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다고 믿었던 신념이 사실과 다르면, 큰 불편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진실을 인정하는 용기는 필요하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옳다고 믿었던 신념이 사실과 다르면, 큰 불편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진실을 인정하는 용기는 필요하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윤우상 밝은마음병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엄마 심리 수업’ 저자
윤우상 밝은마음병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엄마 심리 수업’ 저자

30년 전 사이비 종교 단체가 일으킨 황당한 사건이 있었다. 다미선교회라는 단체가 1992년 10월 28일이 지구 종말의 날이며 구원받을 사람들만 공중으로 들어 올려지는 ‘휴거’가 일어난다고 주장한 것. 이를 믿은 신자들이 전 재산을 교회에 바치고 말리는 가족을 피해 가출하는 등의 사회적 문제가 발생했다. 휴거가 일어난다는 그날, TV 방송사에서 교회 현장을 생중계했다. 교인들은 ‘승천복’을 입고 휴거를 기다렸다. 그날 밤 12시가 지났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신도들은 망연자실 허탈감에 빠졌다. 이 황당한 사건 후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신자들이 손해배상 청구라도 했을까. 놀랍게도 많은 신자가 그 후에도 교회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그들은 ‘하느님이 더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 엉터리 사기극을 당하고도 왜 많은 신자가 교회를 떠나지 못했을까.

이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인지부조화 이론’으로 설명한다. 인지부조화는 옳다고 믿었던 신념이 사실과 다르게 된 순간, 심리적인 일관성이 깨지면서 큰 불편감을 느끼는 상태를 의미한다. 사람들은 이런 불편감을 없애기 위해서 드러난 팩트를 무시하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 믿음이 옳았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린다는 것이다.

인지부조화 이론과 유사한 것이 ‘일관성의 법칙’이다. 한 번 선택한 것을 버리기 어렵다. 신념을 버리면 우선 내 자존감에 큰 상처를 입는다. 그리고 그동안 쏟았던 애정과 열정이 헛것이 된다. 나의 가치, 나의 이성, 나의 감성도 망가진다. 내 존재가 내가 믿었던 대상과 동일시돼 있었기에 내 믿음을 버리는 순간 내 존재까지 흔들린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기존의 신념이 옳다고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가야 한다.

잘못된 신념을 고집하기 위해서는 두 개의 심리적인 방어기제가 필요하다. 하나는 ‘부정’이고 하나는 ‘합리화’다. 부정은 팩트 자체를 무시하는 것이다. 가짜 뉴스라든지 모함이라든지 하면서 팩트를 부정한다. 마치 절에서 종을 훔친 도둑이 잘못해서 종이 울리자 자기 귀를 막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만 안 들으면 된다는 식이다. 또 하나는 합리화다. 팩트는 인정하지만 사실은 왜곡·축소한다. ‘오죽했으면 그랬겠나’ ‘오점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 하면서 스스로를 안심시킨다. 불편한 진실 대신에 편안한 거짓을 택한다.

사기꾼 같은 남자에게 끌려 다니는 여자, 사이비 종교에서 못 빠져나오는 맹신자, 믿었던 정치인의 실체가 드러나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유권자. 모두 인지부조화의 불편함을 피하기 위한 일관성의 법칙에 걸린 사람들이다. 일관성이 늘 좋은 건 아니다. 내가 믿는 대상에 문제가 있음이 드러나면 고통스러워도 그 믿음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용기다. 눈 감고 귀 막고 도리질하면서 잘못된 믿음을 붙잡고 있으면 나도 손해일 뿐 아니라 남도 해칠 수 있다.