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운전 업체의 ‘암묵적 연령 제한’이 논란이다.
대리운전 업체의 ‘암묵적 연령 제한’이 논란이다.

대리기사 김형근(63)씨는 지난 2년 동안 가입한 대리운전 업체를 네 번이나 바꿨다. 만 60세가 넘자 ‘배차 프로그램’에서 노출되는 ‘콜(고객의 대리운전 요청)’ 개수가 확연히 줄거나 아예 하나도 나타나지 않는 현상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똑같은 배차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다른 40대 대리기사는 받아보는 콜을 김씨는 받을 수 없었다. 김씨는 “고객과 싸운 적도, 사고를 낸 적도 없는데 ‘배차 제한’이 걸리는 원인은 나이밖에 없다”고 했다.

대리기사는 일감 유치를 스마트폰에 설치된 배차 프로그램에 의존한다. 콜센터가 배차 프로그램에 콜을 입력하면, 이는 인근 모든 대리기사에게 노출돼 선착순 입찰 방식으로 배정된다. 문제는 프로그램 운영사와 대리운전 업체가 이 배차 프로그램을 임의로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원래는 손님과 다투거나 사고를 낸 대리기사에게 일정한 페널티를 부과하기 위한 기능이었지만, 실제로는 대리기사를 통제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김씨처럼 고령을 이유로 대리운전 업체로부터 불이익을 받았다는 대리기사가 한둘이 아니다. 이와 관련해 대리운전 업체 여러 곳에 문의했지만, 대부분 “프리미엄 서비스인 ‘법인 대리기사’를 고용할 때는 연령 상한선을 두지만, 일반 대리기사에게는 고령이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준 적 없다”는 답변을 내놨다. 그러나 김종용 전국대리기사협회장은 “‘손님이 싫어한다’거나 ‘운전 능력이 떨어질 것 같다’ 등의 이유로 ‘연령 제한’을 거는 것은 공공연한 관행”이라며 “나이 든 대리기사를 대놓고 내보낼 수 없으니, 일감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자진 탈락을 유도하는 것”이라고 했다.

결국 김씨는 가입비와 보험료를 이중으로 내는 것을 감수하고, 연령 제한이 덜한 대리운전 업체 두 곳에 가입했다. 김씨는 “차라리 운전 능력이나 사고 이력을 이유로 제한한다면 억울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65세 정년 시대가 오는데, 대리운전 업체는 60세만 넘으면 아예 배차를 못 받게 제한해 생계가 위협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손님의 안전을 고려해 운전기사의 연령 상한선을 두는 것은 합리적’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고령 운전자에 의한 교통사고가 잇달아 발생하면서다. ‘부처님 오신 날’인 5월 12일에는 경남 양산 통도사에서 75세 운전자가 몰던 차량이 방문객들을 덮쳐 1명이 숨지고 12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고 원인은 가속페달을 브레이크로 착각한 ‘운전 미숙’이었다. 6월에는 70대 운전자가 휴게소 출입구를 착각해 고속도로를 14㎞나 역주행한 사건도 있었다.

실제로 신체 기능과 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고령 운전자는 교통사고 위험성이 높다.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료에 따르면 2018년 고령 운전자 비율은 9.5%였는데, 전체 교통사고 21만7148건 중 13.8%에 해당하는 3만12건을 일으켰다. 지난해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 치사율(100건당 사망자 수)은 3.2%로 전체 연령대 치사율(1.9%)보다 두 배가량 많다.

전문가들은 고령 운전자의 사고 발생 가능성이 전체 운전자보다 크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운전 연령에 일률적인 상한제를 도입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같은 연령이라도 사람에 따라 인지 능력과 신체 기능이 천차만별이고, 고령 운전자 중에는 대리기사나 택시기사와 같은 ‘생계형 운전자’가 많다는 이유에서다. 대리기사 중 상당수는 김씨처럼 노후 생계를 위해 운전대를 잡는 은퇴자다. 개인택시 기사의 평균 연령은 62.2세에 이른다.

특히 대리기사 업계의 ‘암묵적 연령 제한’에 대해서는 ‘회사의 권한을 남용한 불공정행위’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평균 수명이 늘면서 대법원도 육체노동 가동연한을 만 60세에서 만 65세로 상향한 바 있다”며 “사고 이력, 운전 능력이 아닌 단순한 나이로, 그것도 60세부터 ‘배차 제한’을 거는 것은 실버 노동자의 생계를 위협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