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두산타워(가운데 가장 높은 빌딩) 옆으로 펼쳐진 창신동 전경. 사진 박준형 인턴기자
동대문 두산타워(가운데 가장 높은 빌딩) 옆으로 펼쳐진 창신동 전경. 사진 박준형 인턴기자

글로벌 의류 업체 유니클로와 자라는 많은 공통점이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공통점은 글로벌 패스트패션(패스트푸드처럼 비교적 저렴한 가격대로 손쉽고 빠르게 유행을 즐길 수 있는 패션의류) 업체라는 점과 회사 창업주가 모국인 일본과 스페인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유니클로 창업주 야나이 다다시(柳井正)는 부친이 운영하던 동네 양장점을 이어받아 사업을 키웠고, 자라 창업주 아만시오 오르테가 가오나(Amancio Ortega Gaona)는 1975년 자라를 설립했다. 그리고 이들은 반세기도 안 된 시점에 세계적인 기업을 일궈냈다. 패스트패션의 핵심은 옷을 빨리 디자인하고 생산한 후 판매하는 것이다. 자라의 경우 디자인 후 생산 그리고 전 세계 판매장 진열까지 최소 14일, 평균 20일밖에 걸리지 않는다. 전통적인 패션 산업의 주기는 계절 변화에 따른 6개월(FW·SS)이다.

우리나라에도 패스트패션의 원류라고 할 만한 지역이 있다. 바로 동대문이다. 다만 유니클로와 자라는 패션의류 디자인과 제조, 판매 등을 모두 관할하는 데 비해 동대문은 이러한 부분들이 서로 분리돼 있다. 동대문 시장은 외관상 거대한 패션의류 판매지역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동대문 시장과 주변 지역을 함께 들여다보면 서로 다른 지역들이 상당히 촘촘하게 연결돼 있음을 알게 된다. 주변의 창신동과 신당동 일대의 봉제공장들과 거대한 패션 산업 생태계 안에서 상호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대문 의류도매상에 고용된 디자이너들이 동대문 종합시장(패션의류 제조에 사용될 원단과 부자재를 판매하는 시장)에서 소재를 확인하고 고른 후, 이를 인근 지역에서 제조하게 한 후 다시 동대문 시장에서 판매하는 수순을 따른다.

사실 봉제공장들이 동대문 주변 지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동대문 시장을 중심으로 동북 권역 즉 동대문구, 중랑구, 종로구, 성북구, 강북구, 도봉구, 노원구 등지에는 상당한 숫자의 작은 봉제공장들이 존재한다. 만약 길을 가다가 다세대 주택 창문에 걸린 작은 호스에서 수증기가 나오는 곳이 있다면, 봉제공장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제조 단계 내부도 여러 단계로 나뉜다. 옷을 대량으로 만들기 전에 누군가는 해당 옷의 샘플을 한 번 만들어서 테스트를 해야 하고 패턴을 만든 후 원단을 재단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재봉하고, 단추(부자재)를 달고, 다림질을 해서 최종적으로 판매처에 보낸다.

이러한 단계들은 서로 분화돼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지역적으로 분업화돼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중구 신당동 일대는 샘플과 패턴 작업하는 업체들이 많이 있는 데 비해, 종로 이북 창신동 일대에는 아주 작은 규모의 봉제공장들이 있다.

중랑구 일대의 봉제공장들은 동대문 시장에 납품하기보다는 수출용 의류를 주로 생산한다. 이에 따라 동대문 시장은 단순한 의류 판매점들의 집결지이기보다는 패션산업의 디자인과 생산, 판매가 이뤄지는 거대한 클러스터의 한 축이다.

대략 수치로 보면, 청계 6가 사거리를 중심으로 반경 500m 안에 5000개의 원부자재 판매처, 1만여 의류도매 업체, 수백 개의 패턴 샘플실, 그리고 주변의 수많은(숫자를 가늠하기 현실적으로 어려운) 봉제공장들이 존재한다.

동대문 의류시장에는 큰 규모의 쇼핑몰들이 존재하는데, 쇼핑몰의 성격이 건물마다 차이가 있다. 청계천변을 따라서 1960~70년대부터 존재했던 전통 도매시장(원조 평화시장과 평화시장 이름을 사용하는 시장들)이 있고, 현재의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과거 동대문운동장) 주변에는 젊은층 대상 의류를 판매하는 신흥 도매시장이 존재한다.

그리고 길 건너편에는 두타(두산타워)와 밀리오레가 있으며 최근에는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아울렛도 들어섰다. 추후 연재에서 더 이야기하겠지만, 진정한 동대문 클러스터 경쟁력의 핵심이라 할 동대문 종합시장이 청계천 북쪽 동대문 건너편에 자리한다. 동대문 패션클러스터 내부에 존재하는 동대문 의류시장마저도 크게 원부자재 시장과 의류 소매시장 그리고 의류 도매시장으로 나뉘는 형편인 것이다.


장사 안 돼 권리금 낮아진 동대문

근래에 동대문 시장에서 자주 들리는 이야기 중 하나는 ‘장사가 안 돼 힘들다’는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들릴 수 있으나, 동대문 시장이 장사가 잘되는지 여부는 동대문 북쪽 창신동 골목길(창신길이라는 메인도로)에 얼마나 많은 오토바이들이 자주 왔다 갔다하는지를 확인하면 된다. 동대문 의류도매시장의 업체들이 봉제공장에 옷 생산 주문을 하게 되면, 동대문 종합시장의 원단이 해당 공장들(창신동)에 뿌려지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원단을 운반하는 최적의 교통수단은 다름 아닌 오토바이다. 따라서 원단을 가득 실은 오토바이들이 대략 오후 시간대에 많이 움직인다면 동대문 시장은 호황이라고 볼 수 있다. 필자가 보기에도 근래 창신길을 왕래하는 오토바이 숫자는 5년 전에 비해 급감했다. 그리고 이를 대변하듯 동대문 시장(쇼핑몰)의 권리금도 과거에 비해 낮아졌다.

동대문 시장이 위기에 처한 이유로 변화된 사람들의 소비행태를 꼽는다. 대표적인 소비층인 밀레니얼세대(1981~2000년 출생)가 오프라인 시장에서 물건을 구매하지 않고 온라인이나 모바일 플랫폼을 통해 쇼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앞서 설명했다시피 동대문 시장에는 의류 소매시장뿐 아니라 의류 도매시장도 존재한다. 그리고 온라인 쇼핑몰은 말 그대로 쇼핑몰 즉 의류 판매 회사들이지, 이들이 의류 제조를 담당하지는 않는다. 온라인 쇼핑몰 업체들은 주로 동대문 의류도매시장으로부터 물건을 공급받아서 온라인 채널에서 판매한다. 따라서 많은 수의 온라인 쇼핑몰 업체들이 동대문 인근에 있다.

만약 온라인 쇼핑몰 매출이 증가하는 경우, 연관된 동대문 의류도매시장 매출은 증가할 것이다. 다만, 일반인들과 접점이 형성되는 의류소매 업체의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이들은 온라인 쇼핑이 활성화될수록 사업에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20세기 말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 이후 밀리오레와 두타의 전성기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경제 위기 속에서도 저렴하고 다양한 디자인을 찾는 소비자들에게 동대문 패션을 판매했다. 하지만 동대문 패션의 주요 유통처가 온라인으로 옮겨지자, 이들 오프라인 소매점들은 경쟁력을 잃게 된다. 두타는 2016년 5월 면세점으로 일부 용도를 전환했다. 1층에는 쉐이크쉑 3호점이 있다. 강남점, 청담점에 이어서 세 번째다.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일부 쇼핑몰에서는 1층에도 공실이 발견된다. 경기가 활황인 미국의 중심지 뉴욕 한가운데 과거 많은 사람들이 쇼핑을 즐겼던 맨해튼 5번가의 1층 상점마저도 빈 공간이 생기는 상황이다. 전 세계 오프라인 기반 리테일(판매업)은 거대한 패러다임의 격변기에 놓여있다. 동대문 시장 역시 이 패러다임의 변화를 거스를 수는 없다. 동대문 패션 클러스터에도 혁신이 필요한 이유다.


▒ 김경민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부원장, 공유도시랩 디렉터, 금융위원회 금융발전심의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