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즈모아마트’ 전시 현장. 사진 대림미술관
‘굿즈모아마트’ 전시 현장. 사진 대림미술관

‘굿즈’ 시장은 좀처럼 불황을 모른다. 아이돌 산업과 애니메이션은 물론 스포츠, 미술, 출판, 방송까지 요즘은 모든 게 굿즈로 시작해 굿즈로 끝난다. 여름마다 매진 기록을 세웠던 가수 싸이의 콘서트는 티켓팅 시작과 동시에 ‘2019 싸이 흠뻑쇼’ 공식 굿즈 사전 판매를 시작했다. 싸이의 캐릭터가 새겨진 크록스 샌들과 PVC 백, 타월 등 3종으로 구성된 굿즈 구입 열기는 뜨거웠다.

‘손세이셔널’ 손흥민의 열혈 팬임을 자부하는 지인은 지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맞춰 토트넘의 공식 온라인 스토어 스퍼스숍에서 구입한 그의 유니폼을 지금도 집 거실 한가운데 보물처럼 걸어두고 산다. 스퍼스숍은 작년 말부터 그의 이름이 적힌 한글 유니폼을 판매하고 있다.

방송가도 마찬가지다. CJ ENM의 온라인동영상(OTT) 서비스 티빙(TVING)은 ‘신서유기’ ‘강식당’ ‘프로듀스 101’ 시리즈 등 10대 인기 콘텐츠를 활용한 상품들을 자체 굿즈숍을 통해 지속적으로 선보이며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보이그룹 뉴이스트를 주인공으로 한 리얼리티 프로그램 ‘뉴이스트 로드’에 등장했던 일회용 카메라 ‘퀵스냅’이 티빙몰과 셀렙숍을 통해 예약판매를 시작하자 서버가 다운되고 단 몇 시간 만에 매출 1억원을 돌파했다. 멤버들이 직접 촬영한 포토에세이가 카메라와 함께 제공되는 이 한정판 패키지 가격은 개당 4만8000원.

숨 가쁘게 판매 그래프가 올라가던 그 순간 우연히 자리를 함께했던 CJ ENM 관계자는 이 정도는 당연하다는 듯 놀라는 기색도 없었다. 오히려 서버 문제로 기대보다 반응 속도가 느리다며 초조해했다. 궁금해서 들어가본 티빙몰에서는 워너원, 아이즈원 등 인기 스타별 굿즈부터 ‘밥블레스유’의 피크닉 세트, ‘응답하라’ 시리즈의 쌍문동 우주 오락실(미니 사이즈 아케이드 게임기)까지 별별 것을 다 팔고 있었다.


덕후 사랑 먹고 자라는 ‘굿즈’

일반적으로 상품이나 재화를 뜻하는 굿즈(Goods)가 언제부터 머천다이즈 상품 일체를 뜻하게 됐는지 궁금하다면 ‘덕후’라는 용어가 등장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80년대 일본에서 유행하던 오타쿠는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SF 영화 등 서브컬처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으나 사교성이 결여된 사람을 일컬었다.

다소 부정적인 뜻으로 쓰이던 오타쿠라는 단어의 지위가 격상한 것은 인터넷 커뮤니티가 급성장한 1990년대 후반부터다. 비슷한 공감대를 지닌 이들 사이에서 오타쿠는 조롱이 아닌 추앙의 대상이었다. 단어 자체도 ‘오덕후’에서 ‘덕후’로 변화하며, 곧을 직(直)에 마음 심(心)을 더한 덕(德)의 한자 어원처럼 자기만의 이상을 실현해 나가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로서 능력을 인정받게 된 것이다. 팬이나 마니아가 단순히 주어진 문화를 소비하는 것에 그친다면, 덕후는 소비는 물론 생산, 유통, 판매까지 전 과정에 직접 관여하며 적극적으로 소비자의 권리를 행사하는 프로슈머(생산자+소비자)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덕질’은 그 덕을 쌓는 행위다. 이 덕질의 중심에 굿즈가 있다.

덕질의 결과로 파생되는 굿즈의 범위는 캐릭터 인형이나 열쇠고리 정도가 아니다. 때로는 세기의 아이디어 상품이 돼, 엄청난 부와 명예를 가져오기도 한다. 영화 ‘아이언맨’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일론 머스크는 우주 덕후다. 20대 초반부터 실리콘밸리를 주름잡는 스타였던 그에게 지구는 너무 좁았다. 이미 열두 살 때 ‘블래스타’라는 우주 전투 게임을 개발해 게임 잡지에 500달러를 받고 팔았다.

그는 첫 회사 ‘Zip2’에 이어 ‘페이팔’을 연이어 성공시키며 억만장자가 됐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자신의 오랜 꿈을 실현시켰다. 1억달러의 자비를 들여 설립한 민간 우주 기업 ‘스페이스 X’다. 로켓 개발에 뛰어든 그는 세 번의 실패 끝에 성공했다. 2008년 9월, 팔콘1 로켓이 마침내 민간 로켓 최초로 위성 궤도에 진입했다.

이 억만장자의 다음 계획은 이미 오래전에 알려진 것처럼 2030년으로 예정된 화성 식민지 건설이다. 이에 앞서 2017년에는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캡틴 아메리카’ 등의 공상과학(SF) 영화 의상 디자이너로 유명한 호세 페르난데스를 영입해 새 우주복 디자인을 선보이기도 했다.

K팝(K-pop) 열풍과 기술이 만나 탄생한 LED 블루투스 응원봉의 사례도 있다. 콘서트장에서 좌석 정보를 입력한 후 휴대전화블루투스 기능을 켜고 응원봉과 연결하면 무대 중앙의 콘솔에서 원격제어를 통해 응원봉의 컬러 등을 조절할 수 있는 이 기능을 국내 콘서트에 최초로 도입한 건 엑소의 무대였다. SM엔터테인먼트는 원격제어 응원봉의 특허도 냈다. 과거 아이돌 그룹 팬클럽 사이에서 논란이 되곤 했던 응원 풍선의 색깔 다툼은 이제 까마득한 옛일이 됐다.

전설의 밴드 퀸이 ‘위 아 더 챔피언(We are the champion)’을 노래했던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웸블리 파도타기’의 진풍경을 연출한 방탄소년단의 ‘아미밤’, 응원봉을 움직이면 투명한 구 안의 행성이 회전하는 효과까지 탑재한 우주소녀의 ‘우주정봉’ 등, 최첨단 응원봉의 시대다.

요즘은 전시를 볼 때도 굿즈숍은 필수 코스다. 2015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렸던 지드래곤의 전시 ‘피스마이너스원’에서 개인적으로 깊은 인상을 받았던 건 작품이나 그의 소장품보다 미술관 내에 차려진 번쩍이는 굿즈숍이었다. 검은색과 흰색으로 꾸민 고급스러운 부스에 전시된 한정판 티셔츠를 비롯한 소품 일체는 무척 세련됐다. 국내 미술관 중에 굿즈 마케팅을 제일 잘하는 건 대림미술관이다. 늘 젊은 관객들로 북적이는 대림미술관은 한남동에 위치한 디프로젝트 스페이스 구슬모아당구장에서 올 초부터 ‘굿즈모아마트-Goods Is Good’ 전시를 열고 있다. 마트라는 콘셉트 아래 청과, 수산, 정육, 냉동식품 등 총 4개 섹션으로 실내를 꾸며 200여 점의 일러스트 작품과 500여 개의 굿즈를 전시하고 판매한다. 전시장 입구엔 장바구니도 비치돼 있다. 전시는 8월 25일까지다.


‘기묘한 이야기’ 팝업 스토어. 사진 넷플릭스
‘기묘한 이야기’ 팝업 스토어. 사진 넷플릭스

브랜드 상징하는 수단…광고 소재 되기도

스타벅스, 블루보틀 같은 유명 커피 브랜드의 굿즈도 늘 커피만큼이나 인기다. 굿즈는 이제 그 자체로 브랜드를 대표하거나 개인의 정치·사회적 정체성을 표명하는 수단이 된다. 가구 기업 이케아가 야심 차게 준비한 ‘리얼 라이프’ 캠페인은 최근 본 굿즈 중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었다. 만화 영화 ‘심프슨 가족’, 시트콤 ‘프렌즈’와 SF 호러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의 장면들을 실제 이케아에서 판매 중인 가구와 소품들로 정교하게 재현했다. 해당 장면들과 이케아가 제작한 이미지를 나란히 배열하면서 각 제품의 가격 정보도 유머러스하게 표기했다. 세계적인 팬덤을 지닌 인기 만화와 드라마를 광고의 소재로 삼기도 한다.

굿즈의 인기는 공간으로까지 확장된다. 넷플릭스 한국 사무소는 ‘기묘한 이야기' 새 시즌의 방영을 앞두고 드라마 속 호킨스 마을을 홍대 앞으로 옮겨왔다. 오래된 주택을 개조한 이 팝업 스토어는 오픈 일주일 만에 방문자 1만 명을 돌파했고, 예약제로 운영된 방 탈출 게임은 경쟁이 치열했다. SNS는 온통 ‘기묘한 이야기’ 팝업 스토어 인증샷으로 가득 찼다.

‘기묘한 이야기’ 팝업 스토어는 아쉽게도 7월 7일 영업을 종료했지만 이태원에 문을 연 ‘토이 스토리’ 팝업 스토어는 10월까지 문을 연다. 물론 만화 영화 속 캐릭터 인형들도 현장에서 판매한다. 굿즈의 시대다. 지금 당신은 어떤 굿즈를 갖고 있는가? 당신이 소장한 굿즈가 당신을 말해줄 것이다.


▒ 이미혜
패션·미술 칼럼니스트, 문화기획자, 보그코리아 컨트리뷰팅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