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15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극한직업’의 한 장면. 사진 CJ엔터테인먼트
개봉 15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극한직업’의 한 장면.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영화 ‘극한직업’이 이렇게 성공하리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개봉 15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하더니 역대 코미디 영화 흥행 순위 1위였던 ‘7번방의 선물’까지 제쳤다. 올 설 연휴 극장가에 이렇다 할 대작이 없었다지만 이 정도의 성공은 영화평론가뿐 아니라 영화계 전체에서도 뜻밖이라는 반응이다.

‘극한직업’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마포경찰서 마약반원 5명이 마약밀매조직을 잡기 위해 위장 창업한 치킨집이 이른바 ‘맛집’이 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루고 있다. 이렇다 할 반전도 없고 복선도 없다. 등장인물들의 사연으로 눈물을 짜내려고 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재미’라는 목적에 충실한 영화다.


영화로만 보고 넘기기엔 팍팍한 삶

영화평론가들이 ‘극한직업’ 1000만 관객 돌파 비결을 명쾌하게 내놓지 못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한국 영화계에서 전에 본 적 없는 새로운 종(種)의 1000만 영화다. ‘많은 제작비, 톱 배우, 주제 의식’이라는 1000만 영화의 흥행 방정식 중 ‘극한직업’에 들어맞는 건 하나도 없다. 오히려 이 영화의 흥행 비결을 명쾌하게 짚어내는 건 영화평론가가 아니라 서민금융 전문가다. 영세 자영업자에게 정책자금을 지원하는 서민금융진흥원 실무자들은 ‘극한직업’ 속 고 반장(류승룡)의 캐릭터에 공감한다. 한 서민금융 담당자는 이런 말을 했다.

“능력 있고 나이 어린 후배들에게 승진 순서를 뺏기고 집에서는 거실 소파에 앉지도 못하고 겉도는 게 요즘 가장들이다. 그러다 명예퇴직이라도 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치킨집이라도 차린다. 열등감과 패배감 속에 시작한 장사가 잘될 리 없으니 결국 은행이나 2금융권을 찾게 된다.”

설 자리가 위태위태한 월급쟁이나 높은 임대료와 대출 이자로 시름에 잠기는 자영업자가 영화 속 고 반장의 판타지 같은 성공 스토리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극한직업’이 때를 잘 만났다면 경쟁작이 빈약한 설 연휴를 노린 덕분이 아니라 고용 불안이 극에 달하고 폐업에 내몰린 자영업자가 100만 명에 달하는 지금 이 시점에 개봉한 덕분일 것이다.

그렇다면 ‘극한직업’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유효 기간 두 시간짜리 웃음이 전부일까. 영화를 영화로만 보고 넘기기에는 자영업자의 삶이 너무 팍팍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자영업(숙박·음식점업)의 창업 5년 후 생존율은 17.9%다. 식당 다섯 곳이 문을 열면 네 곳은 5년 안에 망한다는 말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자영업자는 550만 명. 백종원의 손길을 기다리기에는 전국에 너무나 많은 골목이 있고, 골목마다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들이 넘쳐난다. 이들이 ‘극한직업’ 속 대박 맛집인 ‘수원왕갈비통닭’에서 배울 수 있는 건 없을까. 그래서 준비했다. 수원왕갈비통닭에서 배우는 장사 잘하는 집의 비결.


영화 속 장사 비결 1│결국은 사람

일본의 장사 컨설턴트인 혼다 마사카츠는 ‘장사 잘하는 집’의 비결을 한 단어로 정리했다. 바로 ‘사람’이다. 장사는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다. 여기까지는 모두가 잘 이해하고 있다. 동시에 장사는 사람을 쓰는 일이기도 하다. 많은 자영업자가 이 부분을 간과하고 있다가 큰코다치곤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극한직업’은 사람을 잘 쓰는 일이 장사의 성공에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쳐주는 생생한 교과서와 같다.

고 반장과 함께 수원왕갈비통닭을 운영하는 마약반원들은 자영업의 관점에서 봤을 때 완벽한 직원이라고 할 수 있다. 혼다 마사카츠의 ‘장사 잘하는 집’의 첫 장 제목은 ‘매장 안에 들어온 고객을 알아차리지 못하다니!’다. 책에 나오는 가게의 직원들은 서로가 자기 일에 바빠서 매장 전체를 챙기는 눈썰미가 없다. 금방 지쳐서 몸을 느리게 움직인다. 새로 들어온 직원과 오래 일한 직원이 팀워크가 맞지 않아 서로의 에너지를 갉아먹기만 한다. 손님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직원들이 아무도 챙기지 않는다면 그 손님이 다시 가게에 오겠는가.

그에 비하면 고 반장의 반원들은 타고난 장사꾼들이다. 오랜 형사 경력 덕분에 이들은 눈썰미와 체력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가게를 가득 채운 손님 중 누군가가 손을 들면 고 반장은 놓치지 않고 달려간다. 테이블에서 누군가가 음료수를 시키면 어느샌가 장 형사(이하늬)가 곁에 서 있다. 유도 국가대표 출신인 마 형사(진선규)는 매일 수백 마리의 닭을 튀기면서도 거뜬하다. 야구부에서 맷집을 키웠다는 막내 형사 재훈(공명)은 늘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 부지런히 움직인다.

팀워크는 말할 것도 없다. 각자 맡은 일을 하면서도 빈자리를 메꾸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들이 왕갈비양념이라는 시크릿 소스 없이 프라이드 통닭만 냈어도 결국은 맛집 반열에 올랐으리라는 확신이 든다. 장사가 잘되는 가게는 사장과 직원이 한 가족처럼 움직인다. 뻔한 소리가 아니라 당연한 진리다. 소갈비의 대명사인 을지로 조선옥에는 입사 60년 차 주방장이 고기를 굽고 있다. 서울식 불고기의 원조 격인 한일관 홀을 지키는 이는 입사 50년 차의 칠순 직원이다. 오래된 맛집은 사장과 직원이 가족보다 더 끈끈하게 이어진다. 수원왕갈비통닭의 고 반장과 부하직원들은 장사를 시작하기 전부터 한 가족 같았다. 사람이 이렇게나 중요하다.


영화 속 장사 비결 2│위기는 온다

수원왕갈비통닭은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맛집 대열에 합류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문제가 생긴다. 장사가 본업이 아니었던 탓에 지나치게 많은 손님이 몰리자 과부하가 걸렸고, 다른 집 치킨을 배달시켜 사용하는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TV 고발 프로그램에 관련 사실이 방송되면서 수원왕갈비통닭은 위기를 맞이한다.

과정이야 조금씩 다르겠지만 이런 일은 실제로도 비일비재다. 맛집으로 소문나면서 손님이 몰리면 맛이나 서비스에 문제가 생기고 결국 오래된 단골손님마저 발길을 끊으면서 뜨내기손님만 남는 경우가 적지 않다. 수원왕갈비통닭의 대응은 이런 문제로 고민하는 자영업자들에게 한 가지 해법이 될 수 있다. 고 반장과 팀원들은 문제를 덮으려 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길을 택한다. 빠르고 진정 어린 사과야말로 위기를 넘어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걸 이들은 보여준다. 그리고 전후 관계가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몰려오는 손님을 다 받지 않고 정해진 분량만 파는 식으로 맛과 서비스를 유지하려는 모습도 보여준다. 백종원이 만든 최고의 맛집이라고 할 수 있는 포방터돈가스집을 떠올리게 하는 대처다.

‘극한직업’은 섣부른 프랜차이즈화가 얼마나 위험한지도 보여준다. 수원왕갈비통닭의 프랜차이즈 분점은 맛과 서비스 모두에서 본점에 미치지 못한다. 그렇다고 고객들이 분점만 욕하고 마는 게 아니다. 그들은 소셜미디어에서 수원왕갈비통닭이라는 브랜드 전체를 싸잡아 욕한다.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프랜차이즈 분점은 본점의 명성까지 갉아먹는다. 고 반장과 반원들은 프랜차이즈 분점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문제를 시정하려고 하지만, 대부분의 자영업자에게는 불가능한 이야기다.

물론 이런 성공 비결을 아무리 외워도 실제 대박 맛집이 되는 건 낙타가 바늘귀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해도 대부분의 자영업자는 봉급생활자보다 적은 돈을 손에 쥔다. 원재료 가격도 오르고 최저임금도 오르고 임대료도 오른다. 음식값은 손님 눈치 탓에 찔끔 올리기도 쉽지 않다. 정부에서는 강한 자영업자를 만든다고 하는데, 자영업은 애초에 서로 간의 경쟁이기에 누군가가 강해지면 다른 누군가는 반드시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극한직업’을 보며 두 시간 내내 시원하게 웃고도 영화관을 나서는 발걸음이 어쩐지 씁쓸한 이유다.

늦은 밤 영화관 앞에는 환하게 불을 밝히고 손님을 기다리는 가게가 수두룩했다. 대부분의 테이블은 텅 비어 있었지만 자영업자들은 쉽게 불을 끄지 못하고 있었다. “소상공인은 목숨 걸고 장사한다”는 고 반장의 대사가 귓가를 쉽게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