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가주 정신건강가족미션(Mental Health Family Mission)의 소장 김영철. 1996년 파송 선교사로 미국에 갔다. 여동생 두 명이 조현병으로 고통받았고, 그를 계기로 뇌질환자와 그 가족을 돌보는 일을 시작했다. 사진 이태경 조선일보 기자
미국 남가주 정신건강가족미션(Mental Health Family Mission)의 소장 김영철. 1996년 파송 선교사로 미국에 갔다. 여동생 두 명이 조현병으로 고통받았고, 그를 계기로 뇌질환자와 그 가족을 돌보는 일을 시작했다. 사진 이태경 조선일보 기자

미국에서 활동하는 김영철 목사에게 연락을 취한 건 ‘죽고 싶은데 살고 싶다’라는 그의 책을 본 후였다. ‘영혼의 싸움터를 추적한 르포’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책은 20년간 정신질환자 가족과 함께해 온 정밀한 사례집이자 고통의 이유를 묻는 치유의 보고서다. 그는 가족이라는 정신질환의 전쟁터를 누비는 종군 의사처럼 현장을 기술한다. 드러나지 않을 뿐 우울증과 신경증, 조현병과 자기애성 인격장애(NPD)는 부부끼리, 부모 자식 끼리 그 상처를 주고받으며 놀랍도록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그가 묘사한 미국의 한인 사회는 한국 사회 정중앙의 환부를 확대경처럼 드러낸다.

무정한 부모 앞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명문대 출신의 젊은이들, 망상에 빠져 칼을 든 청년들… 현장으로 응급 출동하는 김영철과 함께 그들의 역동을, 회복의 기적을, 막지 못한 참변을 가슴으로 읽는다. “정신질환은 착하고 똑똑한 청년들이 많이 걸립니다. 남에게 스트레스나 미움, 분노 등을 풀어내지 못하고 자신이 다 감당하고 참고 지내다가 뇌기능장애가 오는 겁니다.”

김영철은 미국 내 비영리기관 정신건강가족미션(Mental Health Family Mission)의 소장으로, 정신과 의사들과 함께 20~30대 청년 질환자들을 주로 돕고 있다. 1996년 선교사로 도미 후, 23년 만에 한국에 나온 김영철을 만났다. 그 자신, 상처 입은 치유자다. 여동생이 조현병으로 오랫동안 고통받았고 그에 대한 죄책감으로 미국에서 뇌질환 환자와 가족을 돌보는 일을 시작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정신질환의 거대한 스펙트럼 안에 있다고 했다. 어떻게 깨달았나.

“처음엔 부모님들이 찾아온다. 우리 애가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녀만 문제가 아니었다. 유전자의 영향도 있지만 만약 이 부모를, 이 환경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건강하게 살 수도 있었을 거다. 부모와 사회가 아픈 아이들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가장 약한 사람이 병자가 된다.”


조현병 환자인 여동생 사례가 절절하다.
“교회와 집만 오가던 여동생이 대학에 가서 문화 충격을 받았다. 87학번으로 시위가 한창이던 때라 학교 가면 전경들이 핸드백의 생리대까지 뒤지고, 교수들은 ‘교문 밖에서 친구들은 피 흘리는데 너희들은 뭐 하느냐’고 질타를 했다더라. 선배들은 고린내 진동하는 농구화에 막걸리를 담아서 마시라고 강권했고. 수치심에 괴로워했는데, 가족들이 그 메시지를 제대로 못 읽었다.”

여동생은 그에게 “적응할 수 없으니 다른 학교에 가고 싶다”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김영철은 “굳이 왜 그러느냐”고 무시했다. 어느 날부터 여동생은 학교에 가지 않았다. 깔끔 떨던 아이가 열흘이 넘도록 씻지 않아 냄새가 진동했다. “그때 대화를 시도했어야 했는데” 하고 김영철은 가늘게 한숨을 쉬었다.

증세가 어떻게 진행됐나.
“방에 틀어박혀 온종일 누군가와 얘기를 하더라. 씩 웃기도 하고 허공을 향해 큰소리로 웃어대기도 했다. ‘오빠, 이 소리 안 들려?’ 하며 맨발로 뛰쳐나갈 때도 많았다. 한겨울 새벽, 동생의 피 묻은 언 발에 양말과 신발을 신겨 데려올 땐 참 많이 울었다. 그 세월이 10년이었다.”

왜 그렇게 늦게야 병원에 갔나.
“당시에는 정신분열증의 증세를 몰랐다. 환청이나 환각이라는 것도 몰랐다. 우리 교회 담임목사는 우리보다 더 몰라서 무조건 기도와 믿음으로 이겨내라고 했다. 어느 날 동생이 ‘오빠, 나 귀신 들린 거 아니야?’라고 울면서 애원하더라. 그때 어머니가 병원 얘길 하셨다. ‘뭔가 잘못된 것 같다’고.”

심할 때는 칼로 가족을 위협하던 여동생은 병원에서 치료받자 평범한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회복됐다. 하지만 치료 시기가 늦은 탓에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는 없었다. 김영철은 동생을 보살피며 목사가 됐고, 선교사로 파송돼 미국에서 정신질환의 전쟁터에서 힘겹게 싸우는 한인 가족을 돕는 일을 하게 됐다.

일반 가정에서 구성원의 뇌질환 상태를 좀 더 일찍 감지할 수는 없나.
“동생 경우처럼 상식에서 벗어나는 말과 행동은 금방 표가 난다. 그때를 놓치지 말고 병원에 가서 물어봐야 한다. 안타까운 건 부모들은 자식이 이상하다는 걸 알아도 몇 년 동안 방치한다. 이웃, 친척 등 공동체에서 손가락질받을까 두려운 거다.”

자식을 사랑하면서도 자기 체면이 더 중요하다는 건가.
“그렇다. 자기애성 인격장애자인 부모는 자식이 자기 때문에 병들어 간다는 걸 모른다. 10년간 방에서 나오지 않던 스텔라라는 여성이 있었다. 해병대 출신인 그녀의 아버지는 두 딸을 강하게 키우기 위해 어릴 때부터 스텔라 자매에게 서로 폭력을 행사하도록 시켰다. 나중에 아버지를 찾아가서 ‘이 아이가 아프다’라는 걸 인정만 해줘도 딸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설득했다. 부모들의 말은 한결같다. ‘아픈 애가 아니다. 성격 문제다. 고생을 안 해서 그렇다’고. 인정 안 하면 다음 스텝을 밟을 수가 없다.”


그는 정신의학계의 연구 주제를 폭넓게 다룬다. 사진 이태경 조선일보 기자
그는 정신의학계의 연구 주제를 폭넓게 다룬다. 사진 이태경 조선일보 기자

유교 500년의 체면 문화는 태평양 건너까지 이어져 ‘자식이 아프면 집안의 수치’라는 인식으로 자리 잡았다. 알고 보면 우울증과 조현병은 반드시 가족이 알아챌 만한 이상징후를 보인다. 김영철의 여동생은 환청, 환시, 환후, 환미, 환촉 등 5가지 환각과 망상을 전부 겪었다고 했다. “여동생 셋이 한 방에서 지냈는데 한겨울에 담배 냄새가 난다고 창문을 열어서 동생들이 덜덜 떨면서 지냈다. 피부를 긁어대며 ‘오빠 눈엔 안 보이지만, 나는 벌레가 기어가는 게 느껴져’라고 호소하면서. 환각보다 더한 건 망상이에요. 과대망상, 피해망상, 관계망상….”

망상 때문에 사건 사고가 발생하곤 한다.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가 자기를 해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게 관계망상이다. 길 가다가 눈만 마주쳐도 ‘왜 날 욕하느냐?’고 하는 게 전형적인 증상이다.”

의사도 가족도 외면하던 환자들을 어떻게 치료하고 있나.
“약으로만 다 해결되지 않는다. 나는 그들과 함께 있어준다. 고통의 공유다. 같이 시간을 보내고 옆에서 말을 들어주는 거다. 뇌질환으로 부모를 구타해서 접근금지 명령을 받은 아이도 버림받았다고 슬퍼한다. ‘너 많이 힘들겠다’고 처지를 이해해주고 돌봐준다. 고통받는 부모들도 찾아간다. ‘어머니, 마음 압니다. 저도 지켜봤어요.’ 이런 ‘함께 함’만으로 가족들이 조금씩 희망의 빛을 발견하고 상태가 나아진다.”

한국 사회에도 공감이 안 되고 감정이입 능력이 없는 자기애성 인격장애 환자들이 점점 늘고 있다.
“주로 고학력·공주병·왕자병 환자들이 많다. 완벽주의자에 사회적 지위도 있어서 객관적인 자기 인식이 힘들다. 머리가 좋아 상대방의 수를 읽고 자기방어를 일삼으니 답이 없다. 약도 없고. 자기 중심성이 인이 박여서 타인의 마음 따윈 안 보이는 거다. 공감이 안 되니 남의 처지는 가볍게 무시하고.”

‘한국 사회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정신적 질환과 고통이 만연하다’는 수잔 오코너의 OECD 보고서를 인용했다. 한국인은 부부끼리, 부모 자식끼리, 그리고 학교 시스템에서조차 정신질환자들을 양산하고 있다고.
“작년에 LA에 있는 미국인 정신의학단체의 관리자급 대상 세미나에서도 ‘왜 LA 한인타운의 한인 자살률이 다른 인종보다 4배나 많은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한인 사망률의 절반 이상이 자살이다. 미국인들도 어떻게 한인들을 도와야 할지 고민한다.”

하지만 한국인의 사회 적응력은 타 인종에 비해 더 뛰어나지 않나. 오히려 생존력을 너무 앞세워서 문제인가.
“큰 맥락에서는 같다. 가족이 구성원의 우울증을 무시하고 병을 키워서 자살에 이르는 거다. 내가 장례예식을 인도한 스캇이라는 남자는 겉으로 보면 성공한 기업인이었는데, 추수감사절 전날 권총으로 자살했다. 아내와 친구들이 충격을 받았다. 유서에 모든 게 나와 있었다. ‘내가 이렇게 살 자신이 없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잖아’라고. 주변에서 진지하게 듣고 개입했다면 막을 수 있었다.”

차별이나 편애도 뇌질환을 촉발하는 주요 변수라고도 했는데.
“형제자매 중에 유독 뛰어난 아이가 있는 가정에서 나머지 아이들이 우울증을 겪는다. 탁월한 자녀는 제 갈 길을 잘 가는데, 부모는 명예욕에 유독 그 아이에게만 집중한다. 내가 만난 아픈 청년들도 형제자매가 다 명문대를 나왔다. 열쇠는 부모에게 있다. 뛰어난 형제와 비교하지 말고 ‘네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 기쁘다’고 온 마음으로 반복해서 말해줘야 한다.”

우리는 자살 충동을 겪는 사람들이 보내는 사인에 실제적으로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자살 충동이 있는 사람은 100% ‘우울하다’는 사인을 보낸다. 그때 정확하게 물어야한다. ‘혹시 자살할 생각이 있니?’ ‘죽고 싶은 생각이 들어?’ ‘구체적인 방법도 생각한 거야?’ 기름 붓는 것 같지만, 그 충동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누군가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하면 대충 넘어가지 말라. 자살을 결심한 사람은 주변부터 정리한다. ‘이 시계 너 가져라. 내 개 좀 맡아줘.’ 이때 타이밍을 놓치지 말고 치밀하게 물어줘야 한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그러면 풍선에 바람 빠지듯 자살 의지가 빠진다. 더 심각하면 의사와 상의하도록 조치해야 한다.”

조현병은 최근 한국에서 불특정 다수를 공격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으로 알려져 그 공포가 심각하다. 가족과 격리를 최우선 처방으로 제시했는데.
“가족과 지낼 수 있느냐 없느냐는 첫째, 폭력성 여부. 둘째, 약을 잘 먹을 수 있느냐다. 환자들은 약의 부작용을 염려해서 혀 밑에 감추고 안 먹는 경우도 많다. 약을 먹는다는 건 병을 인정한다는 거다. 칼로 주먹으로 위협하는 것뿐 아니라 ‘죽이겠다’고 말로 협박하는 것도 폭력이다. 이런 상황이 생기면 병원에 강제 조치해야 한다. 어렵다면 빨리 이사하고 접근을 막은 후 경찰에 신고하라. 병원에 입원하면 자기 병에 대한 인식이 생긴다. 가족들도 그때부터 변화를 보여야 한다. 진심으로 사랑을 보여줘야 한다.”

얼마 전에는 한 조현병 환자가 의사를 찾아가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 있었다.
“공격적인 정상인의 폭력성과 조현병 환자들의 폭력성을 비교하면 조현병 환자가 훨씬 덜하다. 사건이 한 번 터지면 확대 재생산돼서 병에 대한 오해가 깊어지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뇌질환자들과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뇌질환자 부모들이 신기해하며 나한테 묻는다. ‘우리 애가 어떻게 소장님하고는 대화가 되느냐’고. 나는 그들을 일반인과 똑같이 대한다. 미국의 표준진단체계인 DSM-5 테스트에 따르면 정신질환이 아닌 사람이 거의 없을 거다. 당신도 나도 아픈 부분이 있는 환자다.”

김지수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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