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가을 중국 톈진에 개원 예정인 미국 줄리아드음대의 중국 분원 조감도. 사진 줄리아드 음악원
2019년 가을 중국 톈진에 개원 예정인 미국 줄리아드음대의 중국 분원 조감도. 사진 줄리아드 음악원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결정 이후, 재정적으로 난관에 봉착한 영국 음악계는 일제히 아시아로 눈을 돌렸다. 세계 최대의 클래식 축제인 ‘BBC 프롬스’도 마찬가지다. 2016년 호주, 2017년 두바이에 이어, 2019년 10월 30일부터 11월 4일까지 도쿄와 오사카에서 ‘프롬스 인 재팬’이 열린다. 프롬스 사무국이 다이와 증권그룹을 로컬 스폰서로 유치하면서 밝힌 분산 개최의 명분은 ‘2020년 도쿄 올림픽의 문화 축전’이다.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을 준비하는 중국에도 프롬스가 같은 논리로 접근하리란 예측이 가능하다.

2020년대를 클래식 중흥기로 삼으려는 중국 정부의 노력이 더욱 정교해지고 있다. 2019년 가을, 미국 줄리아드음대의 톈진 분원이 개원한다. 톈진시는 2012년 톈진 음악원을 주축으로 톈진신금융투자회사를 끌어들여 인천 송도를 제치고 줄리아드 분교 유치권을 따냈다. 1984년 줄리아드 총장 취임 시 6300만달러(약 706억원) 규모였던 기부금을 2016년 퇴임 시 9억3000만달러로 늘린 조지프 폴리시가 최고 책임자로 부임한다. 폴리시는 이미 뉴욕 필하모닉,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연계해 동아시아 지역의 줄리아드 진학 희망자들에게 최상의 오케스트라, 실내악 앙상블 교육을 실시하며 중국 정부와 견고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청사진을 공개했다. 베이징 중앙음악원과 상하이 음악원, 등을 제치고 중국 최고 음대가 되는 건 시간문제로 보인다. 서울의 한국예술종합학교, 도쿄 예술대학 입장에서는 지역 내 강력한 경쟁자가 생겼다.

중국 정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예 미국 내 유력 음대 인수에 나섰다. 장수의 종타이 교량 철강 구조 회사(Jiangsu Zhongtai Bridge Steel Structure Company)는 미국 뉴저지주 프린스턴에 소재한 웨스트민스터 합창대학(Westminster Choir College) 인수전에 참여한다. 웨스트민스터 합창대의 실소유주인 라이더대는 인수 금액으로 4000만달러를 제시한 중국 교육그룹 카이웬(Kaiwen)의 배후가 종타이 교량 철강 구조 회사이고, 이 업체가 사실상 중국 국영기업이란 점을 대외에 공개했다. 미국 음악계는 웨스트민스터 합창대의 인수 모델이 미국 내 재정 위기를 겪는 음대로 확산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줄리아드음대를 방문한 펑리위안 여사. 사진 줄리아드 음악원
지난해 12월 줄리아드음대를 방문한 펑리위안 여사. 사진 줄리아드 음악원

中 지도부 클래식 음악에 영향력 행사

하지만 미·중 무역전쟁에도 불구하고, 줄리아드와 중국 정부의 밀월관계는 비슷한 사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긴밀하다. 2015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미를 함께한 퍼스트레이디 펑리위안 여사는 줄리아드 성악과 학생에게 중국 민요를 지도했고, 2017년 줄리아드는 이를 이유로 펑 여사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인민해방군 가무단 출신의 펑리위안은 중국 음악원을 석사 졸업했고,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 기간에는 영부인 김정숙 여사를 베이징 국가대극원으로 초청할 만큼 외교적 우의를 다지는 도구로 음악을 즐겨 사용한다. 시진핑 주석의 축구 굴기에 중국 기업이 동참하듯, 중국의 영국 악단 지원, 미국 음대 진출에는 다분히 펑 여사의 영향력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덩샤오핑의 개혁 개방 이후 중국이 내놓은 대표적 클래식 스타는 피아니스트 윤디 리, 랑랑, 유자 왕이다. 이들은 모두 도이체 그라모폰(DG) 레이블과 계약해 음반을 내놨고, 세계적 악단과 협연이 끝나면 중국 기업의 후원이 뒤따랐다. 유럽과 미국의 명문 오케스트라들이 이들을 협연자로 내세워 중국 본토를 공략했고, 중국 내 피아노 산업이 부흥을 맞으면서 장 하오천, 로렌 장이 후대를 이었다.

그러나 201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클래식 음악을 대하는 중국 정부의 기조에 변화가 감지된다. 베이징과 상하이를 벗어난 대도시 클래식 향유 인구의 저변과 질을 강화하는 데 힘쓰면서, 해외 명문 기악 콩쿠르에 중국 인재를 우승시키는 데 더는 목매지 않는다. 대신 지휘자 유롱을 기수로 중국 오케스트라의 국제화에 총력을 기울인다. 2014년 정명훈, 서울시향과 함께 BBC 프롬스에 데뷔한 차이나 필하모닉의 음악감독 유롱은 ‘2019년 중국 클래식의 대표 아이콘’이다. 유롱은 영국의 명문 매니지먼트 아스코나스홀트, DG와 정식 계약을 맺었고 뉴욕 필하모닉, 런던 필하모니아, 함부르크 엘브필하모니를 객원 지휘하면서 베이징에서 열린 DG 120주년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현재 유럽 악단들이 수익을 염두에 두고 아시아 지휘자를 섭외할 때, 최고의 선택은 일본의 오자와 세이지나 한국의 정명훈이 아니라 중국의 유롱이다. 세계 음악계를 좌우하는 인물은 기악 연주자가 아니라 캐스팅의 권력이 집중되는 지휘자란 점을 중국 음악계도 잘 알고 있다. 중국 국립발레단 심포니 수석 지휘자 황이, 앤트워프 심포니 음악감독 지명자 엘림 찬의 미래에 유럽 매니지먼트가 투자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중국을 나와 미국에서 공부한 스타 연주자들을 붙잡기 위한 주요 음대들의 노력도 가시화된다. 최근 손가락 부상이 심상치 않은 랑랑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뜻을 털어놓았다. 이에 모교인 필라델피아 커티스 음악원은 랑랑과 유대를 돈독히 하면서 활동 추이를 주시 중이다.

주로 선진국에서 지역 사회가 클래식과 건전하게 연관되기 위해 추진하는 ‘유스 오케스트라 사업’도 중국 광저우에서 본격화되고 있다. 2017년 첼리스트 요요마를 예술감독에 임명해 출범한 ‘광둥 청년 음악 문화(Youth Music Culture Guangdong)’ 프로젝트는 광저우 심포니와 싱하이(星海) 콘서트홀의 명성을 드높이는 동시에, 지휘자 유롱과 요요마를 앞세워 35세 이하의 전 세계 인재들을 중국으로 유입하기 위한 사업이다. 광저우에 공장을 보유한 폴크스바겐 중국법인에 프로젝트의 메인 스폰서를 맡겼다.

유럽과 미국 오케스트라 입장에서 서울은, 중국 투어 일정에 엮어 추가 공연을 고려하는 ‘지방’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우리가 2015년 조성진의 쇼팽 콩쿠르 우승 이후, 그를 섭외하는 데 관객과 주최사가 목을 매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이전 논의에 지역이기주의가 겹쳐 몸살을 앓는 동안 중국은 클래식 음악의 저변을 확고히 하는 거시적 관점과 미시적 노하우에 눈 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