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서울역, 명절 승차권을 구하려는 이들이 긴 줄을 이루고 있다. 사진 코레일
2007년 서울역, 명절 승차권을 구하려는 이들이 긴 줄을 이루고 있다. 사진 코레일

부산이 고향인 회사원 민모(34)씨는 올해 1월 8일 오전 6시 알람에 맞춰 일어났다. 이날 오전 7시부터 시작되는 설 연휴 기차표를 예매하기 위해서였다. 민씨는 6시 30분부터 컴퓨터 앞에 앉아 코레일 홈페이지에 접속해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혹시 몰라 스마트폰으로도 코레일에 로그인했다. 7시 정각이 되자마자 코레일 설 연휴 기차표 예매 사이트에 접속했다. 하지만 대기 번호가 2000번대라는 알림이 떴다. 순번이 빠른 사람이 기차표 예매를 끝내야 설 연휴 예매 사이트에 차례대로 접속할 수 있었다. 대기하면서 설 연휴 기차표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를 확인했다.

원하는 날짜와 시간대의 표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표시가 뜰 때마다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7시 23분이 되자 차례가 왔다. 예매까지 주어진 시간은 3분. 버튼을 빠르게 누른 덕분인지 서울~부산 왕복 기차표를 각각 세 장씩 예매할 수 있었다. 동행할 동생도 온라인 예매로 왕복표 한 장씩을 사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고령층과 장애인 등 컴퓨터와 스마트폰 사용이 서툰 사람이 민씨처럼 명절 기차표를 예매하기는 언감생심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17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 조사’에 따르면 만 55세 이상의 디지털 정보화(IT 기기, 인터넷 사용 능력) 수준은 국민 평균의 58.3%에 불과했다.

코레일은 2004년 추석에 처음으로 명절 기차 승차권 온라인 예약제를 도입했다. 온라인 예매와 현장 예매 비율을 6 대 4로 나눠 역에 가지 않고도 집에서 명절 승차권을 손에 쥘 수 있게 했다. 명절 기차표 온라인 예약제를 도입한 지 15년이 지난 올해 추석부터는 온라인 예매와 현장 예매 비율이 8 대 2로 조정된다. 온라인 비중을 더 늘리는 것이다.

코레일은 비용을 절감하고 고객 편의를 높이기 위해 IT 기술을 활용한 온라인 예매 비중을 늘리고 있다고 하지만 고령층과 장애인은 더욱 소외될 게 뻔하다.

이에 대해 코레일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인증한 회원에게 접속 시간을 확대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고 밝혔다. 시각, 뇌병변, 지체 장애인 회원은 30분 동안 명절 승차권을 예매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일반인보다 안내문을 읽는 데 10배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는 것을 고려한 것이다. 코레일 홈페이지에 여행 정보를 미리 저장하고 예매할 때 불러오는 기능도 도입했다. 그러나 한 장애인 인권단체 관계자는 “읽고 쓰는 것마저 되지 않는 지체 장애인에게는 30분도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전혀 실효성이 없다는 말이다. 고령층도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명절 기차 승차권에 한해 노인 또는 장애인 쿼터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이나 일정 수준 이상의 장애를 가진 사람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만큼의 기차 승차권을 확보해 이들에게만 파는 것이다. 이들 쿼터에 해당하는 승차권이 매진되지 않으면, 당일 열차 출발 15~30분 전에 대기자들에게 판매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