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향상 이끈 전문경영인 9인(위 왼쪽부터)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대표이사 부회장. 공기영 현대건설기계 대표이사 사장. 김화응 현대리바트 대표이사 사장. 전영현 삼성SDI 대표이사 사장. (아래 왼쪽부터) 박성욱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부회장. 이윤태 삼성전기 대표이사 사장. 최성안 삼성엔지니어링 대표이사 사장. 박한우 기아자동차 대표이사 사장. 허민회 CJ ENM 대표이사 총괄 부사장.
실적 향상 이끈 전문경영인 9인
(위 왼쪽부터)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대표이사 부회장. 공기영 현대건설기계 대표이사 사장. 김화응 현대리바트 대표이사 사장. 전영현 삼성SDI 대표이사 사장.
(아래 왼쪽부터) 박성욱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부회장. 이윤태 삼성전기 대표이사 사장. 최성안 삼성엔지니어링 대표이사 사장. 박한우 기아자동차 대표이사 사장. 허민회 CJ ENM 대표이사 총괄 부사장.

한 해 마무리를 한 달 앞둔 지금, 전문경영인이 이끈 국내 기업의 성적표는 업종별로 희비가 엇갈렸다. ‘이코노미조선’이 국내 30대 그룹 주요 상장사의 3분기 누적 매출액·영업이익을 전년 동기 실적과 비교해 분석한 결과 반도체·화학·전자장비 분야 기업은 좋은 실적을 기록한 반면 조선·에너지·디스플레이·운송인프라·자동차부품 분야 기업은 영업이익이 절반에서 최대 100%가량 폭락할 정도로 고전했다.

30대 그룹 주요 상장사 중 3분기 누적 매출액 1조원을 돌파한 기업 63곳의 전년 동기 대비 매출 증감률을 집계한 결과, 41개 기업의 매출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증가율 상위 10개 기업은 현대중공업지주, 현대건설기계, 현대리바트, 삼성SDI, SK하이닉스, CJ ENM, 신세계, CJ대한통운, 에쓰오일(S-Oil), 삼성전기순이었다.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한 곳은 현대중공업지주다. 현대로보틱스가 3월 30일 현대중공업그룹의 지주회사로 전환되며 사명을 현대중공업지주로 바꿨다. 이 회사의 올해 3분기 누적 매출액은 19조8285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30% 늘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조253억원으로 40% 증가했다. 현대오일뱅크, 현대건설기계 등이 매출 증가에 기여했다.


강도 높은 체질 개선으로 실적 증가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부회장은 2년간 약 5조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던 현대중공업의 구원투수로 2014년 9월 등판했다. 이후 지주사 전환, 희망퇴직, 군산조선소 폐쇄, 비핵심 자산 매각 등 굵직한 현안을 해결하면서 내실을 다져 실적을 개선했다.

권 부회장은 2022년까지 그룹 매출 70조원을 달성하기 위해 신사업을 준비하는 등 미래 성장 동력 발굴에도 매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판교에 통합 연구·개발(R&D)센터를 짓고 최대 7000명의 기술인력을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현대중공업지주에 이어 고성장한 곳은 공기영 대표가 이끄는 현대건설기계다. 굴착기·지게차 등 중장비 전문업체인 현대건설기계의 올해 3분기 누적 매출은 2조5636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97% 늘었으며 영업이익은 1742억원으로 117% 올랐다.

이번 실적 급등은 공 사장의 공격적인 경영 기조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공 사장은 세계 굴착기 시장 호황에 발맞춰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제품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이를 통해 인프라 투자가 급증하며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과 인도에서 큰 수익을 올렸다. 현대건설기계의 지난 3분기 기준 중국 시장 점유율은 4.2%(작년 3.1%), 인도 시장 점유율은 17.9%(작년 16.6%)였다.

가구 업계에서는 현대리바트가 독보적으로 성장했다. 연이은 인수·합병(M&A)으로 몸집을 키운 현대리바트는 올해 3분기 누적 매출에서 자사 최초로 1조원을 돌파했다. 전년 동기보다 66.7% 늘어난 수치다. 이에 비해 경쟁 업체인 가구 업계 1위 한샘의 3분기 누적 매출액은 1조3764억원으로, 전년보다 8.5% 줄었다.

현대리바트 실적 급등의 일등공신은 2013년 6월 구원투수로 등판한 김화응 현대리바트 대표다. 김 대표는 현대백화점그룹에서 30여 년간 근무한 현대맨이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지난 2012년 가구업체 리바트를 인수한 후 현대H&S를 이끌던 김 대표를 2013년 6월 투입했다. 김 대표는 리바트 키친, H-몬도, 윌리엄스 소노마 등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브랜드를 대거 확대하고 노후 시설 교체, 생산설비 재정비에 나섰다. 여기에 올해부터는 2015년 출시한 네오스 하움 브랜드의 중소형 사무용 가구 제품군을 늘려 사무용 가구 시장을 공략하고 수익성이 높은 주방가구 제품군을 늘려 리모델링 시장 공략에 나섰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액이 오른 상위 10개 기업 중 가장 높은 매출액을 기록한 곳은 SK하이닉스다. 3분기 누적 매출액 30조5070억원, 영업이익 16조4137억원으로 각각 44%, 77% 늘었다.

박성욱 부회장이 CEO를 맡은 2013년 이후 SK하이닉스는 반도체 붐에 힘입어 꾸준히 좋은 실적을 기록했다. 취임 초기에는 고공 행진하는 PC용 D램 판매량을 늘리며 실적을 강화했고, 최근에는 모바일·서버 등 모든 D램 수요처에서 골고루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낸드플래시 분야에서도 큰 성과를 거뒀다. 삼성전자, 도시바, 마이크론 등 다른 경쟁사에 비해 낸드플래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던 SK하이닉스가 박 부회장 체제에서 5년간 연구·개발 분야에 꾸준히 투자를 늘려 3D 낸드 분야에서는 선두권 기업인 삼성전자, 도시바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문제는 올해 4분기부터다. 메모리 반도체 호황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계속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D램, 낸드플래시 등 SK하이닉스의 효자 품목 이외에 새로운 사업 영역을 개척하는 것이 박 부회장의 내년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증가한 기업은 32개사다. 이 중에선 삼성SDI의 약진이 눈에 띈다. 삼성SDI는 지난해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이 17억원의 적자를 기록했지만, 올해 3분기에는 4663억원을 달성하며 흑자로 전환했다. 삼성SDI는 2016년만 해도 1조원에 가까운 적자를 기록했지만, 지난해 3월 전영현 사장이 취임하면서 체질 개선에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SDI의 실적 호조는 전지 사업과 반도체·소재·재료 사업 등 모든 사업이 큰 폭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부문별로 살펴보면 전지 사업 부문에서 3분기 매출액이 전 분기보다 11.3% 늘어난 1조9223억원을 기록했다. 원형 전지 수요가 늘고 있는 데다 신형 스마트폰 출시에 따른 폴리머전지 수요가 함께 증가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또 유럽을 중심으로 전기차가 증가하면서 자동차용 이차전지 매출액이 함께 늘었다.

삼성SDI에 이어 영업이익 부문에서 좋은 성적을 낸 기업은 삼성전기, 삼성엔지니어링, 현대건설기계, 기아차, 롯데정밀화학, SK하이닉스, 대림산업, 삼성물산, 현대중공업지주순이었다.

강도 높은 체질 개선 작업을 통해 올해 3분기 누적 매출 6조1948억원을 달성한 삼성전기는 전년보다 284% 늘어난 7658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2015년 대표로 부임한 이윤태 사장이 사업부문을 개편하고 흩어져 있던 모듈 사업을 한데 모으며 조직을 슬림화한 덕분이다. 하드디스크 드라이브(HDD) 모터 등 전망이 밝지 않은 사업에 대해선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추진한 반면 MLCC(적층세라믹캐패시터) 공장을 증설 하는 등 미래 사업에 대한 투자는 과감히 확대한 것도 성공요인으로 꼽힌다. 


조선·해양 업계, 일감 부족으로 고전

올해 3분기 누적 실적에서 우울한 성적표를 받아든 기업엔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 3사가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삼성중공업의 3분기 누적 매출액은 3조9012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39.9% 줄어 조선 3사 중 가장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다. 삼성중공업은 2015년부터 3년 연속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해양 플랜트 부문의 부진과 구조조정 비용 등이 발목을 잡았다. 2016년 10조4000억원에 달했던 매출은 올해 5조4000억원으로 반토막 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올해 1~10월 49억달러 규모의 신규 수주를 끌어냈지만, 연간 목표인 82억달러에는 한참 못 미친다. 신규 수주 등으로 내년 매출은 6조원대로 늘겠지만 900억원가량 영업손실을 기록, 적자 기조는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나머지 조선사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현대중공업의 올해 3분기 누적 매출액은 9조4088억원으로 21.5% 줄어들었고, 대우조선해양 역시 6조7792억원으로 21.3% 하락했다. 중소형선을 건조하는 현대미포조선 실적도 부진했다. 현대미포조선의 올해 3분기 누적 매출액은 1조6754억원, 영업이익은 632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각각 14.6%, 56.4% 떨어졌다.

최근 조선 시장이 다소나마 회복세를 보이면서 선박 수주가 전년보다는 늘어나고 있지만, 일감 부족으로 인한 고정비가 조선사의 발목을 잡은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현대중공업은 일감이 부족해 해양 플랜트 사업본부의 1000여 명이 유휴인력이 된 상태다. 일감 부족으로 고정비가 상승하면서 실적 악화로 이어져 내년에도 실적 개선이 가능할지는 불분명하다. 현대중공업은 11월 6일 그룹 인사를 통해 한영석·가삼현 사장을 현대중공업 대표로 새로 임명하며 분위기 반전을 꾀하고 있다.

그동안 급성장하던 디스플레이 분야도 침체의 길에 들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한상범 부회장이 이끄는 LG디스플레이의 올해 3분기 누적 매출액은 17조3888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5.9% 감소했다. 중국의 액정표시장치(LCD) 공급 과잉으로 판매가가 하락한 점 등이 영향을 미쳤다. 한 부회장은 OLED 매출 비중을 높이기 위해 전략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이 가장 크게 하락한 곳은 김경배 사장이 이끄는 현대위아다. 현대위아의 올해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2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99.8%나 감소했다. 김경배 사장은 현대자동차그룹 내 대표적인 장수 전문경영인으로 현대글로비스의 괄목할 성장을 이끈 인물이다. 2009년부터 올해 3월까지 현대글로비스를 이끌다가 현대위아로 적을 옮겼다.

김 사장은 올해 현대위아를 맡으면서 완성차 계열사 의존도를 낮추는 등 체질 개선에 나섰지만 현대·기아차 실적이 악화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현대위아 매출의 85%를 차지하는 자동차 부품 판매가 감소한 데다 국내 설비 투자가 정체되면서 기계 부문도 8분기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Plus Point

美 IT 업계, 기술 안목 높은 인도 출신 전문경영인 많아

(왼쪽부터) 팀 쿡 애플 CEO.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랜들 스티븐슨 AT&T 회장.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 샨타누 나라옌 어도비 CEO.
(왼쪽부터) 팀 쿡 애플 CEO.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랜들 스티븐슨 AT&T 회장.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 샨타누 나라옌 어도비 CEO.

디지털 혁명으로 세대교체가 빨라진 미국의 정보기술(IT) 기업 최고경영자(CEO)는 예외 없이 전문경영인이다. 애플의 팀 쿡을 비롯해 구글의 순다르 피차이 CEO, AT&T의 랜들 스티븐슨 회장, 마이크로소프트(MS)의 사티아 나델라 CEO 등은 한결같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기업의 진화를 추구해온 기술경영자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는 글로벌 IT 업계에서 가장 성공한 전문경영인으로 꼽힌다. 2015년 10월 CEO로 부임한 그는 올해 1분기 구글이 좋은 실적을 내면서 현금 자산가치로 4000억원에 달하는 주식을 받았다. 구글의 모기업인 알파벳의 올해 1분기 매출은 311억6000만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26% 상승했다. 특히 1분기 광고 매출이 266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4% 증가했다. 피차이는 2016년에도 1억9970만달러(약 2250억원)의 주식을 받았다.

특히 IT 공룡을 이끄는 전문경영인 중에는 인도 출신이 많다. 사티아 나델라 MS CEO, 샨타누 나라옌 어도비 CEO도 인도 출신이다. 2000여 개의 방언이 있는 인도는 공식 문서와 행사에 영어를 사용하는데, 이 덕분에 미국 사회에 더 쉽게 녹아들 수 있었다.

또 이들은 기술에 대한 탁월한 안목을 보유하고 있다. 순다르 피차이 CEO가 엔지니어 시절 “구글도 독자적인 웹 브라우저를 만들어야 한다”며 에릭 슈밋 당시 구글 CEO를 설득한 일화는 그가 미래에 대한 안목을 갖춘 인재였음을 보여준다. 그가 개발을 주도한 웹 브라우저 크롬은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밀어냈다.

사티아 나델라 CEO는 25세에 MS의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입사해 잔뼈가 굵었다. 그는 비즈니스 솔루션 사업부와 엔터프라이즈·클라우드 담당 수석 부사장 등 중요 기술 개발 부서를 거쳐 CEO에 올랐다.

소통형 리더십도 이들 전문경영인의 공통점이다. 이들은 창업주들과는 달리 조직원과의 협업을 강조한다. 애플의 팀 쿡 CEO는 스티브 잡스의 흔적을 지우려고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소비자, 투자자, 직원의 다양한 주장과 요구를 효율적으로 조정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순다르 피차이 CEO 역시 본인보다는 더 뛰어난 팀원을 찾아 그와 함께 일해야 한다며 팀이 발전해야 개인도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모든 구성원의 의견을 경청하고, 대화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풀면서 솔선수범하는 데 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한 번 실패했다고 포기하지 않는 점도 특징이다. 농촌 출신인 스티븐슨 회장은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한 뒤 1982년 AT&T의 전신인 사우스웨스턴벨에 입사했다. 한 직장에서 25년간 근무하다 2007년 CEO에 오른 후 T모바일을 인수하려다 반독점 규제에 걸려 그의 뜻은 좌절됐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문을 두드린 끝에 2015년 디렉TV를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이 덕에 AT&T는 매출을 큰 폭으로 늘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