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의 축제 수퍼볼이 2월 3일 막을 내렸다.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가 NFL(미 프로풋볼) 수퍼볼(미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LA 램스를 13대3으로 누르고 우승했다. 사진 AFP 연합
미국인들의 축제 수퍼볼이 2월 3일 막을 내렸다.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가 NFL(미 프로풋볼) 수퍼볼(미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LA 램스를 13대3으로 누르고 우승했다. 사진 AFP 연합

미국인들의 메가 스포츠 이벤트인 53회 수퍼볼(Super Bowl LIII)이 2월 3일 막을 내렸다. 풋볼 경기가 열리는 매년 2월 첫째주 일요일, ‘수퍼 선데이(Super Sunday)’는 이제 미국 최대 명절인 추수감사절과 동급이 된 지 오래다. 이날 사람들은 가족과 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여 음식을 먹고 마시며 경기를 관람한다. 올해 전미소매업협회(NRF)는 미국인들이 수퍼볼 당일 148억달러(약 16조5000억원)를 쓴 것으로 추정했다.

수퍼볼 경기 내용과 함께 주목받는 것이 수퍼볼 광고다. 평균 1억명 정도의 시청자가 집에서 TV로 경기를 관람하다 보니 경기 중간중간 방영되는 수퍼볼 광고를 홍보의 장으로 이용하려는 기업들의 경쟁도 치열하다. 실제로 올해 NRF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수퍼볼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으로 ‘경기 내용(43%)’에 이어 ‘광고(23%)’를 꼽았다.

올해 수퍼볼 광고는 초당 단가가 약 2억원에 달했다. 수퍼볼 경기를 중계하는 주관 방송사인 CBS에 따르면 30초짜리 광고 집행 비용 최고가는 525만달러(약 60억원)를 기록했다. 초당 17만5000달러인 셈인데, 정규 NFL 시즌 광고 집행비 평균(62만5000달러)의 8배가 넘는 수준이다.

단가가 높았던 만큼 올해도 수퍼볼 광고 시장에서는 천문학적인 돈이 오고갔다. 미국의 미디어 조사 회사 칸타르 미디어에 따르면 올해는 4쿼터로 이뤄진 수퍼볼 경기 중간 총 57개 광고가 집행됐다. 광고 집행비는 방영 시점을 비롯해 어떤 패키지 딜을 선택했는지 등에 따라 달라진다. 이 모든 것을 포함해 기업들은 올해 수퍼볼 광고 집행비로 총 3억8200만달러(약 4300억원)를 썼다. 2017년, 2018년에 이어 역사상 세번째로 큰 규모다.

가장 광고비를 많이 쓴 회사는 앤하이저부시(AB) 인베브로 5분 45초 광고에 5900만달러(약 665억원)를 썼다. 2위를 기록한 아마존은 2500만달러(약 282억원)를 투입했다. 그 뒤를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 도이치텔레콤, 도요타가 이었다. 이들은 각각 2000만달러(약 226억원)씩을 수퍼볼 광고에 썼다. 업종 중에서는 자동차 회사들이 전통의 수퍼볼 광고 강자였다. 6분 30초간 총 6600만달러(약 774억원)어치 광고를 집행했다. 다만 전체 광고 중 자동차 광고 비중은 2015년 43%와 비교해 38%까지 감소했다.

미국인은 물론 세계 광고·마케팅 담당자들의 이목이 집중된 올해 수퍼볼 광고 특징과 트렌드를 세 가지로 분석했다.


맥주 브랜드 스텔라 아르투아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드라마 ‘섹스앤더시티’의 캐리 브래드쇼를 등장시켜 과거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사진 AP 연합
맥주 브랜드 스텔라 아르투아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드라마 ‘섹스앤더시티’의 캐리 브래드쇼를 등장시켜 과거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사진 AP 연합

특징 1│
시청률 떨어져도 광고 효과는 더 커

올해 수퍼볼 시청률은 11년 만에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지루했다’ ‘수면제 광고나 다름없었다’는 악평도 쏟아졌다. 시청률 조사회사인 닐슨에 따르면 올해 수퍼볼 경기 시청자 수가 9820만명을 기록했다. 9740만명을 기록했던 2008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시청자 수가 1억명을 넘기지 못한 것도 2009년 이후 처음이다.

그렇다면 수퍼볼 시청자가 감소한 만큼 수퍼볼 광고 효과도 떨어졌을까. 전문가들은 오히려 좋아졌다고 말한다. TV 스트리밍 서비스 등 다양한 시청 플랫폼이 생기면서 경기 시청률은 떨어지고 있지만, 광고는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각종 SNS를 통해 공유되면서 널리 퍼지고 있는 것이다. ‘포브스̓는 “시청률 감소, 광고 수요 감소, 광고비 하락을 예상하는 게 보통이지만, 오히려 수퍼볼 광고비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가장 큰 이유가 SNS 효과다. 실제로 영상·음악 분석 회사 펙스는 아마존, 펩시, 도요타, 올드스파이스, 스텔라 아르투아, 도리토스 등 올해 수퍼볼 광고 28건을 분석했다. 이 광고들이 수퍼볼 경기 당일을 전후해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틱톡 등 24개 플랫폼에서 어느 정도 공유되고 시청됐는 지를 조사한 것이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올해 수퍼볼 시청자 수는 지난해보다 500만명 급감했지만, 광고는 더 활발하게 공유됐다. 28개 광고의 영상 시청 건수는 유튜브와 기업 홈페이지 영상 등을 모두 포함해 총 1억5000만뷰를 기록했다.

특히 일간으로 치면 수퍼볼 다음날인 4일 광고 시청 건수가 폭증했는데, 이는 반응이 좋았던 광고가 다시 공유된 것으로 풀이된다. 펙스에 따르면 24개 플랫폼에서 가장 많이 시청된 광고는 아마존(4590만뷰), 펩시(3680만뷰), 렉서스(2510만뷰)순이었다.

‘포브스’는 “일부 기업들은 SNS 등을 통한 영상 확산이 광고 성공의 열쇠라는 것을 미리 인지해 수퍼볼 이전부터 광고를 대중에 공개했다”면서 “디지털 플랫폼의 발전은 수퍼볼 광고 시청에 가장 강력한 보완책이 됐다”고 분석했다.


특징 2│
존재감 과시하는 아마존

아마존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수퍼볼 광고에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내용 면에서도 재미와 트렌드를 동시에 잡아 여러 매체에서 최고의 수퍼볼 광고로 꼽혔다. 아마존은 프라임 스트리밍과 알렉사 광고 두 가지를 내보냈는데, 그중에서도 알렉사 광고가 높은 점수를 받았다. USA투데이가 시청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해 순위를 매기는 USA 애드미터에서 NFL 광고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아마존은 90초짜리 수퍼볼 광고에서 인공지능 알렉사가 아직 완전하지는 않다는 점을 재미있게 인정한다. 제목도 ‘모든 것이 성공적이지는 않다(Not Everything Makes the Cut)’이다. 개 목걸이에 장착된 알렉사가 오작동해 사료 수십 포대가 배송되고, 알렉사가 칫솔에 장착된 탓에 이를 닦을 때 입안에서 스피커 소리가 웅웅대거나, 알렉사 오작동으로 지구상 모든 불빛이 꺼졌다 켜지기를 반복하는 식이다. 덕분에 아마존은 일상 생활 곳곳에 알렉사를 적용해 새로운 서비스를 연구하고 있다는 점도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었다.

언론 최초로 수퍼볼 광고를 집행해 크게 화제가 된 회사는 미국 신문사 워싱턴포스트(WP)다. WP는 60초 광고 화면을 CNN, 폭스뉴스 등 타사 기자들의 리포팅 모습과 WP에 칼럼을 기고하다가 지난해 살해당한 자말 카슈끄지의 얼굴 등으로 구성했다. 광고 말미에 ‘민주주의는 어둠 속에서 죽는다(Democracy Dies in Darkness)’는 메시지를 띄우며 언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여운을 남겼다. WP가 TV에 광고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최대 주주는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최고경영자(CEO)다.


특징 3│
올해 수퍼볼 키워드는 AI와 복고

미국의 광고 전문 매체 애드에이지는 올해 수퍼볼 광고가 정치색을 빼고 안전성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코카콜라는 인종과 성별, 종교 등을 벗어나 화합을 추구하자는 내용의 광고를 내보냈다.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을 반박하는 내용으로 해석됐다. 에어비앤비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달랐다. 찰스 테일러 빌라노바대 경영학 교수는 뉴욕타임스(NYT)에 “유머가 넘치는 대신 정치·사회적 의견은 없었다”면서 “기업들은 올해 수퍼볼 광고에서 안전하게 가는 전략을 썼다”고 분석했다.

특히 인공지능(AI)이 가장 많이 다뤄진 주제였다. 세무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회사인 터보택스, 감자칩 브랜드 프링글스, 맥주 회사 미켈롭 울트라, 아마존 등이 모두 로봇과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못한 점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했다. 프링글스의 광고는 과자를 먹고 있는 두 남성 사이에 놓인 AI 스피커가 “혀가 없어 프링글스 맛을 볼 수 없다”고 한탄하는 내용을 담았다. 또 미켈롭 울트라 광고에 등장하는 로봇은 사이클, 조깅 등 모든 운동에서 인간을 뛰어 넘는 능력을 보이지만, 운동을 마치고 펍에 모여 맥주 한잔을 마시는 인간을 부러워하는 존재로 묘사됐다.

애드에이지는 “메시지 대부분이 친인류적인데, 기술 발달에 대한 두려움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광고 회사 자이언트 스푼의 존 하버 창립자는 NYT에 “수퍼볼 광고의 메시지는 미래에 대한 것이 많았다”면서 “올해 많은 기업들이 자신들의 디지털 전환 능력을 과시했다”고 분석했다.

복고 감성도 수퍼볼 광고 곳곳에 등장했다. 맥주 브랜드 스텔라 아르투아 광고에는 드라마 ‘섹스앤더시티’ 주인공 캐리 브래드쇼가 등장해 자신의 시그니처 음료인 칵테일 대신 맥주를 선택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초 과자인 도리토스 광고엔 미국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래퍼 챈스더래퍼와 함께 90년대 후반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백스트리트보이즈가 함께 등장했다. 화장품 브랜드 올레이 광고에도 1990년대 후반 나온 공포 영화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의 살인자와 당시 주인공 사라 미셸 겔러가 등장했다.


Plus Point

현대·기아차도 美 수퍼볼 단골 광고주 같은 제작사서 정반대 분위기 뽑아내

송현 기자

현대차와 기아차의 수퍼볼 광고 분위기는 정반대였다. 현대차(왼쪽 사진)는 자동차 구입 프로그램을 유머러스하게 소개했지만, 기아차는 남부 작은 마을에 있는 기아차 생산공장과 이곳 주민들을 등장시켜 진정성을 부각시켰다. 사진 각 유튜브 캡처
현대차와 기아차의 수퍼볼 광고 분위기는 정반대였다. 현대차(왼쪽 사진)는 자동차 구입 프로그램을 유머러스하게 소개했지만, 기아차는 남부 작은 마을에 있는 기아차 생산공장과 이곳 주민들을 등장시켜 진정성을 부각시켰다. 사진 각 유튜브 캡처

현대·기아차도 미국 수퍼볼 광고에서 빠질 수 없는 단골 광고주다. 각각 2008년, 2010년부터 꾸준히 광고를 집행하고 있다.(현대차는 2015년 한 해 중단) 두 회사 광고는 현대차 그룹 광고 계열사인 이노션의 미국 자회사 데이비드 앤드 골리앗의 작품이다.

올해 수퍼볼에서 두 회사 광고는 정반대 노선을 걸었다. 1쿼터 중에 공개된 60초 분량의 현대차 광고는 미국 시장에서 최근 시작한 자동차 구매 프로그램 ‘구매자 보증(Shopper Assurance)’을 코믹하게 소개했다. 구매자 보증은 구입한 자동차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사흘 내에 교환할 수 있는 제도다.

광고는 자동차를 구매하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탄 부부가 안내원의 안내에 따라 이동하는 모습을 담았다. 치과 신경 치료, 배심원 출석, 채식주의자가 차린 저녁 식사 자리에 초대되기, 비행기 가운데 좌석에 앉기, 청소년이 아버지와 진지한 대화하기, 자동차 딜러를 방문해 차량 구입하기 등 미국인들이 불편함을 느끼는 각종 상황들이 벌어지는 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그러던 두 사람은 구매자 보증을 통해 현대차를 구입했다고 안내원에게 말하고, 안내원은 반색하며 쾌적한 현대차 매장이 있는 꼭대기층으로 부부를 안내한다는 내용이다. 이 광고는 USA투데이가 시청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해 순위를 매기는 USA 애드미터에서 NFL, 아마존 알렉사, 마이크로소프트 광고에 이어 4위를 기록했다.

반면 기아차의 광고는 웃음기를 빼고 진지하게 접근했다. 3쿼터 후반 90초간 방영된 광고의 배경과 등장 인물은 미국 조지아주의 작은 도시인 웨스트포인트와 이곳 주민들이다. 여기엔 2009년 기아차가 만든 생산 공장이 있다.

“우리는 알려지지 않았다. 우리가 가는 길에는 별도, 트로피도 없다”는 어린이의 독백과 함께 카메라는 웨스트포인트 곳곳을 비춘다. 올해 북미 시장에 처음 출시하는 대형 SUV 텔루라이드가 물살을 헤쳐나가는 영상이 어우러졌다.

텔루라이드는 이곳 공장에서 생산된다. 기아차는 이 광고에서 올해 시작한 장학 프로그램 ‘위대한 익명 프로그램(Great Unknowns Program)’을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