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런쌩 씰롬(Charoensang Silom)
주소 492/6 Soi Charoen Krung 49, Suriya Wong, Bang Rak, Bangkok 10500 Thailand
영업 시간 7:30~13:30
대표 메뉴 족발 덮밥

싸니 방콕(Sarnies Bangkok)
주소 101-103 Charoen Krung Road 44 North Sathorn, Bang Rak, Bangkok 10500 Thailand
영업 시간 8:00~17:30
대표 메뉴 샌드위치, 브라우니

쁘라짝(Prachack)
주소 1415 Charoen Krung Rd, Silom, Bang Rak, Bangkok 10500 Thailand
영업 시간 8:00~20:30
대표 메뉴 오리구이, 오리국수, 오리덮밥


한나절이 걸려 방콕에 왔다. 작은 여행 가방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만 지킬 수 있는 물건으로 채웠다. 얇은 옷가지, 세면도구와 가벼운 책 따위로 말이다. 예약해둔 싸구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방에 짐을 팽개쳐 놓고 부리나케 숙소를 나왔다. 가로등조차 드문 밤거리, 음악 소리가 흐르는 곳을 나침반 삼아 그곳을 향한다. 기둥과 지붕은 있되 벽과 문은 없다. 허름하지만 더 바랄 것 없는 그곳에서, 사람들은 더 바랄 것 없이 춤을 추고 있다. 어디에서 왔는지 아무도 묻지 않는다. 오로지 눈빛과 춤사위를 나누며 서로를 환대한다. 여행이다.

이튿날 아침,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창을 열어젖힌다. 태양은 빛난다. 햇볕에 피로가 마른다. 옷가지를 챙겨 입고 나갈 채비를 한다. BTS(Bangkok Mass Transit System·지상철)를 타고 도시의 풍경을 탐닉하다 사판 탁신(Saphan Taksin)역에 내린다. 사판 탁신은 방콕의 구도심 중 에메랄드색 불상이 있는 왓 프라깨우 왕궁과 여러 사원이 있는 로열 시티에 속한다. 역에서 내리면 얀나와 사원이 내려다보이며, 수상 보트가 드나드는 짜오프라야 강이 있어 늘 통행량이 많다.


짜런쌩 씰롬의 족발 덮밥 사진 김하늘
짜런쌩 씰롬의 족발 덮밥 사진 김하늘

1│짜런쌩 씰롬(Charoensang Silom)

사판 탁신역 3번 출구를 나와 걷다가 교차로를 가로질러 작은 골목에 들어선다. 카페와 보석상을 지나서 나타나는 빨간 간판이 달린 작은 가게 앞은 인산인해다. 오토바이와 자전거를 세워 두고 음식 포장을 기다리는 현지인부터 배낭을 멘 관광객들까지 모두 줄을 선다. 이는 모두다 ‘카오 카 무(khao kha moo)’를 먹기 위해서다. 카오(khao)는 밥, 카(kha)는 다리, 무(moo)는 돼지를 뜻하는, 말 그대로 족발 덮밥이다. 신선한 돼지 족발에 팔각·화조·계피·정향·진피 등의 오향 파우더와 판단 잎, 고수 뿌리, 팜슈거, 코코넛 워터 등을 넣고 10시간 이상 끓여 새콤한 맛을 내는 소스에 찍어 먹거나 쌀밥에 얹어 먹는다. 간장 소스에 푹 익힌 거무스름한 족발을 보면 우리나라의 오향족발을 떠올리게 되는데, 들어가는 재료는 얼추 비슷하지만 맛과 질감에 반전이 있다.

자리를 잡아 앉는다. 특 280바트(약 1만1000원), 보통 140바트(약 5500원), 오래 삶아 떨어져 나간 돼지 껍데기와 살점은 50바트(약 2000원) 등 크기별로 판매한다. 되도록 일찍 가야 한다. 오전 10시가 되기도 전에 이미 특은 품절이란다. 아쉬운 대로 보통 한 접시를 시키니, 잘 갈린 얼음이 얹어진 찻물이 담긴 쟁반을 내민다. 한 컵당 2바트(약 80원)다. 찻물로 해갈을 하니 금방 족발과 쌀밥이 놓였다. 포크로 족발의 표면을 찌르니 사정없이 무너진다. 무너져 내리는 족발의 모습은 꽤나 희생적이다. 그 희생의 살점을 날카로운 포크 끝으로 찔러 입안에 넣고 혀끝으로 희롱하다 치아로 뭉갠다. 녹아버리는 살점이 적잖이 당혹스럽다. 내 입에 담긴 것 중 가장 달콤했던 것을 꼽으라면, 누군가의 입술과 혀끝이리라. 그런데 돼지의 발 따위가 이를 가볍게 능가한다. 나풀거리는 쌀밥을 달콤한 양념에 적시고 부들부들한 살점을 얹어 입에 넣으면, 달콤한 첫눈을 삼킨 듯 순식간에 사라진다. 칠리 비니거 소스를 더하면 느끼함을 해소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너끈히 한 그릇 더 먹을 수 있다.

영업시간은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1시 30분까지다. 장사가 끝나면 옆 가게 셔터가 올라가고 한쪽에서는 골절기로 족발을 자르고, 다른 한쪽에서는 흐르는 물에 헹구고, 단단한 솔로 구석구석 세척한다. 이렇게 매일 족발을 삶는다.


2│싸니 방콕(Sarnies Bangkok)

소란한 엔진음과 매캐한 매연을 뿜은 오토바이는 헤엄을 치듯 유연하고 민첩하게 거리를 활보한다. 무탈한 파란 하늘 아래엔 얽히고설킨 전깃줄이 대비를 이루고, 땅에는 노랗게 익은 낙엽이 뒹군다. 정처 없이 골목을 거닐다, 아주 오래된 건물 앞에서 발길을 멈춘다.

‘싸니(Sarnies)’. 영국식 슬랭으로 샌드위치를 뜻하는 이름의 이 신생 카페는 이름대로 샌드위치를 중심으로 다양한 커피 음료와 디저트를 판매한다. 호주식 메뉴에 태국의 맛을 더한 샌드위치와 소금이 솔솔 뿌려진 브라우니도 훌륭하지만, 시원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150년의 나이테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카페 인테리어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검은 기름때와 연기 얼룩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 건물은 아마 짜오프라야 강을 지나는 선박의 엔진 작업장이 아니었을까.


쁘라짝의 오리국수 사진 김하늘
쁘라짝의 오리국수 사진 김하늘

3│쁘라짝(Prachack)

오리 전문점 ‘쁘라짝(Prachak)’ 또한 150년에 못지않은 역사를 자랑한다. 1909년에 문을 열어 올해로 110년이 된 노포다. 오리를 주렁주렁 매달고 에그 누들(Egg Noodle)을 쉴 새 없이 삶고 있는 곳이다. 광둥식 오리구이를 중심으로 덮밥, 국수 등을 판다. 방콕에 올 때마다 들러 늘 이렇게 주문한다.

“오리구이 하나, 오리국수 하나, 공심채 볶음 하나, 밥 하나요. 아, 창(Chang) 맥주도 한 병요.” 일 인분이다. 고기는 먹을수록 모자라고, 국수와 밥은 다른 음식이며, 채소 반찬은 필수, 맥주는 기본값이다.

테이블을 가득 채운 음식들을 보는 것만 해도 배가 부른 것 같지만, 배는 먹어야 부르다. 달콤하고 짭조름한 갈색 소스가 오리고기 위를 덮었다. 연한 오리 살코기에 바짝 구워진 껍데기를 소스에 처벅처벅 묻혀 밥 한술에 얹어 한 입 먹는다. 다음은 국수, 에그 누들과 오리고기가 담긴 국수 그릇에 요청한 뜨끈한 오리 육수를 부어 면치기를 한다. ‘단짠’한 소스와 오리고기의 조합은 다소 과격하지만 순종의 쌀밥과 겸손한 에그 누들은 그 폭력을 거역하지 않는다. 뜨거운 공심채 볶음이 아삭하게 씹혀 육즙이 터져 나올 때, 맥주잔을 채운다. 그리고 마신다. 컵쿤-카(고맙다라는 뜻의 태국어)!

밤이 저문다. 공허했던 일상에 포만감이 차오른다. 더 바랄 것이 없다. 어제와는 다른 낯선 이가 되어, 그 지붕 밑에서 춤을 춰야지. 여행이다.


▒ 김하늘
외식 컨설팅 회사 ‘라이스앤컴퍼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