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포스터. 일본 개봉작 중 최단기간 흥행 수입 200억엔을 돌파하며 모든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사진 애니플렉스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포스터. 일본 개봉작 중 최단기간 흥행 수입 200억엔을 돌파하며 모든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사진 애니플렉스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鬼滅の刃·기메쓰 노 야이바)’이 일본의 영화 흥행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텅 비었던 영화관이 관객들로 붐비고 있다. 이 작품과 협업한 기업들의 상품이 줄지어 매진되는 등 침체했던 일본 내수도 살아나고 있다.

‘귀멸의 칼날’은 11월 8일까지 개봉 24일 만에 204억8000만엔(약 2200억원)의 흥행 수입을 올렸다. 일본에서 개봉한 모든 영화 중 최단기간에 200억엔을 돌파했다. 누적 관객은 1537만 명을 넘었다. 외화를 포함한 역대 흥행 랭킹 5위. 일본 영화 중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308억엔)’ ‘너의 이름은.(250억엔)’에 이어 이미 3위다. 최종적으로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누르고 일본 영화 역대 흥행 1위에 오를지도 모른다.

‘귀멸의 칼날’은 31세 여성으로 추정되는 복면(覆面) 작가 고토게 고요하루(吾峠呼世晴)가 만화잡지 ‘소년 점프’에 연재한 것이 원작. 줄거리는 이렇다. 주인공인 가마도 단지로(竈門炭治郎)가 집을 비운 사이, 일가족이 오니(鬼·일본 귀신)에게 몰살된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여동생 네즈코(禰豆子)마저 오니가 돼버린다. 그러나 단지로는 네즈코가 이성을 완전히 잃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네즈코를 인간으로 되돌릴 방법을 찾겠다고 결심한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단지로는 오니들과 싸우면서 그들의 우두머리를 찾아 나선다.


기존 공식에 참신한 설정과 공감 더해

애니메이션이 넘치는 일본, 게다가 코로나19로 극장가가 극도로 침체한 상황에서 ‘귀멸의 칼날’은 어떻게 대성공을 거뒀을까?

미우라 도시히코(三浦俊彦) 주오(中央)대 교수는 11월 10일 자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 기고에서 ‘참신한 설정’을 그 이유로 들었다. 소년만화는 주인공이 친구들과 힘을 합해 적을 쓰러뜨리고, 무엇인가를 달성해 나간다는 것, 즉 우정·노력·승리의 성공 공식을 따른다. ‘귀멸의 칼날’은 ‘오니에게 가족이 몰살된 주인공이 오니가 된 여동생을 인간으로 되돌리기 위해 오니와 싸운다’는 단 한 줄의 설정이 차별화된 매력을 준다는 것이다.

설정 외에도 중요한 성공 포인트가 있다. 이 작품은 단순한 권선징악의 내용이 아니다. 제작을 맡은 다카하시 유마(高橋祐馬) 애니플렉스 프로듀서는 10월 23일 자 주간지 ‘도요게이자이(東洋經濟)’ 인터뷰에서 작품의 매력을 ‘적이어야 하는 오니들도 원래는 인간이었고, 인간이었을 때 각자의 슬픈 사연이 있다는 점’을 들었다.

논픽션 작가인 이시도 사토루(石戸諭)도 11월 15일 자 시사주간지 ‘선데이마이니치(每日)’ 기고에서 인간을 잡아먹는 악역에 불과했던 오니들이 사실은 가슴속에 나약함을 품은 인간들이었다는 사실, 학대나 왜곡의 과거가 있는 인간이 불행을 극복하기 위해 도깨비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설정 등을 매력으로 꼽았다.

‘귀멸의 칼날’은 액션이 가미된 소년만화인데도 여성 관객이 많다. 극장에서 울었다는 여성도 적지 않다. 마케팅 전문가인 오케타니 이사오(桶谷功) 인사이트 대표는 그 이유를 소년만화의 대표작 ‘원피스’와의 차이점으로 설명한다.

‘원피스’가 비전(vision)형이라면 ‘귀멸의 칼날’은 공감형이라는 것. 원피스는 ‘해적왕이 되겠다’는 주인공이 그의 비전에 찬동하는 동료들과 힘을 합쳐 적을 쓰러뜨리며 목표에 한 걸음씩 다가간다. ‘귀멸의 칼날’의 주인공은 그런 원대한 꿈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오니와 싸우는 것은 오니에 대한 복수보다는 여동생 네즈코를 인간으로 되돌리기 위해서다. 원래 인간이었던 오니들의 후회와 슬픔에 공감하기도 한다. 코로나19의 시대, 앞이 잘 안 보이는 이런 시대에는 동료와 공감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공감형’이 대중의 지지를 더 받는다는 게 오케타니 대표의 분석이다.

‘귀멸의 칼날’에 등장하는 오니를 관객에 따라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도 이 작품의 매력이다. 오니가 과거 일본에서 역병(疫病)을 상징했듯, 작품 속 오니를 코로나19라 여길 수도 있다. 코로나19에 감염되는 게 본인만의 잘못이 아닌데도 감염자를 비난·배척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감염자를 비난·공격하는 사람을 오니로 볼 수도 있다. 또 일본인들 감상평을 보면, 다른 이를 핍박하는 권력자, 사회를 분열로 이끄는 위정자를 오니에 비유하기도 한다.


음료 업체 다이도가 발매한 ‘귀멸의 칼날’ 캔커피. 출시 3주도 안 돼 5000만 개가 팔렸다. 사진 도요게이자이
음료 업체 다이도가 발매한 ‘귀멸의 칼날’ 캔커피. 출시 3주도 안 돼 5000만 개가 팔렸다. 사진 도요게이자이

기업 판촉과 연계 규모 ‘사상 최대’

‘귀멸의 칼날’은 기업과 협업 규모에서도 이전 애니메이션을 압도한다. 주요 파트너만 로손, 닛신식품, 롯데, 모리나가, UHA, 마루미야, 이온, JR, 유니클로, 지유, 진즈메이트 등 수십여 곳이다. 식품부터 외식·의료·여행·교재까지, 협업 상품의 다채로움에서 전례가 없을 정도다. 편의점·의류매장마다 관련 캐릭터 상품이 가득하고, 작품에 등장한 장소와 비슷한 곳엔 방문객이 쇄도하고 있다.

관련 종목 주가도 급상승했다. ‘귀멸의 칼날’ 캐릭터 의류를 파는 진즈메이트는 한때 상한가를 치는 등 주가가 연초 대비 최고치다. 캐릭터 상품을 다루는 에디아, 에스케이재팬의 주가도 크게 올랐다.

협업으로 대박을 낸 것은 10월 5일 음료업체 다이도가 발매한 ‘귀멸의 칼날’ 캔커피가 대표적이다. 출시한 지 3주도 안 돼 5000만 개가 팔렸다. 이 제품 발매 전까지 다이도의 캔커피 판매는 전년 대비 10%가량 줄고 있었다. 코로나19에 의한 외출 자제 등으로 편의점·자판기에서 캔커피를 살 기회가 줄어든 게 컸다. 그러던 것이 ‘귀멸의 칼날’ 캔커피 발매 이후인 10월, 캔커피 전체의 전년 대비 판매가 50%나 증가했다.


다양한 매체로 교감, 조금씩 팬 늘려가

이 작품의 인기가 갑자기 폭발한 것은 아니다. 원작이 잡지에 처음 연재된 2016년만 해도 반응이 대단치 않았다. 그러다가 2019년 애니메이션 시리즈가 나오면서 붐이 일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에도 스트리밍 서비스가 급증하는 상황이었는데, ‘귀멸의 칼날’을 거의 모든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에 제공하는 전략이 주효했다. TV 중심으로만 공개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소비자에게 작품을 알릴 수 있었다.

방영을 거듭할수록 시청자가 늘어났고, 적극적인 소셜미디어(SNS) 홍보 전략과 맞물려 공식 트위터 팔로어도 차츰 증가했다. 애니메이션을 계기로 팬이 늘면서, 잡지에 연재되는 원작을 읽고, 이어 단행본까지 구입하는 선순환이 일어났다. 덕분에 단행본 누적 판매가 2020년 5월 6000만 부, 7월 8000만 부, 10월 2일 발매된 22권까지 1억 부를 돌파했다. 일본의 모든 단행본 만화 가운데 최단기간에 1억 부를 달성한 것이다. 10월 16일 개봉한 영화의 대히트도 이렇게 쌓아나간 팬층 덕분이었다.

원작 만화와 애니메이션 시리즈 성공에 이어 영화에서도 초대박을 내면서, 속편 제작을 정례화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일본에선 ‘명탐정 코난’ ‘도라에몽’ ‘원피스’ 같은 작품이 영화화돼 장기·안정적인 수익을 안겨주는데 ‘귀멸의 칼날’도 그런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최원석 조선일보 국제경제전문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