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6월 19일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첫 경기인 콜롬비아 전에서 2대1로 승리했다. 이를 원동력으로 16강에 진출했다. 사진 연합뉴스
일본은 6월 19일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첫 경기인 콜롬비아 전에서 2대1로 승리했다. 이를 원동력으로 16강에 진출했다. 사진 연합뉴스

일본이 러시아 월드컵에서 결선 토너먼트에 올랐다.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피파 랭킹 61위)은 조별리그에서 남미 강호 콜롬비아(16위)를 2 대 1로 이겼고, 세네갈(27위)과는 아쉽게 2 대 2로 비겼다. 폴란드(8위)에는 1 대 0으로 졌지만 조별리그를 통과, 16강에 진출했다.

일본의 역대 월드컵 최고 성적은 2002년 한·일 월드컵,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이룬 16강이다. 일본이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우선 일본축구협회(JFA)의 빠른 판단을 꼽을 수 있다. 일본축구협회는 2015년 3월부터 대표팀을 이끈 바히드 할릴호지치(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감독을 올해 4월 경질했다. 월드컵을 약 2개월 앞둔 상황이었다. 성적 부진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더 큰 문제는 대표팀 내 불화였다. 할릴호지치 감독은 대표팀의 주축 선수였던 혼다 게이스케(32·멕시코 파추카), 가가와 신지(29·독일 도르트문트) 등 해외에서 뛰고 있는 베테랑 선수들과 갈등을 빚었다. 할릴호지치 감독은 혼다를 중용하지 않았고, 혼다 역시 “할릴호지치 감독의 축구를 따르는 것이 부끄럽다”고 밝힌 바 있다. 혼다는 현재 일본 대표팀에서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중요한 선수다. 실력도 뛰어나다. 그는 이탈리아 명문 구단 AC밀란에서 활약했고, 지난 시즌부터는 멕시코 프로 축구팀 파추카에서 뛰고 있다.

월드컵에 출전하는 다른 팀에 비해 객관적 전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 일본이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혼다, 가가와 등 해외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능력 있는 선수들이 필요하다. 동시에 그들을 어떻게 활용하고, 팀을 하나로 만들지도 중요하다. 스포츠 세계에서 선수들이 마치 한 몸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원(One)팀’은 전력의 열세를 뒤집고 경기에서 승리할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일본축구협회는 할릴호지치 감독 체제에선 일본이 원팀이 되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대표팀 새 사령탑에 가시와 레이솔, 비셀 고베 등 일본 프로 축구팀을 이끌었던 니시노 아키라 일본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을 선임했다. 니시노 감독은 일본 프로 축구팀 감독으로 역대 최다인 270승을 기록했고, 2016년부터 일본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일본 축구의 전략과 기술은 물론 유럽 등 해외 리그에 진출한 일본 선수들의 상황을 점검하는 데 주력했다. 일본 축구계에선 ‘니시노 감독보다 일본 축구를 더 잘 아는 인물이 없다’는 평가가 많다.

니시노 감독은 새롭게 팀을 짜는 것보다 일본이 잘하는 축구를 더욱 강화하는 데 주력했다. 할릴호지치 전 감독은 빠른 역습 축구와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한 압박 축구를 강조했다. 하지만 이는 일본의 전통적인 축구 스타일과 맞지 않았다. 일본은 그동안 미 드필드에서 짧은 패스를 기본으로 점유율을 높이면서 득점 기회를 만드는 축구를 했다. 이는 스페인의 ‘티키타카(짧은 패스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스페인 특유의 점유율 축구)’와 비교되며 일본에서 ‘스시타카’로 불렸다.

과거 니시노 감독이 이끌었던 일본 프로축구팀 가시와 레이솔에서 선수로 뛴 경험이 있는 홍명보 대한축구협회 전무(전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는 “일본 축구는 중원에서 찔러주는 침투 패스, 사이드에서 올리는 크로스 등 미드필드에서 연결되는 패스의 질이 좋다”고 일본 축구를 분석했다.

니시노 감독은 할릴호지치 감독에게 홀대받던 혼다와 가가와는 물론 나가토모 유토(32·터키 갈라타사라이), 하세베 마코토(34·독일 프랑크푸르트) 등 해외파 선수들을 대표팀에 대거 발탁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비판도 많았다. 해외파 선수 대부분은 노장에 속한다. 이들이 대표팀에 복귀하면서 일본의 평균 연령(28.2세)은 역대 최고령이 됐다. 그만큼 속도가 떨어지고, 체력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일본 내에선 ‘아저씨 재팬’이란 혹평도 나왔다.

하지만 니시노 감독의 전략은 성공했다. 일본은 월드컵 조별리그 H조 1차전인 콜롬비아의 경기에서 2 대 1로 승리했다. 가가와가 상대 팀 페널티킥 박스 안에서 파울을 얻어낸 후 직접 페널티킥을 성공시켰고, 혼다는 두 번째 골을 어시스트했다. 혼다는 2차전 세네갈 경기에선 2 대 1로 팀이 지고 있을 때 동점골을 터뜨렸다.

니시노 감독은 콜롬비아 경기에서 승리한 후 “상대팀에 대응하는 전략을 쓰는 것만으로는 승리할 수 없다”며 “우리의 장점을 어떻게 극대화할 수 있을지 고민했고 선수를 기용했다”고 말했다.


선수 신뢰하고 플레이 존중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F조 조별리그 첫 경기인 스웨덴전 초반 10분 동안 공격을 주도했다. 하지만 이후 미드필드, 수비 라인을 뒤로 내리며 수비적으로 경기를 이끌어 나갔다. 한국은 1 대 0으로 패배했고, 유효 슈팅 제로(0)를 기록하며 ‘한국 축구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물론 한국은 마지막 조별리그 경기인 독일전에서 투지를 발휘하며 2 대 0으로 승리했고, 비판 여론을 잠재웠다. 피파 랭킹 1위이자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우승국인 독일을 꺾었지만 ‘첫 경기부터 잘했으면…’이란 아쉬움을 남기는 월드컵이었다.

반면 일본은 첫 상대인 콜롬비아는 물론 2차전 세네갈과의 경기 내내 공격적인 축구를 펼쳤다. 3차전 폴란드 경기에선 패했지만 16강에 진출했다.

축구는 상대적인 게임이고 경기 흐름에 따라 공격과 수비가 왔다갔다 변한다. 일본이 콜롬비아, 세네갈 경기에서 공격적으로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선수들이 자신감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런 자신감은 팀의 방향을 정하는 감독으로부터 시작한다. 선수들을 믿고 그들이 원하는, 잘하는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전술을 짜고, 선수가 최상의 컨디션으로 경기에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감독의 역할이다. 이를 위해선 선수들과의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실제로 콜롬비아 경기 후 일본 대표팀 선수들은 하나같이 승리의 원동력으로 소통을 꼽았다. 대표팀 주장 하세베 마코토는 “감독이 바뀐 후 감독과 선수 그리고 선수 간 소통이 원활해졌다”고 말했다.

니시노 감독은 선수들과 지속적으로 대화를 하면서 그들의 역할에 대해 고민했다. 선수들과 불화가 끊이지 않았던 할릴호지치 전 감독과는 비교되는 모습이다. 특히 니시노 감독은 혼다, 가가와의 역할을 전략적으로 활용했다. 물론 그들과 많은 논의를 한 후 결정했다. 가가와가 선발로 뛰면서 상대 수비를 지치게 한 뒤 후반 조커로 혼다를 투입한 것이다. 전략은 적중했고 혼다는 콜롬비아, 세네갈전에서 교체 투입돼 1골 1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일본 프로 축구팀 세레소 오사카를 이끌고 있는 윤정환 감독은 “일본 축구와 선수를 가장 잘 아는 니시노 감독의 전략이 이번 월드컵에서 통했다”며 “선수를 믿고 충분히 소통하면서 그들이 원하는 플레이를 가장 잘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박용선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