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가 ‘CES 2020’에서 공개한 미래 기술 실증 시설 ‘우븐 시티(Woven City)’. 올해 폐쇄되는 후지산 기슭에 있는 도요타 공장 부지에 지어진다. 내년 착공 예정이다. 사진 도요타
도요타가 ‘CES 2020’에서 공개한 미래 기술 실증 시설 ‘우븐 시티(Woven City)’. 올해 폐쇄되는 후지산 기슭에 있는 도요타 공장 부지에 지어진다. 내년 착공 예정이다. 사진 도요타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수정구슬이 있다면, 지금 그것을 가장 원하는 게 우리 자동차 산업일 겁니다.”

도요다 아키오(豊田章男) 도요타자동차 사장은 1월 6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자사 발표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글로벌 직원 37만 명, 자동차 회사 중 시총 1위(265조원)의 이 거대 기업이 가진 절박함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이었다.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0’ 개막을 하루 앞둔 자리였다.

아키오 사장은 수정구슬을 찾아 나서는 대신 스스로 만들어보기로 했다. 그는 도요타의 오랜 연구·고민의 산물을 이날 발표했는데, 미래 기술 실증 시설인 ‘우븐 시티(Woven City·織造都市)’였다. 자율주행과 로봇, 이동성(모빌리티),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미래 기술·서비스를 일상에 적용해보는 공간이다. 연구자만이 아니라 도요타 직원·가족, 다른 참여 기업의 직원·가족, 공모로 뽑은 주민 등 2000여 명이 실제로 거주하게 된다.

우븐 시티가 들어서는 곳은 시즈오카(静岡)현 스소노(裾野)인데, 올해 폐쇄되는 도요타 히가시후지(東富士)공장 부지 70만8000㎡(약 21만4000평)에 들어선다. 2021년 초부터 단계적으로 착공한다.

우븐 시티는 도로가 그물 형태로 직조(織造)됐다는 의미도 있지만, 자동직기 회사로 시작한 도요타자동차의 원류를 상징하기도 한다. 아키오 사장은 “도요타는 자동차 만들기부터 시작한 게 아니라 천을 짜는 것부터 시작했다”면서 “우리 기술을 사용해 새로운 거리, 인생을 즐기는 새로운 방법을 짜내려 한다”고 말했다.

우븐 시티의 도로는 빠른 차량 전용, 보행자와 느린 차량 공용, 보행자 전용, 이 셋으로 구분된다. 이동 수단은 도요타가 개발 중인 자율주행 전기차 ‘이팔레트(e-Palette)’다. 사람·물건 수송 외에 광장 등에서 이동형 점포로도 활용된다. 아키오 사장은 “도요타는 모빌리티 업체를 넘어 자율주행과 AI에 기반한 스마트 도시를 선도하는 업체로 거듭날 것”이라며 “이번 프로젝트가 작지만 중요한 첫걸음”이라고 했다. 우븐 시티가 주는 시사점 세 가지를 분석했다.


시사점 1│인프라 전체를 새로 설계해야 할지 모른다

사람들은 흔히 도로·차량 형태는 변하지 않은 채, 각각의 차량이 알아서 달리는 시대가 곧 올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자율주행·반도체 회사들에 따르면 그런 형태의 세상은 쉽게 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어떤 도로 조건에서도 탑승자 안전을 100% 자신할 자율주행 기술은 현재로선 거의 불가능하다. 우븐 시티처럼 아예 도시를 새로 설계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더 쉽고 효율적이라는 분석이다. 우븐 시티는 바로 이런 문제의식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한편 미래 기술 투자 회사 ‘미슬토’의 손태장 회장은 자율주행 기술이 도입된 미래 도시에 대해 “이탈리아 베네치아 같은 도시가 이상적”이라고 했다. 그는 “왜 신호등에서 보행자가 차량 통과를 기다려야 하느냐, 왜 아이에게 ‘도로에 튀어 나가면 안 돼’라고 말해야 하느냐”고 했다. 도시가 사람보다 자동차 위주로 설계된 것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베네치아는 그렇지 않다. 거리엔 차가 다니지 못한다. 이동하려면 수상 곤돌라를 타거나 걸어야 한다. 무거운 짐은 수로를 이용해 곤돌라로 나른다. 수로와 육로가 나뉘어 있어 사람과 차의 충돌 걱정이 없다. 손 회장은 “곤돌라를 자율주행차, 물길을 지하 통로로 바꿔 생각해보면 어떨까”라고 했다. 지하세계에서 AI를 탑재한 소형 운반 로봇이 달린다면, 지상의 화물트럭은 필요 없게 된다. 세계 대도시 차량 정체의 원인이 화물트럭에 있다고 한다. 화물트럭이 불필요해지면 정체와 사망 사고가 줄어들 것이다.

손 회장의 얘기는 도시 교통·물류 문제의 근본 해결을 모색하는 우븐 시티의 설계 사상과도 맞닿아 있다. 우븐 시티 역시 모든 물류는 지하에 설립된 제2 도시에서 이뤄진다. 가정에서 주문한 물품을 작은 AI 로봇이 가정의 지하까지 배달하고 엘리베이터를 통해 지상으로 전달한다.


우븐 시티의 이동수단인 자율주행 전기차 ‘이팔레트(e-Palette)’는 중앙 광장에서 이동형 점포로도 활용된다. 사진 도요타
우븐 시티의 이동수단인 자율주행 전기차 ‘이팔레트(e-Palette)’는 중앙 광장에서 이동형 점포로도 활용된다. 사진 도요타

시사점 2│기존의 자산·인력을 미래에 어떻게 연결할지 고민해야 한다

우븐 시티에는 ‘연결성’ ‘축적’의 키워드가 담겨 있다. 우븐 시티는 도요타의 국내 생산 재편에 따른 공장 폐쇄·이전, 인력 활용, 미래 기술 연결 등을 최소 5~6년간 면밀히 검토해 탄생했다. 도요타는 2012년 무렵부터 후지산 기슭에 있는 히가시후지공장의 축소를 계획했다. 도호쿠(東北)의 새 공장으로 생산 기반을 집중해 효율을 높이기로 한 것이다. 7년이 흐른 작년 여름, 도요타는 히가시후지공장을 2020년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공장 폐쇄는 지역사회에 비보다. 그러나 도요타는 폐쇄 지역에 미래 모빌리티 도시를 건설함으로써 오히려 지역사회에 복음을 전했다. 시즈오카 당국도 “부지는 공업 전용이라 주택 건설이 안 된다”면서도 “통상 1년 걸리는 용도변경 허가를 앞당겨 내주겠다”고 적극적으로 화답했다. 폐쇄되는 공장 부지에 짓기 때문에 건설에 필요한 땅값은 ‘제로(0)’다. 오히려 지역 당국이 세제 혜택 등 적극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기술 실증 시설일 뿐 아니라 사람이 살고 싶어 하는 도시, 보여 주고 싶어 하는 도시가 될 전망이다. 첨단기능을 경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후지산 기슭에 있어 경관도 유려하기 때문이다. 근처에는 도요타 미래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히가시후지연구소가 있다. 실증 시설과 연구소가 한 몸인 형태다. 우븐 시티 건물은 대부분 나무로 만들어지며 일본의 전통 목조건축 도구와 로봇을 조합한 새로운 생산법이 시도된다.


시사점 3│외부의 참여를 끌어내야 한다

우븐 시티의 설계와 비전을 만드는 데는 덴마크 건축가 비야케 잉겔스(Bjarke Ingels)가 참여했다. 그가 대표로 있는 비야케잉겔스그룹(BIG)은 뉴욕의 제2 월드트레이드센터, 구글의 새 본사, 레고박물관부터 화성에 세울 미래 커뮤니티까지 공간의 성격을 바꾸는 건축 프로젝트로 이름을 떨쳤다. 가장 핫한 해외 건축가와 협업함으로써 우븐 시티의 매력을 높이는 동시에 이 ‘실험실’에 더 많은 참여를 유도하는 효과가 예상된다.

실제로 우븐 시티에서는 자율주행, 모빌리티 서비스, 로보틱스, 스마트홈 커넥티드, AI 등의 기술을 마음껏 실험할 수 있다. 일본의 다른 기업뿐 아니라 전 세계를 대상으로 엔지니어·과학자의 참여 신청을 받는데, 기간·형태에 제약을 두지 않고 원하는 기간, 원하는 분야의 프로젝트에 마음껏 참여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최원석 조선일보 국제경제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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