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R-2를 발사하는 F-106 방공 전투기. 지금 기준으로는 너무 과한 무기지만 대비하지 않는 것보다 당연히 옳은 선택이었다. 사진 위키피디아
AIR-2를 발사하는 F-106 방공 전투기. 지금 기준으로는 너무 과한 무기지만 대비하지 않는 것보다 당연히 옳은 선택이었다. 사진 위키피디아

미국은 세계 유일의 핵 보유국이라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다가올 시대를 혼자 좌지우지할 기분 좋은 꿈에 부풀어 올랐다.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불벼락을 날려 제2차세계대전에 방점을 찍은 직후였다. 그러나 이런 자만심은 1949년 9월, 소련이 핵실험에 성공하면서 불과 4년 만에 막을 내렸다. 이후 두 국가 사이에 상대보다 더 많은 핵폭탄을 보유하기 위한 무한 경쟁이 시작됐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핵폭탄의 엄청난 위력만 알았지 방사능이 그에 못지않은 죽음의 무기라는 사실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는 알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이 때문에 지금 기준으로 보면 터무니없는 무기가 이 시기에 개발돼 실전 배치되기도 했다.

ICBM(대륙간탄도탄), SLBM(전략핵미사일잠수함)처럼 다양한 운용 수단이 있는 지금과 달리 1950년대에 핵폭탄을 폭격 지점까지 운반할 수 있는 플랫폼은 폭격기뿐이었다. 이런 이유로 미국과 소련 두 국가 모두 상대의 깊숙한 곳까지 침투할 수 있는 장거리 전략폭격기 개발을 서둘렀다. 한편으론 침투하는 적의 폭격기를 막을 수 있는 방어 수단 확보에 나섰다.

요즘은 국가들이 바닷속부터 우주에 이르는 방공 감시망과 이를 요격하는 2~3중의 정밀한 방어 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중무장한 적국 폭격기가 미국 본토는커녕 인근 해역까지 침투할 가능성도 희박하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적기를 요격하는 방법이 레이더나 정찰기가 침투하는 적의 폭격기를 발견하고, 전투기가 신속히 출격해서 격추하는 것뿐이었다. 이때 미국은 노스럽(현 노스럽 그루먼)이 개발한 F-89 스콜피온을 본토 방어용 요격기로 개발해 배치했다. 전투기지만 여타 공중전 능력은 없었고 오로지 본토 공격에 나선 소련 폭격기를 제거하는 것이 임무였다.

그래서 미국은 F-89에 전통적인 공대공전투 무장인 기관포를 제거하고 Mk4 마이티마우스 로켓발사기를 장착했다. 기관포로 폭격기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기가 어렵다는 사실은 이미 제2차세계대전을 통해 입증된 상태여서 보다 강력한 로켓탄을 집중 발사하는 방식을 채택한 것이었다. 아직 공대공미사일이 등장하기 전이었던 당시로는 훌륭한 방법이었다.

그런데 미 군부는 이마저도 완전히 신뢰하지 못했다. 만에 하나 로켓탄이 빗나가 살아남은 폭격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폭격기가 투하하는 폭탄이 재래식이라면 어느 정도 피해를 감내할 수 있겠지만 핵폭탄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단 한 발의 핵폭탄도 용납할 수 없기에 어떻게든 적의 폭격기를 완전히 분쇄해버릴 체계를 구상했다.


엄청난 피해 막기 위해 작은 피해 용인

미국이 이때 선택한 방법은 핵폭탄이었다. 미국 공격에 나선 소련 폭격기 편대를 발견하면 해당 공역에 핵폭탄을 터뜨려 완전히 제거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당시 미국의 방공 체계를 연구하던 담당자들은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영공을 지키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만큼 상대를 두려워했다.

이런 목적에서 탄생한 것이 1.5kt 위력의 W25 전술핵탄두를 탑재한 AIR-2 지니(Genie) 공대공로켓이다. AIR-2는 사용 목적이 한정된 방어용 전술 핵폭탄이다. AIR-2는 1957년부터 1962년까지 약 3000여 기가 제작됐다. 이 공대공로켓은 F-89, F-101, F-106 요격기에 탑재돼 냉전 말기라 할 수 있는 1985년까지 운용됐다. 한마디로 냉전이 가장 치열했던 시기에 미국 하늘을 지킨 강력한 방패였다.

이 당시 적의 폭격기를 잡기 위해 자기 머리 위에 핵폭탄을 쏘는 행위도 서슴지 않겠다는 미국의 자세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냉전시기의 대립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알려주는 예라 할 수 있다. 물론 앞서 언급처럼 만일 방사능의 위험과 핵 오염 물질에 의한 피해를 알았다면 이런 일을 쉽게 생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당시 촬영된 공중 폭발 실험을 보면, 미군 관계자들이 바로 밑에서 아무런 보호 장비 없이 맨눈으로 하늘을 관찰하는 모습이 등장할 정도로 핵에 무지했다. 때문에 AIR-2는 이데올로기가 이성을 압도하던 시기에 탄생했던 과도기적 무기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이는 현재 기준으로 과거를 판단한 오류라 할 수 있다.

냉전시대에 강대국 간 직접 충돌이 없었는데 이는 핵의 균형이라는 칼끝에 놓여 있던 아슬아슬했던 가짜 평화였다. 때문에 엄청난 피해를 막을 수 있다면 작은 피해의 감수가 용인되기도 했다. AIR-2는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고 대책을 수립해야 했던 당시 관계자들의 입장에서는 최선책이었다. 이보다 좋은 대안은 훨씬 나중에 등장했다.

이들은 비록 핵 물질과 방사능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핵폭탄으로 공격당하면 엄청난 피해를 본다는 사실은 잘 알았다. 따라서 AIR-2처럼 당장의 위험을 막기 위해 가능한 방법을 모두 동원한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지금 시각으로 보면 엉뚱하거나 터무니없어 보이더라도 당시 사람의 노력을 함부로 폄하할 수는 없다.

지금 실적이 좋다고, 아니면 전망이 긍정적이라고 안심하다가 곤욕을 치르거나 망한 기업의 사례는 흔하다. 그런 점에서 AIR-2는 좋은 반면교사라 할 수 있다. 지금의 판단이 나중에 비판받더라도 당장은 준비해야 한다. 만일 그런 대책마저 없다면 위기가 발생할 때 넋 놓고 당할 수밖에 없다. 과해 보이는 대책이 부족한 준비보다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