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욱 연세대 경영학·법학, 베이징대 법학 박사, 사법시험 43회, 사법연수원 33기, 전 법무법인 율촌 상하이 대표처 대표
허욱
연세대 경영학·법학, 베이징대 법학 박사, 사법시험 43회, 사법연수원 33기, 전 법무법인 율촌 상하이 대표처 대표

2020년 9월 14일 여느 일상과 다름없던 날, 중국 상하이의 한 거리에서 갑자기 가슴에 견디기 어려운 통증이 찾아왔다. 혼자 쉬거나 약을 먹는다고 해결되지 않을 것이 너무도 명백한,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고통이었다. 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상하이 루자이주이(陆家嘴)라는 지역의 동방의원(东方医院) 응급실로 갔다.

극심한 고통과 희미한 의식 사이로 의사들이 사인하라고 내미는 수많은 종이, 그게 응급실에서 기억의 전부다. 대동맥 쪽의 심각한 혈관 질환이라고 했다. 12시간에 걸친 두 번의 수술, 중환자실과 일반 병동에서 보낸 18일 동안의 입원 생활을 마치고 나서야 퇴원할 수 있었다.

중국에서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하고 귀국해 서울의 한 대형 병원에서 다시 검진받았다. 솔직히 내 몸에 중국 의사가 어떤 치료를 해 놓았는지 정확히 알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컴퓨터단층촬영(CT) 등의 검사로 내 속을 들여다본 한국 의사는 “중국 의사가 수술을 공격적으로 잘했다”고 했다.

중국에서 나와 같은 일을 겪었다고 하면 대부분의 반응은 중국 의료 기술에 대한 불신으로 시작한다. 나부터도 그랬다. 가슴에 남아 있는 수술 흔적을 보면서 한국 같았으면 이렇게 흉하게 만들어 놓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위에 말했다. 그러나 한국 의사는 “한국에서 했어도 이 수술은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수술이기에 가슴을 그렇게 가르는 것이 맞다”라고 했다.

그런데 정반대의 경험도 있었다. 몇 년 전 급체로 찾아간 중국의 한 병원은 건물 로비 같은 공간에 응급실을 차려놓고, 문 앞에서는 사람들이 담배를 피워대는 곳이었다. 나는 거기서 별다른 조치 없이 온종일 수액만 맞다가 돌아왔다. 중국 생활 15년 동안 극과 극의 의료 시스템을 체험한 것이다.

물론 이 두 경험담이 중국의 의료 수준 전체를 일반화할 수 없다는 건 잘 안다. 그런데도 굳이 병원 이야기를 꺼낸 건,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을 어떻게 갖춰야 할지 고민해보자는 취지에서다.

중국의 법도 극과 극이라는 점에서 의료 시스템과 비슷한 면이 있다. 우리에게 인치(人治)의 나라로 알려진 중국이지만 덩샤오핑(鄧小平)은 일찍이 지켜야 할 법이 있어야 한다는 ‘유법가의(有法可依)’를 강조했다. 시진핑(习近平) 정부는 ‘의법치국(依法治国)’이라는 표현으로 법에 따른 국가 통치를 강조하고 있다. 유법가의와 의법치국은 각각 중국식 사회주의의 형식적·실질적 법치주의를 의미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는 ‘중국에서는 법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고, 담당자의 말 한마디에 정책이 손바닥 뒤집듯이 바뀐다’는 말이 나온다. 또 ‘중국에는 3법이 있으니 담당자가 생각하는 법(想法), 보는 법(看法), 행동하는 법(做法)이 그것’이라는 자조적인 농담도 있다.

다이빙이나 체조 같은 운동 경기는 심판들이 제출한 점수 가운데 가장 높은 점수와 낮은 점수를 제외하고 나머지 점수로 선수의 경기력을 평가한다. 중국을 보는 방법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잘하는 것이 중국에서도 먹힐 것이라는 막연한 낙관론이 있는가 하면, 반중 정서나 차이나 디스카운트 같은 과장된 비관론도 있다. 그사이의 어느 곳에서 담담하게 중국을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