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외현 플랫폼9¾ 이사 전 한겨레 기자·베이징특파원, 전 코인데스크코리아 편집장
김외현
플랫폼9¾ 이사 전 한겨레 기자·베이징특파원, 전 코인데스크코리아 편집장

제프 베이조스(57)는 지난 25년 동안 맡아왔던 미국 아마존의 최고경영자(CEO)직을 오는 3분기부터 내려놓고 이사회 의장으로 자리를 옮기겠다고 지난 2월 밝혔다. 이 기간에 베이조스는 아마존을 세계 최대의 전자상거래 기업으로 만들었다. 이 밖에 베이조스는 블루오리진이라는 우주 사업 구상을 추진 중이며, 유력지 ‘워싱턴포스트’의 소유주인 동시에, 저소득층 교육을 위한 베이조스 데이원 펀드의 설립자이자 세계 최대의 부호가 됐다. 베이조스의 인생과 아마존 경영을 10개 장면으로 정리해본다.


1│어린 시절 베이조스는 1964년 덴마크 이민자 가정 출신의 서커스 단원 아버지와 군인 가정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각각 18세, 17세로 둘 다 고등학생이었다. 어머니의 임신 뒤 외가에서는 결혼을 허락하고 생활을 뒷받침해주려 했지만, 불성실한 아버지 탓에 결혼은 파국을 맞았다. 어머니가 쿠바 이민자와 재혼하면서 ‘베이조스’라는 성을 얻었다. 새아버지는 카스트로가 집권한 뒤 16세에 미국에 보내졌다. 아는 영어 단어라고는 ‘햄버거’밖에 없었다. 그는 쿠바 난민 대상 전액 장학금으로 대학에 다니면서 은행에서 야간 직원으로 일하던 중 베이조스 어머니를 만났다. 새아버지는 어린 베이조스에게 미국과 자유가 얼마나 고마운지를 가르쳤다.

베이조스는 놀이기구를 타면서도 기계 구조를 관찰하는 호기심 많은 아이였다. 타이어로 자동문을 만들고, 우산과 쿠킹포일로 태양열 조리기를 만드는 꼬마 발명가이기도 했다. 교육열이 높았던 어머니는 베이조스를 중학교 영재반에 입학시켰고, 그는 특유의 경쟁심을 바탕으로 3년 연속 과학 최고 우등상, 2년 연속 수학 최고 우등상 등을 휩쓸면서 고등학교를 수석 졸업해 프린스턴대학에 입학했다.

베이조스는 자신의 친부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열 살이 돼서야 알았다. 훗날 베이조스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뒤 한 기자가 그의 친부를 찾아갔는데, 자전거 가게를 운영하던 친부는 베이조스가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친부의 가족에 따르면, 베이조스 특유의 호탕한 웃음소리는 친부를 닮은 것이라고 한다.


제프 베이조스가 2001년쯤 식당 냅킨에 그린 ‘플라이휠’ 구상. 저비용·저가 정책이 고객의 만족을 높이고, 이로써 갖게 되는 시장지배력이 더 많은 판매자를 불러와 다시 고객의 만족을 높이면서 아마존이 성장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베이조스는 “세상의 소매상에는 가격을 더 높게 매기는 부류와 더 낮게 매기는 부류가 있다. 아마존은 두 번째를 택한다”고 선언했다.
제프 베이조스가 2001년쯤 식당 냅킨에 그린 ‘플라이휠’ 구상. 저비용·저가 정책이 고객의 만족을 높이고, 이로써 갖게 되는 시장지배력이 더 많은 판매자를 불러와 다시 고객의 만족을 높이면서 아마존이 성장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베이조스는 “세상의 소매상에는 가격을 더 높게 매기는 부류와 더 낮게 매기는 부류가 있다. 아마존은 두 번째를 택한다”고 선언했다.

2│아마존 창업 대학을 졸업한 베이조스는 월스트리트의 무역과 금융 분야 등에서 일했다. 특히 수학적 방법을 접목시킨 헤지펀드 데스코에서 근무할 때는 일 중독자이자 타고난 리더의 모습을 보였다. 이 회사에서 베이조스는 인터넷 사업을 구상했고 자신만의 ‘에브리싱스토어’를 꿈꾸게 됐다. 그는 이른바 ‘후회 최소화 프레임워크’를 만들어, 여든 살이 되어 인생을 되돌아봤을 때 후회하지 않을 결정이라며 회사를 관뒀다.

베이조스는 아버지 등으로부터 투자를 받아 사업을 시작했다. 엑손모빌에서 일했던 아버지는 제프의 창업 구상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지만, 아들의 재능을 믿고 투자하기로 했다. 부모는 베이조스를 신뢰했고 응원했다. 베이조스는 가구 매장 홈디포에서 문짝을 사다가 다리를 대서 책상을 만들었고 차고에 사무실을 마련했다.

디지털 백화점을 꿈꾼 베이조스는 우선 책부터 팔아보기로 했다. 썩지 않아 보관과 운송에 제약이 덜한 데다 대형 도매 유통업체에서 구할 수 있는 일용품이기 때문이었다. 입소문이 퍼져 주문량은 늘었지만, 베이조스 부부 등 직원들은 직접 포장을 하고 있었다. 회사는 정신없이 성장했지만, 계획성이 없는 ‘임기응변’ 상태는 몇 년간 이어졌다. 이 시기부터 베이조스는 최고의 인재를 뽑고자 했다. 그는 직접 면접을 봤고, 대학입학시험(SAT) 성적까지 물었다. 이전보다 더 나은 사람을 뽑아야 전체 회사의 인적 자원이 향상되기 때문이라는 철학 때문이다.


3│롱(long) 게임 베이조스는 아마존 초기부터 기나긴 성장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미국인의 독서율이 낮아서 책 장사가 잘 되지 않을 거란 전망은 한쪽 귀로 흘려들었고, 사업 초기부터 “아마존은 달까지 뻗어갈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유통 공룡’ 월마트의 인재들을 영입하는 한편, ‘뭐든지 처리할 수 있는’ 유통 시스템을 디자인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대담하게’라는 말을 자주 썼고, 매출이나 주가 등 숫자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주가가 아니다”라고 했고, “주가가 30% 오른다고 우리가 30% 더 똑똑해지는 게 아니고, 30% 떨어진다고 우리가 30% 더 멍청해지는 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아마존이 매출은 늘어도 좀처럼 수익을 내지 못하던 시절, 베이조스는 방송에 나갔다가 ‘이윤(profit)의 철자를 아느냐’는 조롱을 받았지만, “당연히 알지. prophet(예언)”이라고 응수한 적도 있었다.

승승장구하던 중 맞이한 2000년 닷컴버블 붕괴 때 아마존 주가는 113달러에서 6달러까지 곤두박질쳤지만, 베이조스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잘나갈 때도 성장을 위해서라면 당장의 이익을 과감히 포기할 줄 아는 모습을 보였다. 베이조스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서는 현시점에서 보면 베이조스의 선택은 대개 옳았다.


제프 베이조스가 2020년 12월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항공우주 산업 관련 토론회에 참석해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베이조스 특유의 호탕한 웃음은 그가 3세 때 마지막으로 본 친부의 웃음을 똑 닮았다고 한다.
제프 베이조스가 2020년 12월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항공우주 산업 관련 토론회에 참석해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베이조스 특유의 호탕한 웃음은 그가 3세 때 마지막으로 본 친부의 웃음을 똑 닮았다고 한다.

4│고객 만족 아마존의 사업 모델을 간단히 설명하면, 낮은 가격과 좋은 서비스로 고객에게 만족감을 주고, 이를 통해 얻는 시장 지배력을 토대로 공급자를 상대로 협상력을 키우고, 이것이 다시 고객 만족으로 돌아가는 선순환 방식이다. 이를 도식화한 것이 곧 베이조스가 직접 그린 ‘플라이휠’이다. 이런 구조에선 손해를 보더라도 고객이 만족하면 성공한 것이 됐다.

해리포터 시리즈가 인기를 끌던 2000년 7월 신간 ‘해리포터와 불의 잔’이 나오자 베이조스는 정가 40%를 인하하고 추가 배송료 없이 익일 배송 서비스를 제공해 거액의 손해를 보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고객들의 충성도를 높이고 여론의 큰 주목을 받았다.

2010년 베이조스가 주주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452개의 세부 연간 목표를 세웠는데, 그중 350개가 고객에게 직접 영향을 주는 항목이었다. 그 밖에 매출이 8개, 잉여 현금 4개 등이 있었고, 순수익, 영업이익 등의 용어는 한 번도 쓰이지 않았다고 그는 덧붙였다. 베이조스는 “아마존의 에너지는 경쟁자들에 대한 집착보다, 고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려는 열망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그는 스티브 잡스가 이 부분에서 실수를 했다고 여겼다. 아이폰의 가격을 가장 수익성이 높아지는 선에서 책정했기에, 스마트폰 시장이 피 튀기는 각축장이 됐다는 것이다. 더 낮췄다면 유리한 지점을 고수할 수 있었을 것이란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