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뤼벡의 정문이라 할 수 있는 홀스텐 문. 사진 페이스북 캡처
독일 뤼벡의 정문이라 할 수 있는 홀스텐 문. 사진 페이스북 캡처

유럽 중부 오스트리아에서 청년기를 보낸 필자에게 북부 독일에서 보낸 7년은 음악을 새로운 각도로 볼 수 있는 계기였다. 오스트리아는 휘황찬란한 바로크 양식의 대성당 및 궁전이 인상적이었다. 이와 달리 북부 독일은 빨간 벽돌로 차곡차곡 쌓아올린 소박하지만 숭고한 감성의 고딕 양식이 마음을 끌었다. 새로운 환경에서 생긴 삶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는 이곳에 흐르는 음악을 흡수하기에 충분했다.

북부 독일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 중 하나는 뤼벡이란 도시다. 뤼벡은 독일 지도에서 가장 위쪽에 자리 잡고 있다. 도시 경관은 평지 한가운데 불룩 솟은 언덕 위에 놓인 왕관과 비슷하다. 도시를 에워싼 성벽 안에 세워진, 하늘을 찌를 듯한 교회 첨탑은 매우 인상적이다. 몇 년 전 처음 이 도시를 방문했을 때다. 세월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닳고 닳은 돌바닥을 밟으며 도시를 구석구석 살펴보는 도중 장엄한 오르간 소리가 흘러나오는 교회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호기심에 교회 문을 열고 회랑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오르간의 경건한 소리는 장내를 더욱 엄숙하게 만들었다. 오르간이 내뿜는 카리스마는 장내에 있던 모든 이가 숨소리마저 내지 못하게 만들 정도였다.

처음 듣는 곡이라 옆에 서 있던 관계자에게 작곡가와 곡명을 물어봤다. 오늘 저녁에 있을 아벤트무지크(Abendmusik·저녁 음악이라는 뜻으로 북스테후데에 의해 형태가 확립된 음악회) 연주 리허설 중이라고 했다. 작곡가 디테리히 북스테후데(Dietrich Buxtehude)의  ‘감사드리나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여(Wir danken dir, Herr Jesu Christ)’라는 곡이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문득 학창 시절 음악사 시간에 선생님께서 하신 이야기가 떠올랐다. 1705년, 만 20세의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당대 유럽 최고의 오르가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디테리히 북스테후데를 무척 존경했다. 하지만 바흐가 살던 독일 중부의 튀링겐 지방에서 북스테후데가 있는 뤼벡까지 거리는 무려 400㎞가 넘었다. 시속 무제한의 아우토반이 있는 지금도 자동차로 몇 시간 가야 하는 거리다. 마차를 빌릴 돈이 부족했던 바흐는 걸어서 뤼벡까지 갔다.

뤼벡에 도착한 바흐는 북스테후데의 연주를 들었고, 그에게 수업도 받았다. 젊은 바흐의 천부적 재능이 마음에 들었던 북스테후데는 자신이 봉직한 뤼벡의 성 마리엔 교회 오르가니스트 후임을 제안했다. 당시 성 마리엔 교회는 유럽 오르간 음악의 중심지와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바흐는 북스테후데가 그의 딸과 결혼할 것을 제안한 것이 내키지 않았는지 다시 튀링겐으로 돌아갔다는 일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뤼벡에서 이뤄진 북스테후데와 바흐의 만남은 바흐의 음악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된다. 또 바흐가 그의 작품을 공부하기 위해 남긴 많은 자료가 북스테후데의 음악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사료로 쓰이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아쉽게도 북스테후데의 명성은 현대 일반 대중에게 상당히 잊힌 게 사실이다. 하지만 북스테후데를 빼놓고 바로크 시대를 논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뤼벡에서는 북스테후데를 기리는 페스티벌과 북스테후데 국제 오르간 콩쿠르가 정기적으로 열린다. 심지어 뤼벡 남서쪽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는 그의 이름을 지역 지명으로 사용한다.


▒ 안종도
독일 함부르크 국립음대 연주학 박사, 함부르크 국립음대 기악과 강사

Keyword

아벤트무지크(Abendmusik·저녁 음악) 뤼벡은 현대적인 의미의 콘서트가 시작된 곳이다. 16세기 초, 교회는 종교 활동 장소로만 여겨졌다. 하지만 뤼벡에서 활동하던 음악가들은 교회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음악회를 열었다. 이를 통해 뤼벡에서는 아벤트무지크(Abendmusik)라는 이름 아래 오르간 연주와 합창단의 목소리가 어우러진 음악회가 교회에서 정기적으로 열린다. 북스테후데는 아벤트무지크를 발전시켜 독일 전체로 퍼지게 했다. 특이한 점은 일반인의 자발적인 후원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열리는 현대 음악회의 시초라 할 수 있다. 이전까지만 해도 음악회는 성직자나 권력자에게 맞춰져 있었다. 이후 아벤트무지크는 규모가 커지면서 오라토리오, 칸타타로 발전했다.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 바흐의  ‘크리스마스 칸타타’가 좋은 예다.

Plus Point

함께 감상하면 좋은 음반

디테리히 북스테후데
오르간을 위한 칸타타, 작품번호 BuxWV 255

오르간 복스 루미니스 앙상블
아벤트무지크는 예배 음악은 아니지만 연주 장소가 교회였던 만큼 다분히 종교적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진지하고 엄숙할 것 같다는 생각과는 달리 지친 영혼을 달래줄 즐겁고 쾌활하면서도 품위와 기품을 머금은 작품이 다수를 차지한다.


디테리히 북스테후데
오르간을 위한 토카타 라단조, 작품번호 BuxWV 155

오르간 독일 함부르크 성 야코비 교회  
북스테후데 작품에서 토카타를 빼놓을 순 없을 것이다. 토카타는 가장 오래된 기악곡 형식 중 하나다. 수세기 동안 지속된 이성과 감성의 속박에서 벗어나 끝없는 상상의 세계로 날아오르던 바로크인의 기상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