이하다. 뒷자리 탑승객의 키와 상관 없이 에어백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설계했기 때문이다.


다임러그룹 인티그럴사이드백. 사진 다임러
다임러그룹 인티그럴사이드백. 사진 다임러
볼보 360C 스페셜 세이프티 블랭킷. 사진 볼보
볼보 360C 스페셜 세이프티 블랭킷. 사진 볼보
현대차 센터사이드 에어백. 사진 현대차
현대차 센터사이드 에어백. 사진 현대차

볼보의 만우절 장난이 ZF를 통해 현실로

다임러그룹은 또 앞 시트 등받이에서 날개처럼 부풀어 오르는 인티그럴사이드백(Integral Sidebag)도 선보였다. 탑승자 양옆을 에어백이 완벽히 감싸 시트 등받이를 뒤로 잔뜩 젖히고 있거나 시트를 뒤로 완전히 물려놔도 안전하다는 게 다임러그룹 관계자의 설명이다.

2013년 볼보는 아주 재미있는 에어백 기술을 선보였다. 차의 외부를 완전히 감싸는 ‘익스터널 비히클 프로텍션(External Vehicle Protection) 시스템’이다. 지붕에 여러 개의 거대한 에어백이 접혀 있다가 사고 났을 때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면서 외부를 완전히 감싼다. 하지만 이 에어백 기술은 볼보의 만우절 장난이었다.

그런데 이 아이디어를 실제로 실행한 회사가 있다. 자동차 부품 생산 기업 ZF다. ZF는 지난해 독일에서 열린 ‘2018 에어백 심포지엄’에서 차 외부에서 펼쳐지는 에어백을 공개했다. 2013년 볼보가 선보인 것처럼 차를 완전히 감싸는 게 아니라 옆쪽 아래에서 반 정도만 펼쳐진다는 게 다르다. 사이드 스커트에 대형 에어백이 숨어 있다가 충돌하기 0.15초 전에 이를 예측하고 미리 펼쳐 충격을 줄인다. ZF는 이 에어백으로 측면 충돌 사고에서 부상 확률을 40%까지 낮출 수 있다고 밝혔다.

이 밖에 모터사이클이나 자전거 타는 사람을 위해 조끼처럼 입는 에어백도 있다. 영국의 한 유아용 카시트 업체는 모터쇼에서 에어백을 품은 카시트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자동차 회사와 부품 회사의 노력으로 탈것이 더욱 안전해지고 있다. 기술 진화에 따라 높은 단계의 자율주행으로 갈수록 운전자 개입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탑승자 안전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