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콤 크로(브루스 윌리스·오른쪽) 박사에게 어린 환자 콜(할리 조엘 오스먼트)이 비밀을 털어 놓는다. “박사님, 죽은 사람들이 보여요.” “꿈 속에서?” (콜이 고개를 젓는다) “깨어 있는 동안에?” (고개를 끄덕인다) “무덤이나 관 속에 있는, 그런 죽은 사람을 말하는 거니?” “아뇨. 보통 사람처럼 걸어다녀요. 그들은 자기들끼리도 못 알아봐요. 자기가 원하는 것만 보니까요. 심지어 그들은 자신들이 죽었다는 것도 몰라요.” 사진 IMDB
말콤 크로(브루스 윌리스·오른쪽) 박사에게 어린 환자 콜(할리 조엘 오스먼트)이 비밀을 털어 놓는다. “박사님, 죽은 사람들이 보여요.” “꿈 속에서?” (콜이 고개를 젓는다) “깨어 있는 동안에?” (고개를 끄덕인다) “무덤이나 관 속에 있는, 그런 죽은 사람을 말하는 거니?” “아뇨. 보통 사람처럼 걸어다녀요. 그들은 자기들끼리도 못 알아봐요. 자기가 원하는 것만 보니까요. 심지어 그들은 자신들이 죽었다는 것도 몰라요.” 사진 IMDB

영혼이 있을까. 심장이 멎고 뇌 기능이 정지하고 육신이 재가 되어 사라진 후에도 혼은 남아 천국으로 가거나 지옥에서 고통받거나 이승을 떠돌기도 하는 것일까. 유령이나 귀신이란 이름으로 불리면서 생애 못다 이룬 소원이나 한을 풀기 위해 산 사람 주변을 맴돌까.

존재하지만 보고 듣고 느낄 수 없는 것들은 의외로 많다. 빛조차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가시광선뿐이다. 가청주파수 이외의 소리도 들을 수 없고 초음속으로 날아가는 물체의 속도도 체감할 수 없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아 답답한 것도 있지만 우리 몸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세균이나 박테리아를 볼 수 없는 건 다행이다. 만약 존재한다면 귀신을 볼 수 없는 것도 감사할 일이다. 사랑했던 사람조차 숨이 끊어진 후에는 이질감과 두려움을 주는 법이니까. 그래도 간혹 누군가의 눈에는 죽은 사람들이 보이기도 한다는데, 믿을까 말까.

아동심리학자인 말콤 박사는 업적을 인정받아 영예로운 상을 받는다. 집에서 아내와 자축을 이어 가던 밤, 박사는 치료를 제대로 해주지 않았다며 원망을 품고 찾아온 청년, 빈센트의 총격을 받는다. 그리고 일 년 뒤, 아홉 살 소년 콜의 상담치료를 맡게 된다. 그를 저격하고 자살한 빈센트가 처음 상담을 받았던 나이가 열 살, 그와 똑같이 이혼 가정에서 자라며 심한 불안증과 사회적 고립 증세를 보이는 콜을 반드시 회복시켜 과거의 실패를 보상하리라, 말콤은 다짐한다. 하지만 콜은 선뜻 마음을 열지 않는다.

콜의 집에서는 가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서랍장들이 순식간에 죄다 열려 있거나 제자리에 있어야 할 물건들이 이유 없이 옮겨져 있곤 하는 것이다.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콜은 엄마가 믿어주지 않을까 봐 두렵다. 그러면서도 진짜 이유는 말하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의 생일 파티에 초대받아 간 콜이 고약한 아이들의 장난으로 다락방에 갇혀 패닉에 빠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왜 그렇게 슬퍼하세요? 박사님의 눈이 그렇게 말해요.” 입원한 콜을 찾아오긴 했지만 다가설 방법을 찾지 못한 말콤에게 아이가 먼저 묻는다. 사실 박사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 문제를 안고 있었다. 빈센트의 총격 이후, 아내는 그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말도 섞지 않는다. 사고 후 일에만 매달려온 말콤은 아내에게 소홀했던 것을 후회하며 관계를 회복하려 애쓰지만 상황은 더 악화될 뿐이다. 아내와 대화할 방법을 모르겠다며 그가 솔직하게 말하자 콜도 비밀을 털어놓는다. “죽은 사람들이 보여요.”

살아 있을 때와 똑같이 행동하지만 원하는 것만 보고 듣기 때문에 죽은 자들끼리는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자신이 죽은 것조차 알지 못한다고, 그런 유령들이 콜의 눈에 늘 보인다는 것이다. 오감을 넘어 보이지 않는 것을 지각하는 여섯 번째 감각, 흔히 육감이라고 하는 식스 센스가 정말 존재할까?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영혼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던 말콤은 한계를 실감하며 실력이 더 나은 의사에게 치료받을 것을 권한다. 하지만 콜이 붙잡는다. “제발 그들을 사라지게 해주세요. 박사님만이 나를 치료할 수 있어요.”

한(恨)이 많으면 죽어서도 이승을 떠나지 못한다고 한다. 분노나 자책으로 응어리진 마음, 한이란 환자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후회다. 지혜가 없어서, 때를 놓쳐서, 사회적 억압과 관습에 묶여 원하는 것을 표현하지 못했던 깊은 회한. 말했어야 했는데 말하지 못했고, 밉다, 싫다고 등짝을 발로 걷어찼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꽉 막힌 인생에 대한 세상과 타인과 자신에 대한 원망. 살아서는 참을 수 있었던 일이 죽고 나면 견딜 수 없게 되나 보다. 살아 있을 때 몰랐던 진실이 죽은 뒤 깨달아지기도 하는 모양이다.

말콤은 다시 한 번 콜에 대한 책임을 느낀다. 밤을 지새우며 빈센트의 오래전 진료 기록을 뒤지던 박사는 당시에는 몰랐던 단서를 발견한다. 빈센트도 콜이 말한 것처럼, 증명할 수 없는 어떤 존재들 때문에 고통받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박사는 콜을 찾아가 말한다. “그들이 왜 네 앞에 나타날까?”

어느덧 박사를 신뢰하게 된 콜은 눈앞에 나타난 유령에게 처음으로 말을 건넨다.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거니?” 콜이 묻자 유령들은 기다렸다는 듯, 이승을 떠돌게 만든 한을 풀어놓는다. 사연을 들어주고 그들의 말을 가족에게 대신 전해주는 역할을 하게 되면서 콜은 두려움에서 벗어나 자신감을 되찾는다. 엄마에게도 진실을 이야기하고 둘 사이에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불안의 벽을 허문다. 선생님‧친구들과 관계도 원만해진다. 말콤은 건강하게 웃는 콜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치료가 끝나 박사와 헤어져야 할 때라는 것을 알게 된 콜은 뜻밖에도 말콤이 아내와 대화할 방법을 알려준다.

의사라고 해서 병에 걸리지 않는 게 아니듯 사람인 이상, 정신과 의사조차 타인과 자신의 마음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말콤은 아이의 조언을 반신반의하면서도 냉정하게 자신을 외면하는 아내에게 다가가 어렵게 말을 건네 본다. 그는 마침내 아내와 관계를 회복하고 예전의 행복을 되찾을 수 있을까. 마음의 평온이란 거짓과 원망과 후회를 털어낸 다음 진실을 받아들일 때 찾아오는 선물인 것을 깨닫게 될까.

1999년 개봉 이후 ‘유주얼 서스펙트’와 함께 최고의 반전 영화로 손꼽히는 ‘식스 센스’. 영화를 본 사람은 입을 다무는 것이 예의고 아직 관람하지 못한 사람은 반전 내용을 알게 되기 전에 재빨리 찾아봐야 그 재미와 매력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반전의 쾌감이나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존재하는 섬뜩한 공포로 관객을 놀라게 하는 것만이 감독의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타인과 관계는 내가 누구인가를 먼저 아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나 자신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자신은 물론 타자를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거라고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물론 삶과 죽음이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도.

말콤 역의 브루스 윌리스는 이 작품 뒤에도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배우로서 입지를 굳혔지만,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식스 센스’ 이후 이렇다 할 작품을 내놓지 못했다. 콜 역을 맡았던 할리 오스먼트 역시 아역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관문이 쉽지 않았던 듯, ‘에이아이(AI)’까지는 두각을 보였지만 그 후엔 눈에 띄는 작품이 없어 안타깝다.

여름의 절정이다. 죽은 자들이 다가오거나 화를 내면 산 사람은 싸늘함을 느낀다고 콜이 말했다. 이렇게 무덥기만 한 걸 보면 여름엔 유령들도 피서를 떠났거나 어딘가 모여 다들 축 늘어져 있는 게 아닐까. 그러나 뒷덜미가 서늘해지고 온몸의 털이 쭈뼛 곤두서게 될 날도 머지않았다. 오싹함이 느껴진다는 것은 그들이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는 뜻이리라. 으슬으슬 몸이 떨리고 입김을 하얗게 내뿜게 할 죽은 자들이 떼로 몰려올 겨울을 상상하며, 남은 더위 모쪼록 건강하게 이겨내시기를.


▒ 김규나
조선일보·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 ‘트러스트미’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